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쾌민 씨가 레노베이션한 연남동 주택. 낡은 구옥을 공사하는 두 달 동안 동네 사람들과 10년 지기 친구보다 더 가까워진 그는 촬영 내내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남동 골목에서는‘충치’같던 집을 예쁘게 변신시켰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새 일터 근처의 재미있는 공간이 눈에 띈다. 일터와 가깝기도 하고 새로운 공간을 꾸며보고 싶으니 이사한다. 자주 옮겨다니지만 정리에는 여전히 젬병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쌓인 물건을 뒤적이니 몇십 년 된 가족사진, 이미 태워버린 그림의 슬라이드가 불쑥불쑥 나온다….”
<행복> 2008년 6월 ‘그 남자 그 여자의 작업실’ 중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갖는 김쾌민 씨. 그의 독특한 이름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가 머무는 작업실, 그가 꾸민 공간, 그가 그린 일러스트까지 그의 작품과 작업은 이미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김쾌민이라는 이름을 영어식 발음으로 풀어놓은 삼청동 비스트로 ‘콰이민스 테이블’을 시작으로 가회동의 한옥 레노베이션, 빈티지 공구 상자로 꾸민 논현동의 ‘툴바’까지, ‘줄을 서시오’라고 할 만큼 찾는이들이 많던 시절. 인터뷰가 쇄도하고, 혹자는 그가 하는 다양한 일을 두고 ‘두 손으로 세상을 린다’라고 평했다. 1~2년마다 새로운 작업실을 선보이는 그 어지러운 습관도 그때부터 생긴 것이다(여기저기 현장이 많아 곳곳에 집과 작업실을 얻어두고 ‘메뚜기’처럼 생활하는 것을 즐겼다). 최근에 좀 잠잠하다 싶더니, 역시나 드로잉 개인전을 연다는 안부를 전해왔다. 작업실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연남동에 작은 주택을 지었어요. 13평짜리, 아주 작은 집이에요. 바로 옆 동네에 작업실도 얻었고요.”
13평 집이라. 우선 <지북 Zibook>에서 후원하는 전시를 보기 위해 가로수길로 향했다. 엇? 갤러리가 아닌 ‘카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캐주얼한 카페에 걸려 있는 작품이 마치 데커레이션 소품처럼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마치 커피를 마시듯 예술은 누구에게나 쉽고,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단다. 역시 ‘김쾌민’답다. 하지만 낙서하듯 스케치한 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는 연필 선이 주는 자유로움은 그가 공간을 꾸밀 때 많이 사용하는 강렬한 ‘푸른빛’을 닮아 있다. 이쯤에서 그는 자신의 본업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못 박는다. 결국 그가 펼치는 모든 것이 미술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그림이라는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란다.
(왼쪽) 재활용품 수거함과 자전거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현관 앞에 작은 전실을 만들었다.
(오른쪽) 좁은 마당은 흙의 비율이 크게 의미가 없다. 그만한 정도의 흙을 구해서 따로 컨테이너식으로 화단을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작은 집을 논하다 “저 역시 작은 집을 좋아합니다.” 어찌 알았을까. 기자가 미처 작은 집 예찬론을 펼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작은 집이 품고 있는 알토란같은 매력을 쏟아낸다.
“어떤 책에서 보니 대개 큰 건물보다 작은 건물이 더 촉감을 자극한다는 말이 있더군요. 작을수록 집과 사람이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집에 담긴 아기자기한 생각과 오밀조밀한 장식에도 끌리게 마련이고요.”
대지 25평에 함초롬하게 얹어진 13평 집. 이 아담한 집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당시 연희동의 한 주택을 레노베이션하고 있던 그에게 연남동은 그저 늘 지나는 길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뒷골목을 산책하다 한 집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대칭되는 양 갈래 길을 만났다. 앞은 좁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의 삼각형 집. 골목길에서 딱 중심을 잡고 있는 집이 거의 무너질 지경이라니! 무작정 근처 부동산에 찾아가 ‘내가 손 좀 봐야겠다’고 말했단다.
