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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의 보물 창고, 집
집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주는 취향의 집약체다. 거실 한가운데 테이블부터 서랍 안 커틀러리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취향은 삶 속에 녹아든다. 뉴욕, 예테보리, 안트베르펜, 겐트, 멜버른 다섯 개 도시 크리에이터의 집에서 숨길 수 없는 그들만의 취향을 찾다.


미국 뉴욕의 피터르 얀 마탄
장난감 가득한 놀이터 같은 집
나는 스물일곱 살의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르 얀 마탄Pieter Jan Mattan. 뉴욕에 본사를 둔 온라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베자르Beza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맨해튼의 2백50년 된 건물을 아파트 겸 작업실로 개조해 동료와 함께 살고 있다. 내 취향은 한마디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함’.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했는데, 심지어 침대 위 쿠션이나 베개는 비행기의 일등석에 있는 것과 흡사한 것들을 사다 놓았다. 비행기를 보면 언제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파트 천장이 높아서 정말 다행인 건 내가 트램펄린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트램펄린에 올라가 폴짝폴짝 신나게 뛰고 나면 영원히 젊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1988년 작 영화 <빅BIG>에 등장하는 톰 행크스의 소호 아파트를 본 후 트램펄린에 대한 열망을 키웠는데,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기다렸다는 듯 트램펄린을 바로 샀다. 천장이 높아서 좋은 또 한 가지는 집 안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조명등을 비치할 수 있다는 것.

한 공간에 집과 작업실이 있는 피터르의 아파트엔 모형 비행기, 카메라, 컬러풀한 오브제와 식물이 가득하다. 트램펄린을 거실에 들여 높은 천장을 맘껏 활용한다.
아파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창가의 코너 부분.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작은 화분을 두고 잎이 넓은 큰 식물은 꼭 집 안에 들이는 편이다. 식물의 초록빛은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늘 자연과 연결된 느낌을 선사한다. 한편 내 유일한 수집벽은 비행기에서 가져온 ‘세이프티 온 보드’ 카드를 모으는 것.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도 비행사마다, 국가마다 모두 조금씩 다르다. 그게 재미있어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5백 장이 넘는 카드를 모았다. 쇼핑할 때 즐겨 찾는 브랜드는 소품 종류별로 다른데, 예를 들어 침구는 일본 브랜드 무지MUJI에서만 산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보다는 소규모 갤러리나 쇼룸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나 아티스트가 만든 것을 더 좋아한다. 출장이나 여행 중 우연히 접어든 낯선 길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3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했고, 살면 살수록 그리고 공간 안에 손때가 묻을수록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마치 시간이 흘러야 값어치를 발하는 좋은 와인처럼 말이다. 지금은 완전히 내 취향의 물건들로 가득한 보물 창고처럼 되어버렸다. 집과 작업실의 경계 없이 공간을 쓰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신나게 사는 것! 내 삶의 철학이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시흐리트 폴더르스
빈티지 색감이 돋보이는 유니크한 공간
나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서른다섯 살 시흐리트 폴더르스Sigrid Volders. ‘작은 안트베르펜’이라 불리는 안트베르펜 교외의 오래된 아르데코 양식의 아파트에서 남자 친구 데이비드와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패션 매거진과 브랜드 룩북, 광고와 패션쇼 등의 일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민주와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 나렐 도어Narelle Dore라는 친구와는 ‘earth. Rope. Pot. Plant’라는 듀오 브랜드를 만들어 식물 행어를 디자인했는데, 집뿐 아니라 숍과 갤러리를 위한 식물 설치 작업도 병행한다. 공간을 꾸밀 때는 다양한 색감의 조화, 가구의 질감, 식물 데커레이션을 신경 쓴다. 독일의 패션 브랜드 ‘후이후이hui-hui’를 좋아하는데, 스카프나 옷, 침대 시트와 커버, 담요 등을 디자인하는 그들은 패턴의 연금술사다.

손재주가 많은 시흐리트의 공간엔 빈티지한 색감의 조화가 돋보이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크고 작은 화분과 드라이플라워, 직접 스케치한 그림은 훌륭한 소품이 된다.

