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 이고운 실장을 포함해 옐로 플라스틱(070-7709-3542, www.yellowplastic.co.kr)을 이끌어 가는 아홉 명의 식구와 ‘업 대리’로 불리는 반려견 업둥이가 사무실 앞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희진, 문현열, 김보라, 최지선, 김광수, 전성원, 이고운, 오명석, 김선희 씨.
지난달 옐로 플라스틱 전성원 실장의 집을 취재하며 사무실 이전 소식을접했다. 워낙 공간을 변신시키는 재주가 남다르고 일반 건물이 아닌 서교동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한다고 해 그들의 이전 소식에 더욱 솔깃 했다. 게다가 옐로 플라스틱의 새 사무실이 들어서는 곳은 기자가 어릴적 15년 동안이나 살던 향수 어린 동네라 그쪽의 1970~1980년대 지은 주택들이 어찌 변해 있을지도 매우 궁금해 전성원 실장과 사무실 취재를 약속 또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몇 주 후 약속대로 옐로 플라스틱의 새로운 사무실을 찾았다. 짙은 네이비 컬러와 밝은 그레이 컬러를 조화롭게 매치한 깔끔한 외관, 1층과 2층 경계 면에 화이트 볼드 서체로 길게 써넣은 ‘YELLOW PLASTIC’ 레터링, 심플한 작은 간판이 어우러진 이곳은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도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타이틀을 써넣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디자인을 다루는 사무실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첫 인상이다.
사무실 한가운데 자리한 회의실은 천장까지 이어지는 ㄱ자 가벽을 세우고 커튼을 달아 때론 닫힌 공간으로, 때론 열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블랙 테이블은 구로철판으로 제작한 것.
옐로 플라스틱 이고운, 전성원 실장이 함께 쓰는 방. 책상은 마주 보게 놓고 높은 파티션을 세웠다.
회의실 테이블에서 이야기 중인 이고운(왼쪽), 전성원 실장.
화이트, 그레이, 블랙, 세련된 무채색의 조화가 어울리는 공간.
‘낡았다’는 장점과 단점 이곳은 옐로 플라스틱의 네 번째 사무실이다. 옐로 플라스틱을 운영하는 두 실장 이고운, 전성원 씨가 의기투합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동안 직원이 늘어나기도 했고 공간에 대한 아쉬움도 생겨 사무실을 자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으로 오기 전 쓰던 사무실은 2층 규모로 꽤 넓었어요. 하지만 넓다 보니 자연히 동선이 길어지고 쓰지 않는 불필요한 공간도 생겼죠. 또 통 유리창이라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덥기도 했지요. 그래서 고민한 끝에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죠. 이곳은 그간의 시행착오를 수정, 보완해 옐로 플라 스틱에 딱 맞게 고친 공간이니 오래도록 있을 생각이에요.”
두 사람은 처음부터 단독주택을 알아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위치는 그동안 있던 사무실 근처로, 이전과 다른 색다른 분위기에 콤팩트한 느낌이드는 빌라를 알아봤다고. 그러다 서교동에 위치한 이 단독주택을 만났는데 보는 순간 두 사람은 어떤 고민이나 의견 조율 없이 ‘바로 여기다!’ 싶었단다. 전성원 씨가 휴대폰에 담긴 이곳의 공사 전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야말로 낡디낡은 옛날 집. 고칠 것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모습이었다. 공사 과정을 담은 사진 몇 장도 함께 보니 개조라기보다 집을 짓는 것에 가까웠다.
“저희는 공간을 고치는 게 직업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이 집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어요. 재미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 더라고요. 주택이지만 천장고가 낮지 않고, 골목에 위치하지만 주차가 가능한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물론 낡았다는 장점이 동시에 단점이기도했죠. 디자인을 하면서, 공사를 진행하면서 점점 일이 커졌거든요. 예를들면 변기만 교체하려다 정화조까지 바꾸는 식으로요.”