“지은 지 40~50년 된 집이다 보니 레노베이션이라기보다 거의 신축에 가까운 작업이었어요. 대들보, 기둥까지 모두 다 새로 올렸어요.” 그렇게 인연이 된 집은 두 달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새 옷을 입었다. 그는 집의 이름을 짓는 대신 마룻대에 ‘개문인 開門人 김쾌민’이라고 적었다. ‘남이 열지 않은 집을 내가 열었다’는 뜻. 누구나 환영할 것 같은 낮은 대문 너머로 미니 mini 자동차가 딱 들어가는 크기의 주차장 겸 마당을 지나 예쁜 파란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 놀라웠다!
꽤 큼지막한 거실과 주방이, 주방 뒤에는 간이 드레스 룸이, 거실 오른쪽 계단 위로는 다락방 침실이, 계단 아래에는 지극히 사적인 작업 공간이 오밀조밀 자리한다. 원룸처럼 하나로 트여 있지만, 나름대로 공간 구성에 원리 원칙이 존재하는 짜임새 있는 구조. 대들보가 중심을 잡아주는 높은 천장과 박공지붕 아래 낸 절묘한 쪽창이 시원한 개방감을 주어 집은 상상한 것만큼 작아보이지 않았다. 집은 순전히 자신을 위해 지었지만 얼마 전 애타게 신혼집을 찾고 있던 후배 황인찬, 김경아 씨 부부를 위해 잠시 자리를 내주었다.
(왼쪽) 주방에서 바라본 2층 다락방. 매트리스만 깔아 간결하게 꾸몄다.
(오른쪽) 침실 아래 작업 공간과 파티션으로 구분되는 미니 ‘파우더 룸’.
(왼쪽) 골목과 맞닿아 있는 창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고재로 프레임을 만들어 설치, 그림 같은 풍경이 완성되었다.
(오른쪽)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쾌민 씨. 그에게 공간은 작업실이자 잘 놀 수 있는 놀이터이다.
주차난에 허덕이는 주택가 밀집 지역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승용차 한 대 딱 들어가는 형태의 콤팩트한 집. 이 밖에도 동서양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김쾌민 표 인테리어는 처음 방문한 이라면 누구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요소가 곳곳에 산재한다. 한편으로는 무척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데, 이는 서까래와 기둥 등 한옥에서 나온 고재 특유의 나무 질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네 주거 문화에서는 좀체 발견하기 힘든 강렬한 원색 컬러를 대면하고 나면 또다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옥과 양옥,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 사이를 넘나들며 유희하는 소재와 컬러의 미학. 특히 ‘컬러’는 정성과 수고를 아껴서는 안 될 정도로 인테리어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라 말하는 그는 블루와 그린 컬러를 지나치게 편애한다. 모던한 공간에서는 제 소리만 내는 튀는 컬러지만 벽돌과 고재를 활용하는 그의 작업에서는 적당히 무게감을 주면서 포인트가 된다는 설명. “사람마다 각자 어울리는 컬러가 있듯 집도 자기만의 컬러가 있어요. 색을 들이는 것을 두려워 말고, 우선 직감을 믿고 선택하세요.”
현관문, 작업 공간과 욕실을 분리해주는 파티션, 또 주방 상부장 살짝 적용한 폐목재는 사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폐목재처럼 ‘연출’하기 위해 목재 하나하나를 직접 칠하고 벗겨내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거친 것이다. 사실 폐목재는 좁은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에서 ‘약간씩’만 포인트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마당에는 곧 탄피 상자를 재활용해 만든 컨테이너 화단을 들이고 조만간 봄꽃으로 하나둘 채울 예정.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이곳은 진짜 노후를 위한 집이에요. 시골에서 도시 생활을 하는 게 아니고, 도시에서 시골 생활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동네는 도심에서 조용하게 살 수 있는 몇 안 남은 주택가이기도 하고, 특히 삐뚤빼뚤한 집이 많아 흥미로웠지요. 모든 디자인이 그 자리에서 쓱쓱 스케치하면서 나온 아주 즉흥적인 결과물입니다.”