최근 브랜드‘@아로마@aroma’의 퓨어 에센셜 오일에 빠져 있는데, 특히 ‘보태니컬 에어 저팬Botanical Air Japan’이라는 이름의 향을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마리아 칸디다 젠틸레Maria Candida Gentile’의 ‘핸버리 가든Hanbury Garden’, 보물 1호는 가장 친한 친구가 선물한 빈티지 컵 앤 소서 세트다. 벽에는 친구 사브리나가 직접 그려준 그림이 걸려 있다. 크루아상 모양의 독특한 손잡이가 달린 꽃병도 아끼는 아이템이다. 최근 틈틈이 세라믹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버터 플레이트와 컵 그리고 접시도 만들었다. 거실엔 내가 만든 소품과 지금까지 일한 패션 매거진, 다양한 광고 타블로이드, 화분 등이 있고, 다른 소품들은 플리마켓이나 빈티지 숍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침실에는 두 면에 창이 나 있어 언제나 빛이 잘 든다. 큰 창 덕분에 언제나 잘 정돈한 이웃의 예쁜 정원과 가로수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최근 일본의 라쿠Raku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집 근처의 중고 할인 판매점, 소품을 판매하는 ‘아틀리에 솔라숍Atelier olarshop’, 드라이플라워를 구할 수 있는 플라워 숍 ‘블루먼 판 코르넬리 스Bloemen van Cornelis’를 좋아한다. 사진 예페 데 코닌크Eefje de Coninck


스웨덴 예테보리의 리사 마리 앤더슨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아담한 스튜디오
나는 스웨덴 예테보리에 사는 페이퍼 디자이너이자 종이접기 아티스트인 서른 살 리사마리 앤더슨Lisa Marie Anderson. 내 취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스칸디나비안 프렌치 재퍼니즈’ 정도 되겠다. 가장 사랑하는 다섯 가지는 작약, 커피포트와 잔, 임스 체어, 향초. 작약 다발을 꽂아둔 원탁에 앉아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화이트 컬러의 원탁은 모닝커피를 내려 마시고, 간단한 작업을 하며, 친구들과 애프터눈 티타임을 즐기는 곳. 커피가 일상이 된 후부터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커피 잔을 모으고 있다. 크기와 모양, 디자인이 모두 조금씩 다른 커피 잔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다. 특히 화이트와 블루 컬러의 커피 잔을 좋아한다.

화이트 컬러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아담한 원룸 아파트. 리사가 가장 사랑하는 임스 체어와 화이트 테이블, 빈티지 커틀러리, 매일 바뀌는 꽃 데커레이션이 돋보인다.

몇 년 전부터는 커피포트도 모으고 있다. 매일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필수 아이템. 향초 중에서도 샌들우드 향을 좋아해서 지금 사는 아담한 사이즈의 원룸 스튜디오에는 언제나 그 향이 난다. 스무 살 때 산 화이트 컬러 임스 체어는 내 보물 1호다. 벌써 10년의 시간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함께할 것만 같다. 한쪽 공간은 작업실도 겸하는데, 아담한 크기를 고려해 대부분의 인테리어를 화이트 톤의 밝고 환한 분위기로 맞췄다. 화이트, 라이트 그레이, 라이트 그린 이 세 가지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공간의 심심함을 덜기 위해 블랙 컬러의 체어도 배치했다. 최소한의 가구만 들이는 대신 선택한 데커레이션 방법은 바로 선반을 활용하는 것. 선반에는 작은 나무 인형과 컵들, 도자기 소품, 유리잔, 내가 만든 종이접기 소품을 두었다. 예테보리에는 탐나는 라이프스타일 숍이 많다.

그중에서도 ‘아르틸레리에트Artilleriet’ ‘룸21Rum 21’ ‘마르케트29Market 29’ 같은 곳을 좋아한다. 이 세 곳 모두 클래식한 디자인과 현대적 디자인,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와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파리의 ‘메르시Merci’도 자주 간다. 주말이면 예테보리의 유명 플리마켓 ‘홀멘스 마르크나드Holmens Marknad’에서 손때 묻은 아름다운 소품을 사곤 한다.


