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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심희진의 집과 작업실 집이 곧 당신을 이야기한다면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집이란 그의 디자인을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안내서가 된다. 또 요리나 패션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감성을 가장 솔직히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라는 장기를 십분 발휘한 공간에서 모슬린 블라우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만든 요리를 근사하게 차려내는 감각. 집이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면, 이 집은 편안하면서도 자기 색깔을 분명히 내는 디자이너 심희진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희진의 분당 빌라. 다이닝 공간과 거실 사이에 슬라이딩 파티션을 설치했다. 속이 꽉 차 얇아도 내구성이 뛰어난 평철 파티션은 상부를 철망 유리로 구성해 둔탁하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다. 평소에는 한쪽에 밀어두고, 다이닝과 거실을 분리하고 싶을 때는 가운데로 이동한다고. 구조 변경 없이 파티션 하나로 복도가 생기고, 공간이 분할되니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가! 
1세대 스타일리스트들이 집에서 공간을 뚝딱뚝딱 연출하며 데커레이션 화보를 촬영하던 시절, 스타일리스트 심희진의 분당 이매동 아파트는 이른바 섭외 1순위 집이었다. 당시로는 파격이던 하얀 파벽돌로 마감한 벽과 원목으로 꾸민 유럽풍 주방 가구, 철망 수납장에 장식한 그릇과 소품 등은 어떤 주제를 대입해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포용력이 있었다. 크게 작게 고쳐 10년간 살던 이매동 아파트를 비롯해 카페처럼 꾸민 야탑동 아파트(<행복> 2011년 6월호에 소개) 그리고 얼마 전 이사한 구미동 빌라까지 그의 공간 계보도를 보면 구성과 스타일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뭔가 하나로 통하는 그만의 확실한 감성이 느껴진다. 내추럴, 클래식, 모던 같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스타일에 감각 두세 방울을 곁들인 생활 디자인. 실용적이면서도 과다한 기능에 치우치지 않은 특유의 편안함이랄까?

거실 소파 뒤쪽에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콘솔처럼 두고 간편한 턴테이블과 LP, 황재성 작가의 회화 작품과 어울리는 컬러의 소품을 장식했다. 
구석까지 호기심을 유발하는 공간
분당에서도 한적한 빌라 단지가 모여 있는 구미동. 그가 이사를 결정한 건 이 빌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와 자연을 접한 환경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으로 자리를 알아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임대로 나온 이 빌라를 발견했고 널찍한 테라스를 통해 마당과 연결되는 구조, 지하(로비층)를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몇 달을 마음에 품고 있었죠. 지하는 출입구가 따로 있어 집과 사무실을 합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이사를 계획했어요.”

평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간혹 밤을 새울 때도 있는데, 집과 사무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여겨졌다. 보통은 일터와 삶터가 구분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하다 집중이 안 되면 일어나서 청소하고, 그릇을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으니 살림이야말로 그가 일을 더 재밌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조리하기 편안한 ㄷ자형 주방. 문만 교체하고 상부장 위에 도자 오브제를 조르르 두었다. 벽에 걸려 있는 조리 도구만 보면 셰프의 주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또 많은 예산을 들일 수 없을 때는 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집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의 독특한 구조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어떤 집을 보더라도 구조가 머릿속에 남는데, 이 빌라는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구조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그만큼 뻔한 구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현관부터 계단 입구를 지나 거실, 부엌 등의 공간이 90도씩 꺾여 배치된 구조라 그 너머의 공간을 알 수 없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이는 ‘제일 미운 곳을 제일 아름답게’라는 그의 디자인 원칙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하게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1 페인팅 질감의 벽지와 커튼, 샹들리에 조명등으로 따스함을 불어넣은 침실.
2 디자인 서적과 소품 디스 플레이가 돋보인다. 

