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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복층 타운 하우스 건축적 산책을 즐기는 집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이상적 모습은 무엇일까? ‘한 가구=4인 가족’이라는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 지금 달라지고 있는 가족의 모습, 그에 따른 주거 환경을 반영한 사례가 궁금하다. LH공사에서 5년 전 완공한 고양시 덕양구의 한 타운 하우스. 아파트에 살다 마당 있는 집을 짓고 싶던 부부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타운 하우스의 레노베이션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아래층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TV 대신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설치해 생생한 사운드를 느끼며 분위기있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림이 걸린 가벽 너머로 뒷뜰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살기 위한 ‘장소’를 어떻게 공간화할까?
집주인 문지애 씨는 결혼 후 두 번째 집으로 타운 하우스를 선택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자리한 복층형 타운 하우스는 일산에 직장이 있던 부부가 신혼집으로 염두에 둔 곳. 하지만 지역과 주거 형태 모두 낯선 환경에 도전하는 일이 쉽게 용기가 나지 않은 부부는 우선 청담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남편과 제가 주거와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족 구성, 취향, 생활 패턴이 모두 다를진대 똑같은 구조의 집에 우리의 생활을 맞추는 게 과연 맞을까 고민했고, 각자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죠.”

서재 맞은편에 자리한 가족실. 기둥에 이어진 보, 복도와 20cm 정도의 단 차이가 나는 독특한 구조로 건축적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작은 거실은 해먹을 달아 남자들만의 독립된 휴식 공간을 연출했다. 책을 읽다 낮잠을 자거나 창문 너머로 별을 관찰하는 등 남편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가장 재밌어하는 공간이다. 
도심 한가운데 살다 교외로 이사하면서 이왕이면 아파트와 완전히 다른 환경을 원한 부부가 선택한 타운 하우스. 위층은 단지 내 보도와 수평을 이루고, 아래층은 앞쪽 정원과 수평을 이루며 현관이 두 개인 독특한 동선의 복층 집은 야외 공간을 실내로 구조 변경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공간 구성과 노후한 시스템이 문제였고, 그래서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다양한 인테리어 서적을 탐독하던 부부는 <행복>에 소개한 디자이너 박선영의 레노베이션 기사를 인상 깊게 보았고, 바로 이메일을 보내 첫 번째 미팅을 했다.

아일랜드 식탁이 90도로 배치된 키친&다이닝룸. 펜던트 조명등을 두 개씩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과하지 않으면서 공간에 리듬감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 
박선영 디자이너에게 ‘인테리어’란 사람이 머무르기 위한 장소를 어떻게 공간화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사는 이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파악해야 할 터. 설계부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주 주말에 만나 아이디어를 나눴다는 두 사람은 그 과정이 연애와 흡사하다고 말한다. 카톡으로 그때그때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주말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 취향을 파악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미팅 이상의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 “부부 침실의 욕실은 샤워 부스가 없어도 된다, 주방 상부장은 필요하지 않다, 위층 거실에는 소파와 TV를 두고 싶지 않다, 일의 특성상 책을 정말 많이 읽고, 또 화면이 큰 빔 프로젝터가 필요하다… 등등 클라이언트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부부 침실 화장실은 벽돌을 쌓아 데커레이션할 수 있었고, 주방은 아일랜드를 정면에 두는 오픈형 디자인이 가능했죠. 위층 거실에는 해먹으로 재미를 더했고 서재에는 책 수납에 효과적인 책장과 책상을 맞춤 제작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필요하고 맞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집주인과 디자이너 모두 평소 생활 방식과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디자인이다.

와인과 커피를 좋아하는 건축주의 취향을 고려해 부부 침실 벽과 문에 과감히 와인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다. 요즘 주거 공간을 보면 벽지보다 페인트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풍부한 색감과 청량감에서 단연 우위다. 침실은 기둥에 이어진 보를 고려해 조명 박스가 사선으로 가로지른다. 
‘설계’는 내가 앉을 곳을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집주인 문지애 씨는 위층과 아래층의 기능과 스타일이 두 가지로 나뉘길 원했다. 아래층은 블랙&화이트를 기본으로 한 도시적 느낌, 위층은 건축적 구조미와 컬러 포인트를 더해 다채로움을 선사하는 믹스 앤 매치를 콘셉트로 했다. 먼저 주차장 현관으로 들어서면 약 4m 높이의 천장과 마주한다. 현관과 아래층으로 오르는 짧은 계단, 아래층 거실을 층층이 가로지르는 가벽을 지나면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중심 계단이 펼쳐진다. 계단실 정면 벽은 어두운 공간임을 감안해 레몬 컬러로 도장했고, 전구 조명으로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래층 거실은 천장에 프로젝터를 달아 영상을 즐길 수 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부실이 펼쳐지는 겹집 형식의 구조가 특징. 
기존에 비례가 어정쩡하던 부엌과 다이닝룸은 블랙 철제 중문으로 영역을 확실히 구분했다. 시각적으로는 바로 앞의 거실과 계단실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기능적으로는 음식 냄새가 주방 이외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물건을 두면 평소 꺼내 쓰기 힘들어서 결국 죽은 공간이 된다는 집주인의 의견을 반영해 상부장을 생략하고,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공간을 다용도실로 활용한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6인용 테이블과 와인 냉장고를 둔 다이닝룸은 헤링본 나무 바닥재와 조명등으로 공간을 분할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오픈 욕조. 위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 옆 오픈 공간에 둥근 욕조를 설치해 집에서 ‘노천탕’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안방 파우더룸을 지나 깊숙이 자리한 화장실. 화장대와 화장실로 이어진 벽돌 벽은 좁고 긴 공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아래층이 거실과 키친&다이닝룸의 공적 공간의 조합이라면 위층은 침실과 서재, 드레스룸, 작은 거실 등 사적 공간이 자리한다. 우선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부실이 나뉘는 겹집 형식의 구조가 독특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건축주의 취향은 아래층 거실뿐 아니라 위층 서재와 작은 거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해먹을 설치한 작은 거실과 서재는 복도와 20cm 정도 단 차이가 있는 구조로 독특한 개성을 자아내는 요소다. 부부 침실은 천장 디자인이 특징. 침대를 휘감아 도는 듯한 간접조명은 침대 헤드보드 벽의 강렬한 와인색과 마주하며, 안방 화장실은 간단한 세면과 메이크업을 위한 공간으로 오롯이 안주인의 영역이다.

