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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아트리움 들이다 현재를 사는 한옥
세월이 더께로 내려앉은 고재를 툭툭 털어내 다시 쓰고, 빛바랜 타일을 떼내어 장식 타일로 붙였다. 마치 1930년대의 모습 그대로인 듯한 이곳은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더한 2016년 도시형 한옥이다.

마당을 가족이 쉴 수 있는 아트리움으로 꾸몄다. 여름이 되면 폴딩 도어를 열어 개방해 사용할 계획이다.
1 규은ㆍ규민 방에서 욕실 입구와 다락이 동시에 보인다. 부엌 위에 다락이 있던 전통 한옥 구조가 고스란히 남은 모습이다. 2 문간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막내 규희의 모습. 서재는 집에서 가장 독립적 공간이다. 3 꽃살문 뒤편에 접시를 수납할 수 있는 그릇장을 마련했다. 박종서 씨가 아내를 위해 직접 제작한 것. 4 햇살이 비치는 한지 창호와 가죽 손잡이의 조화가 멋스럽다. 


대규모 한옥 마을이 조성된 서촌, 북촌과 달리 한옥 몇 채만이 남아 있는 서대 문구 천연동. 박종서 씨네 다섯 식구는 한 달 전, 이곳 한옥으로 이사를 왔다. 빌라와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세 자매 규은, 규민, 규희에게 ‘때’를 알려주고 싶다는 게 이사를 결심한 계기였다.

“아이들이 집 안에서만 지내니 때를 몰라요.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모른 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죠. 아이들이 사계절을 몸소 느낄 수 있도록 한옥에서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연을 곁에 두는 것이 목적이라면 서양식 주택으로도 충분한데, 한옥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옥이 보면 볼수록 완성도가 높고, 잘 만든 집 같아요. 들문이나 처마처럼 보이는 멋도 멋이지만, 구석구석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며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옥에 살기로 마음먹은 지는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어린 데다 마음에 꼭 드는 한옥을 찾지 못해 꿈은 마음에만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연동 뒷산인 안산에 오르내리다 이 집을 발견했다. 1930년대에 지은 이 집은 좁은 필지에 들어선 도시형 한옥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보존이 잘된 편 이지만 긴 세월을 이기지 못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오래된 한옥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섬세한 여정은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가 맡았다.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와 가족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정구 대표는 다섯 식구만을 위한 한옥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보물처럼 한옥 곳곳에 숨은 이야기
“문간방 앞에 놓인 나무 받침대는 들보에서 상한 것을 잘라내고 말짱한 부분만 살려 만든 거예요. 투박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욕실 타일은 부엌 바닥에 썼던 것을 떼어내 다시 붙인 거고요.”

박종서 씨는 마치 보물찾기하듯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쏙쏙 끄집어냈다. 지하 서가로 내려가다 마주하는 초석, 할머니에게 물려 받았음 직한 붉은 나비장, 비바람의 흔적을 머금은 툇마루 등이 옛 한옥의 정취를 더해주는 집. 조정구 대표는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 채우는 대신 기존의 것을 ‘없애지 않는’ 설계, 시공에 더욱 집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1930년대 지은 한옥을 그대로 사용하는 줄 알 겁니다. 잘 보존했다곤 하지만, 80여 년간 모진 풍파를 견뎌온 집이에요. 기둥 일부가 심하게 훼손된 곳도 있고, 몇몇 대들보와 서까래 등은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한옥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점검해보고, 상태가 양호한 자재는 그대로 사용하고,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신재를 덧대거나 훼손된 부분만 깎아내기도 했어요. 또 가구나 그릇, 타일 등 본래 한옥에 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많아요.”

옛 흔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욕실이다. 본래 부엌이던 자리를 욕실로 개조하고, 바닥 타일 중 쓸 만한 것만 골라 욕조 위 포인트 타일로 붙였다. 물때가 얼룩진 스테인리스 욕조는 1970년대에 유행한 오리표싱크 제품으로, 욕조 바닥이 검게 그을린 것으로 보아 물을 데우기 위한 용도로 쓰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막내 규희가 아끼는 다락방은 대청과 안채를 거쳐 두 계단을 더 밟고 올라가야 한다. 편의성을 생각한다면 외부에서 곧장 이어지는 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옛 부엌(현재 욕실) 위에 다락이 있는 구조가 아름답게 남아 있기 때문에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대신 다락문을 꽃살문으로 교체해 그 안에 소중한 것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꽃살문에는 특별한 의미 하나가 더 담겨 있다. 집을 짓는 동안 오랜 바람이던 소목(나무로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목수)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박종서 씨가 초각 전문가와 함께 꽃살문을 만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규은이와 규민이가 함께 쓰는 2층 침대도 종서 씨가 현장에서 사용하고 남은 고재를 가져와 직접 짜맞춤 구조로 제작한 것이다. 평소 와인과 차를 즐기는 아내에게는 그릇장과 아일랜드 테이블에 어울리는 바 스툴을 만들어주었다.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당에 서면 단 차이가 나는 툇마루와 대청마루가 보인다. 옛 한옥은 천장이 낮아서 현대인이 생활하기 불편하기에 대청마루를 10cm 낮추었다.마루가 낮아진 만큼 창문은 나무를 덧대어 위로 10cm 높였는데,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옛집의 흔적과 현재의 한옥이 맞닿은 부분이라 생각하니 볼수록 정감이 간단다. 아내 김혜정 씨는 “공들여 꾸민 우리 집이지만 우리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80년 된 한옥에 들어와 행복한 일상을 선물 받았듯이 다음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와 머물 거라 생각해요. 이 한옥이 오래오래 사랑받으면 좋겠어요”라며 한옥에 대한 넉넉한 마음을 보였다.