처음엔 보일러 정도만 교체하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고쳐서 쓸 생각이었다는 두 실장은 5주간 신축 수준의 공사를 했다. 공사비는 대략 8천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하니 공간과 공사 정도를 생각하면 알뜰하게 시공한 편이다. 대문과 담을 철거하고 마당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는 아까웠지만 잘라내 주차 공간을 넓히면서 깔끔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마당은 시멘트로 시공하고 내추럴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자갈을 중간중간 박아 완성했다. 그리고 마당 한편 가장자리에는 폭 15cm로 흙바닥을 그대로 두어 식물을 심어 정원을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다른 입주자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 앞으로는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벽을 세웠다. 낡은 알루미늄 새시로 된 창과 현관문은 모두 뜯어내고 현관 위치도, 창 모양도 바꾸었다. 내부도 기존 모습을 예측 할 수 있는 공간은 하나도 없다. 거실과 이어지는 방 하나는 터서 인포메이션과 회의실로, 기존의 방 두 개는 각각 두 실장의 사무 공간과 디자이너들의 사무 공간으로, 부엌과 다용도실이던 곳은 샘플 자료실로 바꾸었다. 안쪽의 화장실은 크기를 줄이고 부엌을 덧붙여 만들었다. 옛날 집이기에 벽과 천장도 엉망이었다. 벽을 탄탄히 다시 세우며 안쪽으로 단열 처리도 완벽하게 했다. 벽면 위쪽과 천장 곳곳은 뜯어낸 그대로 페인팅만해 노출했는데, 이는 개조 비용을 절감하면서 디자인 요소로 쓰기 위해서 였다. 공사 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도면을 보며 이고운, 전성원 씨의 설명 까지 들으니 약 100㎡(30평)의 이 공간이 더 재미있고 알차게 느껴졌다.
1 사무실 입구에서 바라본 디자이너실. 공간이 좁아진 대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파티션을 설치했다.
2 원래 부엌이 있던 공간은 샘플실로 만들었다.
3 천장과 벽면 위쪽, 가장자리 벽면은 기존 벽면이 노출되어 있다. 디자인 요소가 되면서 비용 절감 효과도 노린 것이라고.
4 외부에는 작지만 아늑한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화장실을 줄이면서 생긴 공간에는 작은 부엌을 마련했다.
더욱 알차고 따뜻해진 사무실 “이번 사무실은 디자인 요소를 많이 더하지 않고 깔끔하게 꾸미기로 했어요. 그래서 화이트를 기본 컬러로, 공간을 구별하기 위해 파티션과 컬러를 잘 사용해보기로 했죠. 사무 공간이라 컬러를 좀 더 과감히 써도 좋겠다는 생각에 화이트와 대비되는 블랙을 포인트 컬러로 썼고, 안팎이 자연스레 연결되도록 외부에는 블랙에 가까운 네이비와 화이트에 가까운 그레이 컬러를 사용했어요.”
이고운 씨의 설명을 들으며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사무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보니 천장 부분까지 블랙, 화이트, 그레이로 컬러를 나누어 사용한 그들의 세심함이 눈에 들어왔다. 옐로 플라스틱이 이번 공간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회의실이다. 회의실은 사무실 가운데 자리해 옐로 플라스틱 구성원이 모여 아이디어를 모으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도 이곳을 사용하고 따로 책상을 두지 않은 시공팀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위치만큼이나 사무실의 중심이 되고 다양한 용도로 쓰는 공간이다. 넓지 않아 가운데에 둔 회의실에 문을 달 수도 없어 이곳 역시 옐로 플라스틱의 강점인 파티션을 겸하는 가벽을 세우고 문 대신 커튼을 달아 때론 닫힌 공간으로, 때론 열린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전 사무실에 비하면 훨씬 좁아졌지요. 하지만 저희는 더 만족해요. 공간 쓰임새도 좋아졌고 동선이 짧아지니 업무 효율성도 높아지고 아홉 명 직원이 함께 얼굴 볼 일도 많아졌고요. 1층이라 한결 더 안정감이 느껴지고 공간은 더욱 아늑해졌어요. 이런 공간에서 일하니 옐로 플라스틱 직원 아홉 명이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좋아요.”
이고운, 전성원 실장의 이야기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옐로 플라스틱은 어쩐지 더 알차고 따뜻해진 느낌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사무실 분위기가 아니라, 편안한 집 같은 분위기라 ‘집’을 이야기하기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옐로 플라스틱의 아홉 식구가 앞으로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집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또 얼마나 많은 집을 고치고 만들어낼까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이런 공간에서 일하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돌아오는 길, 내 자신과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꿈꾸는 업무 공간은 어떤 모습입니까?” 상상만 으로도 흐뭇해지는 즐거움을 잠시나마 누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