호주 멜버른의 칼라 플레처
변화무쌍한 매력의 오픈 하우스
나는 멜버른에서 컨템퍼러리 페인팅 화가로 활동 중인 서른여섯 살 칼라 플레처Carla Fletcher. 내 취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는 패턴이 있는 섬유, 실내에서 키울수 있는 화분, 자수정, 호주의 야생동물상, 향초 같은 것이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유니크한 패턴과 색감의 패브릭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잘 모르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 낯설고 이국적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아티스트로서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큰 창고를 개조해서 집과 작업실을 겸하는데, 내 그림과 가구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화분 위치를 수시로 바꾸며 변화를 주는 편이다. 그때그때 몰두하는 작업의 성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집 안 분위기를 바꾼다.

집과 작업실의 경계가 따로 없는 칼라 플레처의 개성 넘치는 공간. 아기자기한 소품보다는 패턴이나 디자인을 활용한 큼직한 오브제로 꾸며 개방형 구조의 매력을 살렸다.

조명과 음악, 향이 있는 에센셜 오일은 내가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값비싼 가구보다도 이 세 가지가 없으면 ‘나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나무 테이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있던 것인데, 지금도 여전히 집 한가운데 두고 식사를 하거나 작업할 때, 친구들과 담소를 나눌 때 테이블에서 멋진 시간을 보낸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구를 곁에 두고 쓴다는 것은 정말 낭만적인 일이다. 최근 관심이 생긴 분야는 연금술인데, 연금술의 신비한 마력에 이끌림을 느낀다. 그래서 자수정도 모으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수정이 뿜어내는 신비한 빛 때문에 정신이 집중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공간을 꾸밀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 등이 필요할 때는 ‘얼마나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해외여행 중 빈티지 마켓에서 발견한 자수정이나 동네의 핸드메이드 쇼룸에서 만든 작고 아름다운 물건을 특별히 좋아한다. 큰 평수의 창고를 개조해서 집과 작업실로 쓰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함께 살고 있는 남자 친구 때문이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뮤지션인 그가 연주를 하고, 나는 오래된 나무 테이블에 그들을 위한 음식을 차린다. 이런 즐거움은 일상의 큰 행복이다.


벨기에 겐트의 아누크 마리 안젤린 베르쿠테
피겨를 사랑하는 몽상가의 아지트
나는 벨기에 겐트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미술 교사로 일하는 스물네 살 아누크 마리 안젤린 베르쿠테Anouk Marie Angeline Vercouter. 내 취향은 한마디로 ‘컨템퍼러리 분더카머Wunderkammer’, 독일어로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이다. 지금 살고 있는 스튜디오의 한쪽 벽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매시간 조금씩 다른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며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정말 사랑한다. 창고 세일에서 산 레코드플레이어는 사실 장식용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너무 스타일리시해서 만족스럽다. 빈티지 마켓에서 큰맘 먹고 구매한 체어는 나보다 고양이들이 더 좋아해서 틈만 나면 낮잠을 자곤 한다.

한쪽 벽면에 넓게 자리한 스테인드글라스부터 빈티지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벽난로, 여행지마다 사 모은 동물 피겨, 턴테이블까지 아누크의 몽상가적 기질이 돋보인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선물한 나무 조각품은 스튜디오 한쪽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는데, 다른 소품들과 잘 어우러질 뿐 아니라 그 모양과 결 자체가 정말 아름답다. 평소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독특한 물건을 모으는 편인데, 최근엔 스튜디오를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물 피겨는 계속 모으고 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장난감이나 피겨 가게에 들러 꾸준히 사 모으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피겨는 나름대로 추억과 스토리가 담긴 것들이다.

이렇게 모은 물건은 유행을 타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다. ‘딜레 앤드 카밀레dille & kamille’라고 부르는 플리마켓에 가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끼리 함께 만들거나 가족의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빈티지 마켓에 자주 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야기를 품은 물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벼룩시장이나 빈티지 숍에서 사 온 소품들을 가지고 남자 친구와 함께 이것저것 리폼하기도 한다. 몇 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생일에 나에게 임스 체어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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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