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패커 임혜란 대표의 복층 아파트 화이트 셔츠처럼 심플하게 리넨 재킷처럼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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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사업을 하며 10년 동안 매장 인테리어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층 아파트를 직접 디자인한 룸패커 임혜란 대표. 화이트와 그레이의 모던한 컬러 매치, 스르르 열리는 자동문,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패브릭 매치까지…. 이 집이 더욱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주거 공간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는 차별화한 마감재, 평범한 일상에서도 나름의 이유 있는 디자인을 찾아낸 ‘생활형 스타일링’ 감각에 있다.
1 소통과 디자인적 묘미를 주는 둥근 창이 달린 방문, 철제 프레임으로 단면을 얇게 제작한 난간 등 상업 공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마감재로 개성을 더한 복층 아파트.
2 딸 방에서 바라본 작은 거실. 와이어 글라스로 디자인한 방화문 덕분에 공간과 공간이 소통한다.
오래된 아파트, 동네 인테리어 업체를 공략하라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골조가 튼튼하고, 최신형 주상 복합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며 선수들을 위해 지은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단지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있어 아이 키우기가 좋아요.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을 정도로 녹지가 풍부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동네라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15~20년은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 싶었지요. 지은 지 30년이나 됐지만 골조가 튼튼하고 복층 구조라 높은 천장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하는 룸패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혜란 대표는 같은 아파트 단지의 단층 구조에 살다 복층 구조로 이사하면서 대대적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이미 열 곳 이상의 매장을 인테리어하며 경험을 쌓아온 터라 공간 구성과 디자인에 자신 있던 그는 시공업체로 단지 내 인테리어 업체를 물색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단지 내에서 오랫동안 매장을 운영해온 업체일수록 특유한 구조와 설비를 잘 파악하고 있어 용이하게 구조 변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도식, 복층 구조의 64평 아파트는 위층과 아래층이 명확히 나뉜 구조였다. 현관 옆으로 좁고 긴 부엌이 펼쳐졌고, 부엌 안쪽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 거실은 널찍했지만 위층과 아래층이 완전히 분리되니 다소 평범하고 뻔한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임혜란 대표가 시공업체 예스디자인과 구조 변경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계단 위치를 중심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현재 현관 앞 옛날 주방 자리에 있던 계단을 거실 쪽으로 옮기 고 2층의 널찍한 거실을 털어내어 메자닌 구조 틀을 완성. 계단의 위치를 바꾸고 천장을 철거하는 구조 변경은 이 아파트의 골조와 설비를 잘 아는 시공업체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했다.
1 아래층 부엌에서 계단을 바라본 모습. 부엌 안쪽에 있던 계단을 집의 중심으로 옮기면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가벼운 형태로 디자인해 공간에 구조적 포인트를 준다. 벽 한쪽에 철심을 박아 고정한 뒤 원목 패널로 감싸고 난간도 원목으로 래핑해 통일감을 줬다.
2 가로등을 연상케하는 유리 센서등과 호수 디자인이 감각적이다.
3 화이트와 그레이의 컬러 매치, 상업 공간에서 즐겨쓰는 마감재로만 정리되었다면 다소 밋밋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됐을 것. 임혜란 대표는 커튼, 침구, 쿠션 등 공간 곳곳에 좋아하는 패브릭 아이템을 더해 부드럽고 따듯한 감성을 더했다.
4 아래층 부부 침실에서 바라본 거실과 주방. 소파 대신 빈티지 책상과 의자를 두어 캐주얼하게 꾸몄다.
“위층은 아이들 공간, 아래층은 부부의 공간으로 나누되, 하나로 소통이 되었으면 했어요. 보통 거실을 확장하거나 게스트룸으로 활용하는 1층 볕 잘 드는 공간에 주방을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죠.” 일하는 엄마다 보니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짧은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는 임혜란 대표. 그는 현관 앞에 있던 기존의 좁고 길쭉한 주방 자리에 보조 주방과 다용도실, 화장실을 구성하고 주방을 거실 왼편으로 옮겼다. 요리나 집안일을 하면서 2층 거실에 있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거실을 향해 아일랜드를 배치해 ㄷ자형 열린 구조를 완성. 상부장을 없애는 대신 키 큰 장과 아일랜드 아래 수납장을 짜 넣어 주방 살림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구조 면에서 또 하나의 큰 특징은 거실이 위층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살펴본 결과, 활용도는 떨어지면서 자리만 차지하는 소파와 TV는 위층으로 옮기고 주방과 계단 사이 자투리 공간에 북유럽 빈티지 테이블을 두어 아이들이 앉아 숙제하거나 부부가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꾸민 것. 메자닌 구조 양쪽의 작은 거실 두 개는 서재 기능을 더한 가족실과 아이들을 위한 작은 라운지 공간으로 연출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종이접기를 하며 두 아이가 재잘재잘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는 말을 실감한다.
