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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에 사는 즐거움_사례2 따로 또 함께, 취향이 공존하는 복층 빌라
박수연 씨 가족이 방배동 복층 빌라로 이사한 것은 성격도, 취향도 다른 가족이 ‘함께’ 그리고 ‘잘’ 살기 위함이었다. 가족의 서로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취향이 돋보이는 공간. 모던 갤러리와 스칸디나비안 홈이 공존하는 복층 빌라의 개조 일지를 소개한다.


1, 2 북유럽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더해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완성한 위층 거실과 테라스. 3 심플한 원목 가구로 꾸민 박수연 씨 방. 방마다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철거하는 대신 문짝만 화이트로 교체해 그대로 사용한다. 4 빌라로 이사 오면서 드디어 입양한 강아지. 계단 아래 널찍한(!) 공간이 바로 ‘딱지’의 침실이다. 5 화이트로 무장해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아래층 거실은 베란다를 화단으로 꾸며 생동감을 더했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아빠, 화초 키우는 재미에 폭 빠진 엄마, 피아노를 전공한 딸. 이 가족은 십수 년간 아파트에서 살았다. 피아노를 전공한 딸 박수연 씨는 집에서 레슨을 하거나 밤 늦게까지 연습해야 할 때가 있는데 사실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했다. 층간 소음도 문제였지만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또 사회인이 되니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독립된 공간을 꾸미고 싶은 마음도 컸다. 다음은 아빠의 속마음. 취미로 사진을 찍는 아빠는 자신이 찍은 작품을 거실과 주방, 침실, 복도 등에 걸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이 돋보이려면 도화지처럼 하얀 밑바탕이 필요할진대, 한때 유행한 포인트 벽지와 이미 가구와 세트를 이루며 자리 잡은 각종 소품을 밀어낼 수는 없는 노릇. 엄마 역시 얼마 전부터 본업인 연주보다 화초를 가꾸는 재미에 폭 빠졌으니 자그마한 화단이 필요했다.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부모와 자녀, 각각의 취향에 맞춰 독립적으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복층 빌라가 해법이었다.


1 2층 바닥과 같은 원목 색깔 계단은 진회색으로 도장했다. 2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자주 사용하는 그릇, 냄비 받침, 소스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이동식 트롤리를 갖추었다. 3 제주 바다 풍경을 담은 아버지의사진과 원목 콘솔이 잘 어우러진다.


아빠와 딸,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 집
서래마을 언덕에 자리한 7층 빌라의 꼭대기층인 이 집은 ㄷ자형 내부 계단을 중심으로 위층과 아래층이 나뉘는 구조였다. 튼튼한 골조, 널찍한 베란다와 테라스 등 여유 공간은 마음에 들었지만 화려한 샹들리에와 클래식한 몰딩이 집을 압도해 무엇보다 말간 밑바탕을 만드는 레노베이션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큰딸 수연 씨에게 젊은 감각을 발휘해보라며 레노베이션을 전적으로 일임했고, 수연 씨는 평소 인테리어 전문지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눈여겨본 홈 스타일링 업체 가라지에 시공을 맡겼다. 이 집의 실질적 클라이언트인 부모님이 원한 것은 오직 하나. 집 안 전체를 화이트 톤으로 통일해달라는 것이었다. 수연 씨는 아래층은 아버지의 사진 작품과 어머니의 초록 화단이 돋보일 수 있도록 미니멀한 갤러리 스타일로, 자신과 유학 중인 동생이 사용하게 될 위층은 평소 꿈꾸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콘셉트를 잡고 우선 캔버스 같은 기본 바탕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벽지를 선택하고 페인트를 바르고, 가구와 조명등을 고르는 과정은 분명 즐거웠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집을 완전히 레노베이션했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 같아요. 유지할 것과 바꿀 것을 선택하는 모든 과정이 고민의 연속이었죠. 아직 멀쩡한 새시를 뜯어내기엔 시간과 비용이 아깝고, 둔탁한 계단 라인과 체리목 몰딩을 그대로 두자니 스타일이 문제였어요.”


동생 방은 약간 기울어진 지붕 골조가 남아 있다. 바깥쪽으로 지붕 라인의 여유 공간이 있어 매입식 책장을 짜 넣었다.


