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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들리는 집, ‘비온후’ 30평 작은 땅에 집짓기
부산에 사는 건축 사진가 이인미 씨 가족은 1년 반 전 동래구 수안동에 작은 집을 지었다. 한적한 골목길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길쭉하고 뾰족한 삼각 지붕 집. 대지 면적 103㎡(31평), 건축 면적 59.85㎡(18평), 3층 구조로 1층은 남편 김철진 씨의 출판사, 2층은 사진 작업실(다목적실)과 주방, 3층은 네 식구의 주거 공간이다. 땅 찾기부터 완공까지 1년을 살아본 사람들의 리얼 코멘트.



1 다락방을 함께 구성한 3층 주거 공간. 아들 성민 군과 남편, 친정어머니까지 네 식구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 2 슬라이딩 도어를 사이에 두고 작업실(다목적실)과 주방이 마주한다.
3 1층은 남편 김철진 씨의 출판사 ‘비온후’. 이웃집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겨 남쪽으로 낸 창을 책장으로 가리고 담을 더 높이 쌓았다. 훗날 상황이 달라지면 오픈해 사용할 수 있다.


이인미 씨가 집을 지은 계기는 일본 여행길에서 우연찮게 본 작은 집 덕분이다. 집을 지으려면 최소한 40~50평 정도의 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쿄의 그 집은 스무 평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땅에 근사한 마당도 갖추고 있었던 것. 마침 출판사를 운영하는 남편 김철진 씨는 사무실 이전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역시 아파트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터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 짓기 예산을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에 맞추고 나니, 남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땅은 30평 남짓. 오래된 주택 지구가 있는 곳을 물색했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첫 집의 대지가 딱 31평이었다. “우리의 눈높이는 이미 브랜드 아파트 인테리어에 맞춰져 있는데 블록을 쌓아 짓는, 이른바 집 장사 집은 짓고 싶지 않았어요. 일본의 작은 집처럼 모던하면서도 차갑지 않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집을 고민했죠. 아무래도 설계와 시공이 중요해 평소 알고지내던 후배 건축가 장지훈 씨에게 맡겼어요.” 주택 ‘비온후’는 1층은 콘크리트조로, 2~3층은 목조로 시공했다. 1층은 출판사, 2층은 사진 작업실과 다목적실, 3층은 네 식구의 주거 공간으로 구성. 사실 건물을 3층으로 올려 연면적(50평)은 일반 주택과 비슷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 집은 ‘30평 작은 땅에 지은 집’이라 정의할 수 있다.


차 한대 세울 수 있는 자갈 주차장, 자그마한 덱으로 이루어진 비온후 주택의 마당


집주인에게 묻다
뾰족한 삼각 지붕이 인상적이다.
상상 속의 집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이 삼각 지붕이었다. 건축비를 절감하려면 최대한 단순한 모양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했다. 비용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시공 기간을 줄여야 한다. 여유 자금으로 집을 한 채 더 지어서 들어가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 살던 집을 처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을 4개월 이내에 지을 수밖에 없다. 우린 다행히 땅을 구입할 여유 자금(1억 2천만원)이 있었고, 은행에서 신축 자금을 대출 받아 시공비를 세 번에 나눠 지불했다. 대출금은 아파트 전세금을 돌려받아 일부를 갚았고, 아직 5분의 1 정도가 남아 있다. 장기적으로 남편 사무실 임대료라 생각하면 된다.

집을 지어 이사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의 사람이 걱정했다. 춥고, 쓰레기 버리기 힘들고, 치안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고. 그래서 집을 짓는 내내 모토가 ‘아파트에 사는 것처럼’ 이었다. 목조 주택은 단열이 좋아서 집이 따뜻하다. 3층에는 천창이 있어 종일 해가 잘 들고 겨울에도 따뜻하다. 다락방과 옥상은 선택 사항이었다. 남편은 옥상 정원을 원했지만 옥상을 포기하면 주거 공간에 메자닌 구조의 다락방이 생겨 시원하게 트인 공간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무 집이라 그런지 틈이 조금씩 갈라지고 합판 슬라이딩 도어는 틀어져 문이 잘 맞지 않는다. 지은 지 2년이 지나고 완전히 자리 잡았을 때 손보라고 귀띔하더라.