“의외의 공간을 가장 예쁘게 만들자는 게 제 지론이에요. 살림을 하면 가장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곳이 주방과 다용도실인데, 보통 다용도실은 물건을 잔뜩 쌓아놓은 창고로 전락하기 쉬워요. 주방을 지나 다용도실의 정돈된 느낌, 침실을 지나 드레스룸이 전하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 아이 방 안쪽에 또 다른 아이 방이 나타나는 의외의 반가움… 마치 느낌표가 증폭되는 공간이랄까요?”

그는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멋있어야 진짜 멋진 집이라 강조한다. 집 ‘구석’을 죽은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이러한 의지는 살림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생활의 발견이다.

1 집에서만큼은 디자이너도, 스타일리스트도 아닌 집주인이 완벽한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심희진 씨. 
2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슬라이딩 파티션을 이동하며 공간을 분리한다. 테이블은 세덱, 장식장은 앤티크 스타일로 만든 프랑스 가구를 구입한 것. 

호기심이 관심을, 관심이
진심을 생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주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요리를 즐겨 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건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부엌이 아니라 진짜 살림하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요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의 주방 역시 조금씩 달라졌다(이매동 집은 주방만 무려 다섯 번 개조했다). 빵을 배울 때는 천연 대리석 상판의 보조 조리대를 설치했고, 오븐 요리가 늘어날 즈음에는 청소하기 간편한 스메그의 전기 호브 오븐을 구입해 조리대 동선을 다시 짰다. 요리의 재미에 빠지다 보니 사람들을 집으로 부르는 일이 늘어나 커다란 익스텐션 테이블을 장만하기도 했다. “주방을 방치한(!) 집을 보면 간혹 삶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집을 레노베이션한다면 집 안에서 가장 환한 공간에 주방을 배치하고 시선이 가는 곳마다 예쁘고 소중한 물건을 두세요.”

부엌 가구는 기존 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납장의 문만 교체했다. 이사하면 바로 요리부터 해본다는 심희진 씨. 조리 도구나 그릇, 양념장, 하다못해 쓰레기통까지 쓰기 편하도록 동선에 맞춰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다. 다이닝 공간의 키 큰 장은 안쪽에 서랍장을 새로 구성해 손님 초대할 때 필요한 그릇과 커틀러리를 넣고 꺼내기 편리하다고. 이런 게 ‘살림+디자인’의 묘미다.

1 트위니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철제 책상을 거실 코너에 두고 장식장으로 활용한다. 
2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 옆 코너에 스툴과 컬러 쿠션을 쌓아 연출했다.

자신만의 공간 레시피를 가질 것
사실 기존 구조와 마감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덧입히려면 보통 새로 공간을 짓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 다. “주어진 공간에서 내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디테일의 차이라 생각해요. ‘모두 버리고 새것을 산다’가 아니라, 지금 있는 것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활용할지 고민하다 보면 그 공간에 자신의 삶이 묻어날 거예요. 인테리어는 한도 끝도 없어요. ‘나중에는’ ‘다음에는’ 이라는 계획도 세우며 하나씩 채워가는게 중요하고요.”

그가 이사하면서 새로 구입한 물건은 거실의 3인 소파와 덱의 아웃도어 테이블 정도다. 회색 방화 패널로 마감한 드레스룸에는 마침 가지고 있던 그레이 컬러 행어를 조르르 두었고, 철판으로 전신 거울만 맞춤 제작했다. 트위니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조명등을 주방에 옮겨 달고, 철제 장식장은 거실 코너장으로 활용했다. 철제 장 안에는 영문 서적의 내지에 노끈을 감아 연출한 오브제부터 인테리어 작업 재료나 모티프가 되는 문손잡이, 경첩, 가위, 잉크병 등을 두었는데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일상의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감상하는 기분이랄까? 이처럼 정리에도 자신만의 질서가 있다면 정리는 그 이상의 효용과 장식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 서비스 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로비층 지하 공간을 사무실로 사용한다. 집과 계단으로 연결되고 또 출입문이 따로 있어 편리하다. 반대쪽엔 작은 미니 주방을 설치했다. 
2 인테리어 디자이너지만 때로는 패션 서적에서 텍스타일 문양을 보고도 영감을 얻는다는 심희진 씨. 그가 좋아하는 모슬린을 다룬 책. 