가라지의 박창민 실장은 무리해서 집을 뜯기보다는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기존 골조와 마감재를 살리면서도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최대한 미니멀한 스타일을 완성해야 하는 아래층은 천장과 몰딩을 모두 걷어내되 도장 대신 페인트 질감이 느껴지는 벽지를 시공해 비용을 절감했다. 어머니를 위해 화단으로 꾸민 널찍한 베란다는 한여름과 겨울을 제외하고는 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도록 안쪽에 폴딩 도어를 설치했다. 레노베이션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부 새시는 상태가 좋아 화이트로 래핑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거실과 주방 가구는 그레이와 블랙을 테마로 맞춤 제작. 침실에 빌트인으로 설치된 붙박이장은 문짝을 교체하고, 계단은 그레이 컬러로 도장했다.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아래층은 가구를 최소화했죠. 대신 공간에 꼭 필요한 가구를 들이기 위해 기성품 대신 맞춤 제작을 선택했어요. 베란다 화초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공간 곳곳에 걸린 작품도 감상할 수 있도록 1층 소파는 3인용 소파를 두 개 제작해 ㄱ자로 배치했고요.”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맞춤 가구를 제작할 때는 머리속에 있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다는 점, 제작을 맡길 때는 아주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설명해야 하는 점 등을 톡톡히 배웠단다.


아래층 서재는 대리석 느낌이 나는 벽지를 바른 뒤 목공으로 하얀 책장을 짜 넣었다.

“다락방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잖아요. 저 역시 천장을 털어내 박공지붕 라인을 살리고 싶었지만 꼭대기층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울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조언에 기존 상태를 유지하고 천장에 단열 필름과 합판을 보강했어요. 아래층 거실 바닥은 갤러리 느낌을 내기 위해 폴리싱 타일로 교체했지만, 위층은 겨울에 추울 수도 있어 원목 바닥재를 그대로 사용했고요.”_ 집주인 박수연 씨


참을 수 없는 ‘테라스’의 즐거움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거 공간을 스스로 꾸미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다. 때로 부모나 위 세대에게서 물려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두 현재 상황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같은 모양의 집에서 비슷한 형태의 생활 방식을 답습하는 사이 개성은 점점 탈색되어갔다. 대학 진학이나 사회생활을 하며 독립하는 순간을 맞지만 그저 임시방편의 ‘숙소’ 일 뿐, 주거 환경에 관심을 갖는 일은 드물다. 그러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드디어 빨간 경보음이 울린다. 하물며 혼자, 혹은 둘이 살 집도 막막할진대 방 다섯 개와 거실, 주방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 넓은 집을 어떻게 꾸밀지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일이 과연 말처럼 재밌기만 했을까.


1 박수연 씨와 동생 방에 딸린 작은 베란다는 빅 쿠션을 두어 좌식 공간으로 연출. 거실과 연결되는 베란다는 새시를 철거하고 덱을 깔아 테라스 공간으로 꾸몄다.  2 위 아래층 모두 화장실이 두 개씩 있던 구조. 위층 화장실은 하나만 건식으로 살리고, 하나는 드레스 룸으로 바꿨다.  3 주방 조리대에서 식탁을 바라본 모습. 체코 모라비 유채밭 풍경 역시 아버지의 작품이다.  4 아래층 거실. 폴리싱 타일의 반짝이는 질감과 초록 화분의 싱그러움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사하기 50일 전에 레노베이션을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워낙 인테리어를 좋아해 최근 3-4년간 발간된 잡지는 거의 다 구독했는데 그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미 수백 컷의 사진이 스타일, 부실, 수납 등 카테고리별로 쫙 정리되어 있었기에 디자이너에게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순조로웠죠.” 4년 전 모벨랩에서 장미 나무 책상을 사두었다는 박수연 씨. 그때는 그저 나무 질감과 형태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이 책상을 시작으로 북유럽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진 그는 위층을 모던한 뉴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꾸몄다. 무엇보다 기존 나무 바닥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 또 위층의 가장 큰 묘미는 방마다 딸린 테라스 공간이다. 계단 한쪽에 위치한 작은 거실 너머의 테라스는 원래 외부 새시가 있는 베란다였는데, 국립도서관과 서래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아 과감히 뜯고 덱을 깔아 개방감이 느껴지는 테라스로 연출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초를 켠 뒤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두고 테라스 안쪽 원형 테이블에 앉아 야경을 보며 차 한잔 마시는 즐거운 상상을 한단다.

실제 이사한 후 박수연 씨는 독립 아닌 독립을 하게 됐다. 침실과 연습실이 위층에 있다 보니 주로 위층에서 지내는 그는 계단 옆 작은 거실 테이블에서 책도 읽고 손님도 맞는다. 온 가족이 아버지의 작품을 보며 식사를 하고,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고 연습하고, 또 친구들이 오면 테라스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 즐길 수 있는 집. “다락방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잖아요. 천장 라인도 살리고 싶었지만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울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조언에 기존 상태를 유지하고 단열 필름과 합판을 보강했어요.” 물론 공사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라 생각하는 박수연 씨. 그는 무엇보다 결혼 전 잠시나마 독립 생활을 하는 지금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테라스를 만끽하니, 너른 마당이 있는 집에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 역시 ‘복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설계도>

디자인 및 시공 가라지(02-6407-7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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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