2층은 부엌이 반을 차지한다. 18평 주택에 있기에는 너무 큰 부엌이 아닌가?
우리 부부 둘 다 사람을 좋아해서 다목적 공간이 꼭 필요했다. 부엌과 작업실 사이에 합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사람들이 오면 완전히 열고, 작업할 때는 닫아 방처럼 쓴다. 아파트 살 때는 손님 오는 날이면 눈치가 보였는데,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스트레스가 없다. 24시간 중 잠잘 때 빼고 가족 모두 2층에 모여 있을 때가 많다.

집에 금속 소재가 많다. 파사드도 금속이고.
동네에서는 ‘녹슨 집’이라 부른다. 금속 작업은 조각가 박은생 씨가 참여했다. 건축가도 작가에게 맡기는 것을 재미있어 하며 흔쾌히 동의했다. 계단, 파사드 등의 작업을 부탁했다. 계단도 공간을 넓게 차지할 수 없어 벽에 철심을 박아 외부에서 조이는 방식을 택했는데, 계단을 산화 철판 소재로 마감해 자연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테이블 한쪽 지지대가 멋진 다목적실 빅 테이블도 박은생씨 작품이다. 1층 전면 책장은 설치작가 백성준 씨가 맡았다.

작은 땅에 집을 지으려면 수직 구조일 수밖에 없다.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나?
계단을 많이 오르락내리락하니까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 번 내려올 때마다 다시 올라가는 일 없게 철저히 계획을 세워 모든 것을 준비해 내려오니까(웃음). 아이들은 뭐… 계단, 다락을 무조건 좋아한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입구. 컬러풀한 회화 작품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2 가운데 브리지를 두고 양옆으로 만든 다락방. 한쪽은 성민 군의 침실, 반대편은 성민 군의 책장 겸 다용도실이다. 
3 주방에서 작업실을 바라본 모습. 합판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열린 공간이 된다.
4 작업실에서 부엌을 바라본 모습. 부엌을 지나면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아일랜드 수납장 뒤편에 그릇 대신 책을 꽂아두니 가족실로 손색없다. 
5 ‘비온후’ 주택은 출판 편집, 사진 등의 작업을 하는 근린 생활 시설이다. 
6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숲 사진은 이인미 씨 작품. 
7 좁지만 내구성이 높은 철 계단을 오르면 2층 작업실이 나온다.



옥상을 포기하니 지붕 아래 아늑한 다락방이 생겼다. 메자닌 구조로 시공해 작지만 개방감이 느껴지고, 천창을 뚫어 채광이 좋다.

건축 노트
필지 종류
도시지역 내 제2종 일반 주거 지역
시공비 50평 기준 총 2억 4천만 원
땅 구입비 1억 2천만 원
기초 공사 철근 콘크리트조에 목조
외장 마감재 방부목, 산화 철판
건축 기간 2011년 5월~8월
설계와 시공 장지훈(디자인 아뜰리에 비온후풍경 02-529-8040), (주)다움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051-731-0061)


집에 큰 창문이 거의 없다. 밀집 지역의 건축 제한 때문인가?
사실 몇 년 전부터 이런 주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친한 친구 대여섯 명이 모여 같이 땅을 사서 같이 집을 짓자고 얘기했는데 일단 우리가 가장 먼저 사고, 마침 옆집이 나와 아는 작가 부부가 샀다. 마침 땅콩집이 유행이어서 친구와 집을 같이 지을까도 고민했던 터라 옆집 작가 부부와 마당을 공유하기로 결정. 신축할 때 주차장을 설치해야 하는 조항이 있어 주차장과 마당을 같이 구성하니 집이 남쪽으로 치우쳐 앉았고, 굳이 남쪽창을 크게 낼 필요가 없었다. 또 마당과 길가 쪽에서는 2층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구조라 북서쪽 창도 가능한 한 작게 내고, 대신 창을 이곳저곳 많이 배치해 모자란 빛을 보완했다. 2층에서 작업할 때면 창문이 작아서 오히려 안정감이 든다.

