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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60㎡ 5층 주택 낭비 없이 살고 싶은 당신에게
다섯 살 딸 아민이는 매일 아침 엄마 아빠보다 먼저 눈을 뜬다. 그러고는 아래층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직행하는데, 부부가 일하는 낮 시간에도 그곳에서 밥을 먹고 놀며 시간을 보낸다. 가족끼리 살다 보니 아이가 뛰놀아도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과 얼굴 붉힐 일이 없고, 살림과는 별개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은 사무실도 아래층에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2층에 다락방처럼 꾸민 아민이 방. 높이가 낮지만 아이가 들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키즈 텐트와 인형, 책 등으로 아늑한 공간을 완성했다.
부부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1층 공간. 책상 맞은편에 소파와 TV를 두어 작은 거실처럼 꾸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영화 프로듀서라는 부부의 직업 특성상 손님을 맞이할 일이 많아 미팅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1 파티오patio라 부르는 1층 발코니.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벽화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웃도어용 의자와 해먹을 비치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바비큐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2 부부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1층 공간. 뒤쪽에 있는 수납장과 미니바를 깨끗하게 가리기 위해 커튼을 달았다.
3
슬라이딩 도어 뒤로 매트리스를 두어 가족 침실을 마련했다. 

4 지붕 사이로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는 옥상은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5 천장이 높고 박공지붕처럼 유리창이 비스듬히 누운 모양이라 채광이 훌륭한 4층은 가족실로 사용한다. 창문에 아래위로 열리는 블라인드를 장착하고 러그와 매트리스, 쿠션만 두었다. 

“비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권희라ㆍ김종대 부부. 132.23㎡(40평) 아파트를 떠나 집을 신축해 생활한 지 이제 갓 여섯 달이 지났다. 후암동의 57년 된 판잣집을 허물고 부부가 지은 이 집은 현관이 두 개인 독특한 구조의 5층 건물이다.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 이 하나의 건물, 시부모가 사는 2층과 부부의 공간으로 꾸민 3ㆍ4층이 또 다른 건물 형태를 띤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 권희라 씨와 영화 프로듀서인 남편 김종대 씨는 ‘일터’와 ‘집’을 효율적으로 분리했다.

기능성은 곧 가변성
각 층은 60㎡(약 18평). 이 집의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아내 권희라 씨는 이 집을 커다란 원룸 구조로 보고 디자인을 시작했다. 면적이 좁을수록 잘게 쪼개기보다 가구를 중심으로 구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상황에 따라 가구만 사용해 집을 즉각 리모델링하는 식. 예컨대 3층에는 부엌 옆으로 라운드 테이블을 두니 자연스레 다이닝룸이 되었고, 반대편에는 오토만을 배치했더니 낮잠을 자거나 소파처럼 앉을 수 있는 거실로 쓴다. ‘기능성은 즉 가변성’이라는 권희라 씨는 수납장을 모두 벽처럼 만들어서 자질구레한 살림을 숨기고, 침실도 수납장처럼 안쪽에 배치했다. 침실 슬라이딩 도어를 닫으면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감쪽같이 벽이 된다. 1층은 아내와 남편의 사무실로 쓰임새를 못 박아두었지만 TV와 소파, 피아노를 배치하니 응접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게 배치한 책상 뒤로 커튼을 설치해 간이 부엌과 작은 물건 등을 정리했다. 시부모가 사는 2층은 3ㆍ4층과 구조가 비슷한데, 조금 더 넓고 천고가 높다. 2층에서 그대로 계단을 따라 오르면 3층 부부의 집이다. 3층과 4층은 구조가 독특하다. 엄마가 부엌일을 하면서 아민이를 볼 수 있도록 부엌 옆에 달린 욕실 위층에 놀이방을 만들었다. 욕실 천장이 높아 가능한 일인데, 마치 ‘집 속의 집’처럼 아이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장난감과 플레이 텐트로 꾸민 자신만의 원더랜드가 펼쳐진다. 맨 위층인 4층은 천장이 높고 박공지붕처럼 유리창이 비스듬히 누운 모양이라 채광이 좋다.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아도 따뜻해 가족실로 활용한다. 이동식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나가면 남산 서울타워가 한눈에 보인다. 야경이 멋지니 자연스레 아웃도어 벤치를 두고 밤공기를 즐기게 되었다. 부부는 집이 작아지면서 필요한 것만, 꼭 집에 어울리는 것만 소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집 구조도, 물건도 모두 낭비 없이 솔직하다.

부부와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3층. 부엌 옆으로 흰 벽처럼 보이는 공간은 모두 수납장을 짜 넣은 것이다. 부엌 옆 회색 문은 욕실인데, 욕실 위쪽으로 아이의 다락방이 펼쳐진다. 벤치 옆쪽으로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안쪽 침실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비우는 ‘과정’이 진짜 핵심
부부는 이 집을 지으면서 부부의 색깔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한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육아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부부가 앞으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 대화 를 많이 나누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후암동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학군부터 따지더라고요. 저도 남편도 사교육에 묻혀 자랐지만 그게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아이가 어릴 때 학원에 다니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원하는 바에 따라 환경을 만들면, 그 안에 서 아이는 자생력 있고 견고하게 커나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면적은 작아졌지만 이 집에서 경험하는 삶의 질은 훨씬 높아졌다고 말한다. 서울역이 가까우니 공항철도를 타면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도 가깝고 KTX도 타기 좋다. 걸어 나가면 덕수궁과 광화문이 가깝고, 미술관이 지척에 있다. 시부모의 만족도도 높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젊은 시절의 추억이 살아 있는 동네라며 마실을 다닌다. “그리고 남산이 참 좋아요. 꼭대기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데, 북측 산책로로 빙 둘러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이랑 남산도서관에도 가고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예요.”

대지를 구입해 설계와 공사를 마무리하기까지, 강남에 있는 30평대 아파트 한 채와 맞먹는 돈이 들었지만 부부는 굳이 따져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 품 안에 있는 10년 동안 고정적인 안식처를 만들어 가족의 역사, 뿌리, 추억을 쌓아갈 계획이다. 집은 돈 버는 수단이 아닌, 우리의 ‘삶’이고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공간임을 몸소 경험 중인 권희라ㆍ김종대 부부. 오늘도 더욱 솔직하고 분명한 것만 남겨 낭비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1 주차장 때문에 바닥이 높아진 1층 공간에는 피아노를 두어 무대처럼 꾸몄다.
2 해먹을 설치하고 나무 바닥을 깔아 덱처럼 활용하는 1층 발코니. 종종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3 시부모집에서 한 층 오르면 3층 아민이 집이 나온다. 계단 통로에 화분과 아이 소품을 두어 사랑스러운 느낌을 냈다.
4, 5 1층 부부 사무실. 커튼 안쪽으로 미니바를 두어 간단한 커피와 다과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앞쪽으로는 거실처럼 TV와 소파를 배치했다.


디자인과 시공 발포도건(www.sparklingsh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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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지연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