(왼쪽) 고재로 수납장을 짜 넣은 주방. 이 집으로 이사온 후배이자 야무진 살림꾼인 김경아 씨는 싱크대 상부장 위편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왼쪽) 작은 집은 파티션으로 공간을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다. 거실 소파 뒤편에 가벽을 세우고 행어를 설치해 간이 옷장을 만들었다.
(오른쪽) 천장의 중심을 잡아주는 대들보에 인더스트리얼 빈티지 스타일의 조명을 매달았다. 테이블 조명등을 대들보에 연출한 아이디어가 재밌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적도 없는데 직접 소품을 공수하고, 가구를 만들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그 모든 일이 그에게는 천직처럼 자연스럽다. 이는 모두 ‘그림그리기’에서 기인한다.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짚고 넘어가자면, ‘손’에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그의 고집스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대환영이었다. 그중 ‘그림’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분일 거라고 회상한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정리 정돈 안 하기로 유명한 어린 쾌민의 방을 치우면서도, 한낱 낙서일지라도 끼적끼적 스케치한 종이는 절대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책상 위에 살포시 얹어두었다고 한다.
어느날 ‘회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자가 이 손으로 뭐든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손’과 예술적 감성,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까지 두루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인테리어다.
“새 세기가 시작된 2000년에 인테리어 회사를 9개월 정도 다닙니다.”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듯 관조적인 어투로 시작한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1990년대 말, 선배가 태국 짝뚜짝 시장 안에 있는 숍 인테리어를 부탁했다. 당시 무대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내 공간이 재밌겠다 싶어 멀리 태국까지 찾아 숍을 꾸몄다. 태국은 길을 지나다 툭 주울 수 있는 정도로 워낙 오래된 목재가 많았는데, 이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요즘 폐자재를 부활시킨 의식 있는 디자이너로 피트 헤인 에이크가 칭송받지만 그 역시 이미 이때부터 폐목재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오른쪽) 가는 연필 선이 주는 자유로움은 그가 디자인한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
태국은 ‘화가 김쾌민’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그 후 종종 스케치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난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명함을 내밀며 함께 일하자고 한 이가 바로 인테리어 분야에 첫발을 내딛게한 청원 전시 기획의 대표이다. “집을 디자인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그때 배웠어요. 처음부터 디자인 실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덕에 후배들에게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솔직히 얘기했죠. 그리고 현장 근무를 자처했어요.” 노무자와 동고동락하면서 눈으로 배우고, 실무로 익히고, 가슴으로 이해했다. 촬영 내내 동네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아마도 그때부터 담금질된 것이리라(지금도 동네 주민들은 묵은 충치 같던 집을 예쁘게 꾸미고 산다며 기특해 한다).
“삼청동 콰이민스 테이블은 인테리어가 상당히 고무적이었어요. 지금은 한옥으로 꾸민 상업 공간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한옥에서 서양 음식을 판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이었거든요.” 한창 바쁠 때는 일 년에 7~8군데의 레노베이션을 맡던 그는 두세 달씩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누구보다도 신나게 일했다. 붓보다 톱과 망치 드는 일이 더 많다 보니 어느새 그의 손은 점점 거칠고 투박한 노동자의 손을 닮아 있다.
(왼쪽) 농담 삼아 애견조차 ‘중고’라 말하지만, 유기견 ‘석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강아지 뒤편에 보이는 의자는 시트가 찢어져 벗겨냈더니 합판 프레임이 나와 제법 쓸 만하다. 그는 말한다. 설령 천이 찢겨졌다 해도 아직 활용할 여지가 있는 의자는 세상에 넘쳐난다고.
(오른쪽) 안경, 시계, 칼 등은 그가 모으는 아이템.