5, 6 패브릭 디자이너 이선영 실장은 임혜란 대표가 하나 둘 씩 모아온 프렌치 빈티지 리넨으로 커튼과 쿠션 등 소품을 제작했다.
상업 공간 인테리어로 공간에 특별함을 더하다
이 집의 특별한 첫인상에는 자동으로 스르르 열리는 현관문이 한몫한다. 복도식 구조라 현관이 좁은 게 단점이었는데, 현관문을 여닫이 자동문으로 교체해 공간 활용에 구애받지 않는 현관 겸 전실이 생긴 것.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전면으로 펼쳐지는 계단은 벽 한쪽에 철심을 박아 고정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계단과 메자닌 구조의 2층 난간은 시각적으로 답답함을 없애고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철제 프레임으로 제작했는데, 덕분에 넓은 창을 통해 햇빛을 집 안으로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다. “문을 막고 나눈다는 개념보다는 열리고 닫혀서 공간을 분할한다는 개념을 주고 싶었어요. 와이어 글라스로 창을 만든 문은 시각적으로 답답함을 없애는 것은 물론 인테리어의 개성을 살려주는 효과가 있지요.”
답습하는 것 같은 디자인을 탈피한 아이 방 역시 매장 인테리어를 수차례 진행한 경험을 십분 살렸다. 아이들 방의 문 역시 동그란 창을 뚫어 디자인적 재미를 주었고 아이들이 쓱쓱 그린 그림과 지도, 버킷 리스트 등을 자유자재로 붙일 수 있도록 붙박이 가구 문짝은 철제 보드로 제작했다. 자신의 방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직접 생각하게 하고 방을 꾸미는 과정을 함께 즐기고자 한 의도가 담긴 것.
이 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비결은 패브릭이다. 의류 사업을 하다 보니 패브릭이 주는 특유의 온기를 명민하게 아는 임혜란 대표는 계절이 바뀔 때 트렌드에 맞춰 옷장 속을 업그레이드하듯 집 안의 텍스타일 역시 변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프렌치 앤티크 리넨을 좋아하는 그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패브릭 디자이너 이선영 실장에게 커튼과 침장, 쿠션 등의 제작을 맡겼다. 이선영 실장은 심플한 디자인에 레터링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커튼・쿠션 등을 공간 곳곳에 매치하고, 임혜란 대표가 여행길에 공수한 프렌치 리넨을 부분적으로 활용해 세상에 하나뿐인 포인트 커튼을 제작했다.
7 자동으로 스르르 열리는 현관문은 독특한 첫 인상을 만들어주는 아이템이다.
8 룸패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용하는 택배 포장지. 안쪽에 코팅을 해서 화분 커버, 채소 보관함 등으로 활용한다.
9 위층과 아래층이 완전히 분리되는 구조의 기존 아파트를 과감하게 천장을 털어내어 메자닌 구조로 완성. 천장이 높고 개방감이 느껴지는 복층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위층 작은 거실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지트 같은 공간. 주말이면 아래층 거실이나 부엌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편안한 라운지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한다.
“손님들 중에 옷이 아닌 공간을 연출한 소품을 판매하라는 분이 종종 계세요. 인테리어를 할 때 어떤 것을 참고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처음부터 어떤 이미지에 맞춰 꾸미는 건 아니에요. 룸패커의 화이트 셔츠와 리넨 재킷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공간에 하나하나 적용하다 보니 편안하고 내추럴한 인테리어 스타일이 완성된 거죠.” 마지막으로 집 안 곳곳 선반에 조르르 놓인 화분의 종이 커버가 눈에 띈다. 룸패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배송할 때 포장하는 택배용 봉투로, 쌀 포대처럼 제작한 봉투 안쪽에 코팅을 해 요즘 유행하는 다용도 페이퍼 백으로 활용한 것. “택배 봉투나 상자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봉투 안쪽에 비닐을 한 겹 코팅해 제작했어요. 물이 새지 않는 페이퍼 백은 다용도실에 두고 감자나 양파 등의 채소를 담아두기 좋지요.”
매장 디자인을 하면서 리빙 소품을 더해 옷이 더욱 부각되고, 브랜드 이미지를 완성하는 경험을 했다면 지금은 크든 작든 공간을 꾸미는 것 자체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는 임혜란 대표. 이른바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일임하지 않고 집주인이 직접 디자인과 작업에 참여했기에 원하는 모습대로 완성된 것일 터. 그에게 ‘집’은 매일매일 가꾸고 변화시키는 자신만의 캔버스다.#꾸민집 #아파트 #기타 #거실 #방/침실 #주방 #기타 #셀프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