이 집의 백미는 바로 오픈 욕조. 블랙&화이트의 기하학 패턴 타일이 하얀 욕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주차장 현관에서 아래층, 위층이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구로 철판을 접어 만든 철제 계단을 사용해 개방감을 준다.
그렇다면 집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과연 어느 곳일까? 문지애 씨는 단연 아래층 다이닝룸을 꼽는다.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한 서재가,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품고 있는 공간의 양면성이 마음에 든다. 반면 남편에게는 해먹이 달린 위층 거실이 특별하다. 해먹이야말로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휴식을 누리겠다는 남자들의 로망이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아이템이 아니던가. 내밀하면서도 동시에 개방감이 느껴지는 오픈 욕조에서 피로를 풀고 다이닝룸에서 와인을 즐기는 시간, 서재에서 책을 읽다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는 등 공간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 놀라움과 발견, 감탄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공간을 둘러보다 보니 르코르뷔지에가 즐겨 쓰는 ‘건축적 산책’이란 용어가 떠오른다. 집을 산책하던 중 안락한 공간에 마음이 끌려 걸음을 멈추게 하니, 바로 정자 같은 휴식 공간이 있노라고.

아래층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현관. 4m의 천고를 자랑한다. 
‘스타일’은 생활의 구석구석을 다정하게 보듬는 일
공간을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에 따른 매싱massing(공간을 선과 면이 아닌 덩어리 개념으로 보는 건축 용어)이다. 박선영 실장은 면과 색, 물성, 조명 등을 재료로 효과적으로 공간의 덩어리를 분할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마감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 키친과 다이닝룸을 구분 짓기 위해 헤링본 원목 바닥을 사용했으며, 거실과 키친&다이닝룸이 어정쩡하게 나뉘는 아래층은 존재감 강한 철제 격자문으로 비례를 정리한 것이 그 예다. 서재는 천장과 벽에 연한 그레이와 베이지 등 채도가 낮은 중성적 컬러를 사용하고, 좁은 공간에는 밝은 컬러를 쓰는 등 컬러 선택 역시 스타일보다는 기능적 면을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주거 디자인을 할 때 되도록 안방에는 옷장을 두지 않으려고 해요. 섬유 자체나 섬유에 붙은 미세 먼지가 잠잘 때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안방에서 옷장을 제외하면 쾌적한 휴식 공간이 됩니다. 공간을 비워두되, 천장 디자인을 통해 단조로움을 깨는 게 제 디자인 방식이죠.”

집 전체를 페인트로 도장해 미세한 컬러 차이로 깊이감을 연출했다. 구로 철판, 나무, 타일 등 서로 다른 마감재는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으로 풍부함까지 고려한 것. 
아래층 오픈 욕조 뒤쪽으로 세탁실을 배치하고, 거실 한쪽에 가벽을 세워 빨래 너는 공간을 마련하며, 계단 아래 죽은 공간을 주방 창고로 활용하는 등 살림하기 편리한 생활 디자인까지 알뜰살뜰 챙긴 디자이너. 매싱, 마감재 등 건축적 요소를 더해 레노베이션의 순도를 높였다면, ‘주택은 생활을 담는 용기’라는 관점에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의 생활을 존중한 스타일링이 돋보인다. “공간을 구성하면서 제각기 그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디자이너가 잘 풀어줬어요. 그러다 보니 제 마음에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휴식을 취하는 등의 행위가 자동으로 공간에 프로그래밍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부부의 작은 도서관. 단이 있는 독특한 구조 덕분에 박스 형태의 공간이 완성됐다. 
공간의 역할과 프로그램이 분리되니 집이 어질러지지도 않고 무엇을 해도 집중이 잘 된다는 문지애 씨. 사실 살아보지 않은 동네에서 사는 것도, 아파트에서만 살다 새로운 형태의 주거 환경을 선택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집을 딱 내 마음에 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낯선 환경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부르게 되니, 도심 한가운데 아파트에 살 때보다도 적적하지 않아요. 모든 생활이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나죠. 위층 테라스에 낚시 의자 두고 차 마시기, 뒤뜰에 모종 심기, 바비큐 파티 하기 등등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집이에요.”

지하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현관 앞 난간은 난간이면서 간접조명등 역할을 한다.
디자인을 맡은 박선영은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사무실인 포스터앤드파트너스에서 일했으며 한국에 돌아와 황두진 건축사 사무소에서 서울의 건축을 밀도 있게 수학하고, 삼성물산 건축설계팀에서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디자인 사무소 오스케이프 아키텍튼O-SCAPE Architecten(www.o-scape.co.kr)대표, 광운대학교 건축학과 외래 교수로 활동하며 동탄 타운 하우스, 화정 복층형 타운 하우스, 강원도 홍천 양조장 등 주거 레노베이션과 건축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귀퉁이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특별한 의자는 강덕호 디자이너가 스커트를 모티프로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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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