재활용은 제2의 청춘, 오늘도 유쾌한 잡화놀이 와, 세상에! 바로 옆 동네에 있는 작업실에 가니 3년 전 <행복>에서 만났을 때와 비교해 변한게 거의 없다.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하듯 장소만 옮겼을 뿐. 여전히 머릿속이 어지러운지(당시 인터뷰에서 정리 정돈을 하지 않는 습관을 두고 ‘오늘도 어지러운 나의 머릿속’이라고 표현 했다) 막 어질러진 상태 또한 그대로다.
‘무언가를 버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그의 작업실. 바뀐 것이 있다면 한쪽에 마련한 작은 아틀리다. 일년에 한번 개인전을 여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그의 아틀리에는 참으로 소박하다. 트롤리에 화구통을 수납했는데 여기에 선반을 얹으면 손님용 스탠딩 테이블이 된다. “상상해보세요. 화창한 토요일 아침, 시내로 나가려다 발걸음을 돌려 변두리 고물상으로 드라이브를 갑니다. 온갖 잡동사니 속에 숨어 있는 빈티지 가구. 가는 곳마다 보물이 넘쳐나요. 아니, 저건? 오리지널 가죽 의자를 발견합니다. 그야말로 횡재지요.”
그는 파리의 벼룩시장부터 의정부의 고물상까지 이 잡듯 찾아다니며, 남들이 버리는 것을 돈을 주고 산다. 논현동 ‘툴바’를 꾸민 다양한 공구 상자와 야전 의자 등이 바로 그 전리품이다. 사실 그에게 고물상 순례는 어쩌면 그 자체가 하나의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수중에 들어온 물건들은 죄다 그의 작업에 영감을 주며 활용된다. 의정부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다양한 중고품을 취급하는 숍에서 1만 원 주고 산 야전 의자. 그 걸 리폼하는 것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김쾌민 스러운 활용 방식이다.
“그것이 버려진 것이든 앤티크이든, 오래된 것의 매력은 그것만이 가지는 색감이나 형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월에서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에서 비롯합니다. 새것은 온갖 사연이 담겨 있는 중고품에 비하면 왠지 밋밋해요. 달리 생각하면 이런 중고품은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오래된 것에 대한 경외심을 잊지 말고, 그들에게 청춘을 돌려줘야 해요.”
(왼쪽) 그의 드로잉 작품에는 풍경뿐 아니라 인물도 자주 등장한다. 인상 깊은 얼굴의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스케치해 두거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기록한다고.
(오른쪽) <지북 Zibook>에서 후원하는 개인전은 오는 3월 10일까지 가로수길 네스카페에서 열린다. 유럽 여행 때 스케치한 작품. 과거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 흥미를 느낀다는 그는 곧 드로잉 화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고물, 고재, 고택. ‘고 古’자로 시작하는 것의 편애는 ‘쉽게 변하지 않는’ 그의 성품에서 기인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지만 아직까지 캔버스에 작업을 한다. 연필로 스케치하고 채색한 후 스캔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포토샵? 간혹 ‘지우는 기능’은 요긴하게 쓴단다. 무언가를 창작할 때도 새것과 헌것을 섞는 것이 그만의 작업 방식이니, 놀라울 것도 없다.“예술품은 절대 유행을 타지 않고, 고전은 영원하다고들 말하잖아요. 저는 현재를 사는 나와 시대에 뒤떨어진 나, 양쪽 모두 좋아합니다. 스타일도 시대도 전부 다 ‘믹스’해요.” 그가 해온 인테리어 작업이 매번 화제를 불러모으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오래되고 낡은 것에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그는 최근 가장 트렌디하다는 ‘원조 리사이클링 작가’가 아닌가!
그가 오래된 것 중 가장 즐겨 사용하는 소재는 나무이다. 나무는 사람이 태어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럽고 오래된 느낌, 그리고 나이테처럼 자연스러운 세월의 주름이 드리워진 손, 다시 보니 그는 오래된 ‘나무’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