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설계를 시작해 지난겨울 완성한 까사누아. 시원하게 펼쳐진 계단식 텃밭은 신구철 씨가 손수 가꾼 것으로, 농작물만으로도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어준다. 계단식 텃밭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서툰 농사일이 한결 즐겁고 수월하다.
1 패시브 하우스에 남향집이라 여름에 자칫 더울 수 있어 한옥처럼 처마를 길게 뺐다. 겨울에는 빛이 깊게 들어와 따뜻하고, 여름에도 나름 시원하다. 현관 앞 연못은 지하수를 활용한 것. 홈통을 타고 순환해 지붕의 열을 식혀준다.
2 기본 온실 모듈을 구입해 마당 한편에 설치했다. 손님 초대, 바비큐 공간이다.
3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가 독특하다. 계단에 인테리어・건축 잡지를 층층이 쌓아 장식했다.
4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구철 씨와 아내 이미라 씨. 앞으로 10년간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싶다는 신구철 씨 부부는 일흔 살이 되면 도심의 작은 집에 살며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일주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꺾이는 두 면을 모두 강화유리 통창으로 시공한 침실. 잔디와 멀리 산세가 펼쳐진다.
두 세대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구조로 지하의 거실 겸 주방.
장마가 끝나니 더위가 기승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턱턱 막힌다. 마음은 어느새 도시를 벗어났다. 전원을 꿈꾸는 것이 꼭 잠 못 이루는 열대야 때문만은 아닐 터.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젊은 시절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일까? 지리한 장마 후 찾아오는 폭염처럼 은퇴 시기가 되면 전원 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은 더욱 증폭된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집 한 채 짓고 살고픈 희망이 환상이나 뜬구름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우선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쉽고 만만한 집’을 짓겠다는 의지 또한 중요하다. 완전한 주거 공간이 아닌 세컨드 하우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쉽고 만만한 집 짓기 양평군 서종리 수입면.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구철 씨의 세컨드 하우스 ‘까 사누아Casanoir’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의 집, 강남구 논현동에서 출발해 40분 남짓이면 도착하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고, 모던하게 꾸민 생활 공간은 사용하기에 불 편함이 없다. “많은 사람이 퇴직 후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대부분은 엄두도 못 냅니다. 1~2년 지나면 후회할 거라고 조언하는 경험자도 있고요. 시골 생활에 수반되는 현실적 문제는 간과한 채 일탈, 자연, 낭만을 꿈꾸니 괴리감이 클 수밖에요. 시골 생활은 시골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시골’ 과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전원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을 때는 우선 감당할 수 있는 집인지 생각해보라는 신구철 씨. 하지만 그 역시 3305㎡(1천 평) 이상의 넓은 대지에 집을 두 채나 짓지 않았는가. 여기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원래 양평 끝자락 강가에 자그마한 농가 주택이 있었어요. 8년 동안 왔다 갔다 하며 재미있게 살았는데 물이 들어오는 동네라 팔 수밖에 없었지요. 뭐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부지를 알아봤고, 이 땅을 찾았어요. 산세와 계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데다 마을의 끝자락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단, 대지가 넓어 처음에는 친구와 땅을 반반씩 사서 집을 나란히 지을 계획이었다. 한 채를 짓는 것보다 두 채를 짓는 게 경제적이란 계산도 있었으니 알고 보면 땅콩집 1세대인 셈이다. 그러다 친구는 개인 사정으로 땅을 포기했고, 그는 좋은 이웃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설계를 바꾸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한 필지 두집 짓기를 감행한다. 건축주가 오로지 디자이너인 바로 그 자신이라는 점은 기한 없는 공사의 서막을 알리기 충분했다. 가구와 패브릭은 물론 숟가락과 젓가락까지 챙긴 그는 지난겨울 실내 인테리어를 마쳤고, 올봄부터 마당과 조경에 매진했다.