1 아내가 만든 도자기 접시와 한옥에 남아 있던 다기. 지금 보아도 여전히 멋스럽다. 2 방탄소녀를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 규은이와 둘째 규민이 방. 아이들 침대는 한옥을 보수하는 데 쓰고 남은 목재로 짜맞춤했다. 3 지하 찬방을 확장해 만든 서가에는 높게 창을 내 햇빛을 끌어들였다. 독립된 공간이지만 창을 통해 마당과 연결감을 주었다. 4 대청과 안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막내 규희의 비밀스러운 다락방이 펼쳐진다. 5 외부 창을 두고 현대식 들문을 설치해 자연과의 소통을 추구한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80년 된 한옥에 들어와 행복한 일상을 선물 받았듯이 다음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와 머물 거라 생각해요.이 한옥이 오래 사랑받으면 좋겠어요.”


가족의 꿈을 모은 아틀리에
담장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곳곳에 놓인 한지 조명등의 불빛이 집 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하루 일과를 마친 부부는 주방 테이블에 앉아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아이들은 TV를 보기 위해 마당으로 모여든다. 가족 모두를 위해 만든 공간인 ‘마당 품은 아트리움’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을 설계할 당시 부부는 한옥 마당을 살리고 싶었지만, 이미 침실과 주방, 공부방과 아이들 방만으로도 공간이 가득 찬 상황이었기에 거실을 지하에 둘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가장 많이 이용할 공간이 지하에 자리하면 결국 많은 시간을 지하에서 보내게 될 것을 염려한 부부에게 조정구 대표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제안했다. 마당 겸 거실인 아트리움을 짓자는 것이었다. 유리창으로 만든 아트리움은 마당 풍경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가족이 모여 쉴 수 있는 훌륭한 안식처가 된다. 폴딩 도어를 열면 곧 마당과 다름없는 야외 공간이 된다. 물론 아트리움을 지을 때도 기단을 그대로 둘지, 마루를 깔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삶의 공간을 연장한 것에 중점을 두어 마음껏 눕고 쉴 수 있는 평상 마루를 설치했다. 본래 손님을 맞이하던 대청은 오픈 키친으로 꾸미고, 아트리움을 향해 아일랜드 주방 가구와 테이블도 설치했다. 창문을 열면 걸터앉을 공간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박종서 씨네 집에 더할 나위 없이 꼭 어울리는 공간이다. 마당을 지키면서도 가족들이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한 아트리움은 과거 한옥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이자, 미래의 한옥을 위한 솔루션을 제안한 것이다.

“저녁이 내려앉을 무렵 문간방의 툇마루에 앉아 아트리움을 바라보곤 해요. 남편과 아이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지요. 처음에 아이들은 한옥으로 이사하는 것을 꺼려했는데, 공간이 바뀌니 아이들 생활도 바뀌네요.” 만족스러운 한옥살이만큼 집을 재구성하는 과정도 기억에 남는단다. 공간 규모나 실현 가능성 등은 개의치 않고 각자 꿈꾸는 한옥 생활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그려간 다섯 식구. 그러기에 지금 한옥에서의 일상이 이들에게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옥에 이사한 박종서ㆍ김혜정 부부. 대청은 아트리움을 향해 오픈 키친 구조로 꾸몄다.
1 안채에서 바라보면 오픈 키친과 침실이 나란히 보인다. 문을 여닫으며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한옥의 최대 장점. 2 부엌을 개조해 만든 욕실은 옛 타일과 벽돌을 사용해 정겨움을 더한다. 3 유리창 네 개 중 깨진 한 개를 대신해 막내의 그림으로 특별 제작한 유리창을 끼워 넣었다. 이처럼 집 안 곳곳에는 이야깃거리가 녹아 있다.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했다. 도시 답사와 실측, 연구를 통해 과거의 삶과 현대의 일상을 조화롭게 버무리며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을 지향한다. 개인 주택부터 작업실, 갤러리, 근린생활시설, 호텔 공간을 설계하며, 최초의 한옥 호텔 라궁을 비롯해 전등사 함월당, 수많은 도시형 한옥 대수선까지 폭넓은 한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옛 한옥의 아름다운 정취를 살린 천연동 한옥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6월 13일(월) 오후 2시 인원 8명
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로8길 6-7
참가비 1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설계와 시공 구가도시건축(02-3789-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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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새미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