건축주가 건축을 전공했으니, 건축가 입장에선 무척 까다로운 건축주였을 것 같다.
오히려 선택과 포기가 빨랐다. 일반적으로 “왜 안 돼?”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빨리 포기하고(모든 문제는 예산에서 비롯되므로), 현장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집 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과 포기다. ‘이왕이면’이라는 생각으로 하나 둘 욕심 내게 마련인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으면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다. 작은 집은 콤팩트한 규모만큼 부담도 적은 집이다. 감당할 만한 규모의 집에서 주택의 장점을 최대한 누리며 살 수 있는 것, 도심 속 작은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예전 아파트와 같은 평수, 같은 돈으로 지었지만 삶의 크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 더 나이가 들어 둘 다 일을 그만두면 1층에 카페나 국숫집을 차리고 싶다.


‘비온후’의 좁은 집 넓게 쓰는 공간 활용 아이디어


1 이인미 씨 집에는 틈새 수납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평소에는 아일랜드 조리대 뒷면의 남는 공간에 끼워놓으면 깔끔한 이동식 수납장. 남편 김철진 씨가 목공으로 제작했다.
2, 3 주방 맞은편 다용도실. 다용도실도 남는 공간 없이 수납공간으로 활용했는데, 백미는 문 뒤편 수납장이다. 문 뒤편 남는 벽면에 10cm 폭의 오픈 수납장을 세워 평소 자주 쓰는 조미료를 수납한다. 넓은 집은 수납장도 넓어 안쪽에 있는 물건을 꺼내기 힘든데, 폭이 좁은 수납장은 어떤 물건이 있는지 한눈에 보여 사용하기 편리하다.
4 1층은 15평, 2층은 18평, 3층은 17평인데도 이 집이 넓어 보이는 이유는 가구를 최소화했기 때문. 특히 좁은 공간에서는 이동하기 간편한 바퀴 달린 가구가 유용하다.
5 도심 밀집 지역이고,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창문을 작게 제작했다. 3층 주거 공간에는 천창을 내어 공간이 한결 밝고 화사해 보인다.


1년 살아본 이들의 조언, 작은 집 지을 때 체크리스트

시공팀은 장거리, 설비팀은 근거리
이 집은 반은 서울 사람이, 반은 부산 사람이 지었다. 지역에도 물론 훌륭한 시공팀이 있지만, 소규모 타지 업체가 해당 지역의 수준 높은 시공팀을 원하는 일정에, 원하는 비용에 맞춰 일을 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으니 서울 등 장거리 시공팀을 선정하는 것도 방법. 반면 설비와 전기 등 살면서 사후 관리가 필요한 부분은 지역 업체에서 작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참고로 재밌는 사실은 서울과 수도권 시공팀 노무비가 지방의 시공팀 노무비보다 대체로 저렴하다는 점이다.
편안한 마음 갖기
보통 설계와 인허가 기간을 3~5개월, 시공 기간을 4~6개월 정도 잡는다. 편차가 큰 이유는 건축주의 성향에 따라 협의에 필요한 시간과 진행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 또 완성한 후에도 끊임없이 유지, 보수하는 과정이 반복되므로 실제 1~2년은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창고는 클수록 좋다
1층에 창고를 만들긴 했으나 책을 보관하니 금세 꽉 차버렸다. 다음에 또 집을 짓는다면 작업실 겸 창고를 추가로 만들고 싶다. 주택은 집주인이 직접 관리해야 하니 못을 박고, 자르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 집에 필요한 것들을 손수 만드는 공간과 장비를 보관하는 공간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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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