까사누아는 아주 넓은 마당을 두고 물가에서 물러나 건물이 앉은 구조다. 토지 구분이 농지로 되어 있어 중간에 건물을 지을 수 없고, 물가에 집을 지으면 전망이 강물로 한정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마당의 백미는 계단식 화단. 오래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은 시각적 리듬감을 부여하는 계단식 화단은 농작물도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웃에 있는 농사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컨테이너 박스로 구역을 나눠 고추, 상추, 가지, 파 등을 식재했는데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일주일에 3~4일 정도 머물며 고추 겹가지를 정리하고, 웃자란 상추도 따며 농사일을 해 손은 거칠지만 허리 사이즈는 3인치나 줄었단다. “이제 취향이 맞는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게 숙제예요. 더 완벽한 집을 만들 때까지 주인을 느긋하게 기다려봐야죠. 그때까진 하우스 웨딩, 회사 워크숍 장소, 펜션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고요.”
1 1층 거실 한쪽에 단을 올려 한실을 꾸몄다.
2 한실에서 바라보는 거실 풍경. 아일랜드 조리대 위 천장 조명등은 신구철 씨가 제작한 것.
3 두 집의 대지 경계선에 꽂혀 있는 골프 깃발은 따로 또 함께 사는 이웃에게 필요한 장치다. 빨간색 깃발이 꽂히면 경계를 넘지 말라는 뜻, 흰 깃발은 앞마당을 아무나 왔다 갔다 해도 좋다는 신호다.
4 천장 조명등과 세면 볼이 모던한 공간에 경쾌한 컬러 포인트를 준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B동은 두 세대가 거주할 수 있도록 지하 층에도 주방 시스템을 마련했다. 지하 층 침실에서 주방을 바라본 모습. 시스템 붙박이장이 깔끔하다. 잔디 언덕에서 보면 지하 층, 뒷마당에서 보면 1층으로 하루 종일 채광이 좋다.
자연주의 삶 신구철 씨가 주거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 공간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 이다. 보통 세컨드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사용자는 가능한 한 ‘적은’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려 할 것이다. 따라서 세컨드 하우스는 실내에 있어도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사방이 탁 트인 동시에 안정감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듯한 인테리어가 금상첨화다.
그는 실내 공간을 최대한 밝고 단순하며, 모던하게 디자인 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 한실韓室을 구성했고, 지하 역시 거실과 주방, 한실을 구성해 두 세대가 함께 살 수도 있다. 공간의 가장 큰 미덕은 모든 방에 창을 내어 누구라도 만족스러운 휴식과 개방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 침실은 꺾인 두 면에 통창을 설치했고 거실창 반대편은 심플하게 화이트로 도장했으며, 바닥재는 자연스러운 나무 질감이 살아 있는 광폭 원목 마루를 시공했다.
거실 천장은 살짝 경사진 구조가 특징인데, 이는 다양한 작품을 걸기 위한 아이디어다. 실제 까사누아에는 강렬한 페인팅, 조각 등 작품이 많은데 모두 신구철 씨의 솜씨로 마치 갤러리를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에는 농장주의 집 ‘배너 하우스’를 모티프로 했는데 막상 시공하려니 겁이 나는 거예요. 개인의 취향이지 보편적인 미감이 아니니까요. 모던한 인테리어에 그간 모은 고재 테이블, 선반 등을 두어 여러 스타일이 혼재되었죠.”
사실 집이라는 게 꼭 모든 기능을 갖추고 그럴듯한 외양으로 만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는 없다. 또한 전원주택이야말로 사계를 겪어보며 집주인의 마음을 담아 천천히 짓는 것이 좋다. 이번 주에 담을 쌓고 다음 달에 온실을 만들고, 이듬해에 마당을 완성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는 것. “양평에 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요. 9시까지는 밭일하기 좋죠. 배꼽시계가 울릴 때까지 일하다가 상추 뜯어 밥 먹고, 3~4시까지는 밀린 잠도 자고 책도 읽어요. 저녁 무렵이면 또 텃밭에 나가 일하다 화로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요. 이곳에서 지내면서 삶이 자연주의로 바뀌었어요.”
1 1층 메인 침실에서 현관 쪽을 바라본 풍경. 창틀, 처마가 겹겹이 겹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2 두 집을 지하 층에서 연결해주는 와이너리는 파벽돌로 마감했다. 신구철 씨의 주말 주택 지하에는 창고 겸 작업실이 있다.
3 모던과 유럽 스타일이 공존하는 거실. 벽면의 화려한 페인팅은 신구철 씨 작품이다.
4 여름에는 벌레를 피해,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온실에서 바비큐를 즐긴다. 즉석에서 채소를 따서 씻고 조리할 수 있도록 조리 시설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