스타일리스트이기에 가능한 믹스 매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잠깐, 그는 “요즘에는 잡지나 인테리어 서적, 인스타그램에도 수많은 정보가 있지 않나. 상상만 하지 말고 집에 적용해보면서 실패와 성공을 거치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색깔이 생길 것”이라는 조언을 덧붙인다. 또 여행 역시 감각을 열어주는 통로라 말한다. 작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을 다녀온 뒤 ‘로맨틱’ ‘클래식’ ‘모던’ 등 공간을 굳이 어떤 스타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투 쿨 포 스쿨의 파리 라파예트 매장 디자인을 마치고 요즘 다시 주거 공간을 디자인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살림하는 즐거움을 바탕으로 주부의 현실과 이상을 채워주는 과정이 얼마나 신나는지.

“최근 몇 년 동안 이렇게 집에 있어본 적이 없어요. 이사하고, 촬영을 핑계로 하나씩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만져보는 물건이 많더라고요. 스타일리스트 초창기에 재밌게 일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나며, 그때의 좋은 기운을 받는 느낌이랄까요.”


살림하는 디자이너, 심희진의 데커레이션 노하우
그의 집에는 정말 물건이 많다. 좋은 물건은 꼭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이다.그러면 그 많은 물건은 다 어디에 있을까? 정답은 ‘everywhere’. 벽을 중심으로 오픈 수납장, 선반장, 장식장 등 모든 가구에 디자이너의 삶과 작업에 소스가 되는 수많은 물건을 늘 볼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한 것. 물건을 눈에 띄는 곳에 꺼내두고 늘 보면서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받는 것이 일상에서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비워두기
물건은 정확히 제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여경란 작가의 소년 소녀 오브제 역시 작은 상자 안에 아직까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림, 사진도 마찬가지다. 아직 뚜렷하게 원하는 이미지를 찾지 못했다면 빈 액자나 빈 캔버스만 걸어도 훌륭한 장식이 된다. 때론 여백의 미가 느껴지기도!

컬러 흩뿌리기
공간에 다양한 컬러를 적용하고 싶지만 어떤 컬러를 어떻게 골라야 할지 어렵다면? 원칙은 간단하다. 그림이나 커튼에 있는 컬러를 공간에 흩뿌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서재의 경우 커튼 문양에 있는 컬러가 책상 의자와 수납장, 러그, 소품 등에 펼쳐져 있는데 핑크・블랙・그레이・민트 블루까지 컬러를 많이 써도 커튼이 중심을 잡고 있어 전혀 산만해 보이지 않는다. 

반복 효과
디스플레이할 때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같은 재료와 일관된 형태로 통일감을 주는 것. 주방 상부장 위에는 가구와 같은 하얀색 도자병 오브제를 조르르 두었고, 팝아트풍 도자 액자도 세 개를 나란히 걸어 포인트를 주었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벽에 회화 작품만 걸라는 법은 없다. 금속공예가의 설치 작품, 아트 포스터, 아이가 그린 그림까지 가족 구성원 각자의 취향과 스토리를 반영한 아이템을 잘 활용하면 남다른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아이 방 침대 헤드쪽 벽면은 자작나무 패턴 벽지로 포인트를 준 뒤 아이 취향에 맞는 아트 포스터를 매치했다. 

구석까지 아름답게
물건을 쌓아두는 죽은 공간이 많을수록 집은 점점 좁아진다는 사실을 아는지? 다용도실, 드레스룸, 욕실 등 집주인만 아는 은밀한 곳일 수록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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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