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문화 거리에 자리한 한옥 호텔&문화 공간 오가헌. 전통 혼례와 연회, 식사 모임 등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
역사가 1백40여 년 된 한옥을 3년간 복원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오옥순 오가헌 대표.
자발적 한옥 전도사 우리는 이상적인 집을 이야기할 때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비유하곤 한다. 기와집, 즉 한옥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집이다. 일단 어느 재료 하나 쉽게 구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옥의 목구조는 상당히 정교하고 경험과 직관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아무 목수나 한옥을 지을 수도 없다. 그만큼 특수한 집이 되어버린 한옥은 짓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양옥보다 족히 두 배는 더 든다. 그러니 누가 섣불리 한옥을 지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오옥순 씨는 달랐다. 그는 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으며, 가장 좋아하던 장소는 불 때는 아궁이 앞이었다.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불꽃으로 타오르는 걸 지켜보는 일이 마음 편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햇살,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소리를 들으며 이내 풍기는 밥 짓는 냄새에 침을 꼴깍 넘기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고향을 떠나 서울의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던 그가 한옥의 추억을 다시 꺼내 든 건 우연히 발동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의 고향 광주에는 도청 옆에 예쁘다고 소문난 한옥이 한 채 있었다. 일이 있어 가끔 광주에 갈 때면 그 한옥을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드디어 고향에 왔다는 실감이 났단다. 그런데 어느 날 한옥 자리에 주차장이 들어섰다. 서울이 가회동, 삼청동을 중심으로 한옥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시작한 즈음이었다.
“그 터를 허망하게 바라보다 근처 부동산에 들어갔어요. 광주에 좋은 한옥이 있으면 부수기 전에 사겠다고요. 그때 소개받은 집이 건너편 집이에요. 한옥을 개량한 근대 가옥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이 집 지붕이 보였어요. 여성의 허리 라인처럼 경사가 완만한 기와지붕을 보는 순간, 문득 저 집에서 좀 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집을 사겠다”고 했을 때 부동산업자의 곤란해하는 표정이란. 지금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오옥순 씨가 집을 ‘발견’했을 때는 거의 폐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낡은 벽돌로 감싼 건물. 기와지붕만 보고 멋진 한옥이 나올 거라 확신한 그는 우선 외피를 벗겨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조심스레 벽돌을 걷어내니 마치 화석처럼 한옥의 외벽이 나타났다. 벽돌을 해체하고 천장의 합판을 드러내니 육중한 대들보와 서까래가 등장. 하지만 감동도 잠시, 바닥을 메운 시멘트를 걷어내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로 할 수 없어 삽으로 하나하나 걷어내야 하는 이 일을 인부들이 반가워할 리 없다. 서울과 광주를 비행기로 오가며 멀리서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던 ‘서울 사모님’은 어느새 삽을 든 오 장군이 되었다. “궂은일은 제가 먼저 시작했죠. 사실 오래된 집을 부수지 않고 되살려서 살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귀찮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차례차례 찾아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다양한 문제가 한꺼번에 몰려들죠. 결국 사람이 하나하나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 내 집 지으려고 고생하는 사람들과 하나씩 천천히, 잘 헤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09년, 집을 고치기 시작한 지 꼬박 3년이 지나고 드디어 완성한 집, 오가헌. 오가헌五佳軒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집주인 오옥순 씨의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집과 나무, 맛, 소리, 놀이의 다섯가지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의미다.
오옥순 대표는 높이 솟은 태산목과 둥근 처마 라인에 반해 스러져가는 한옥을 구입해 이를 3년간 복원했다. 태산목의 굵은 둥치와 줄기로 이 집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1 대청에서 바라본 오가헌의 앞마당. 향나무, 금목서, 7백 년 된 호랑가시나무 등 나무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 중 하나다.
2 일자로 쭉 뻗은 대청. 둥글게 재단한 서까래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오가헌의 서까래는 샌딩 작업을 해 모두 고운 빛깔을 드러낸다.
3 창고처럼 쓰던 공간을 편백나무로 마감하고 욕조를 매입해 근사한 오픈형 욕실을 완성했다.
4 오가헌의 맛을 책임지는 부엌. 방과 아궁이에 불 때는 정주간을 하나로 확장해 원목 마루를 깔고, 아일랜드 조리대를 두어 입식으로 꾸몄다. 한옥의 서까래와 원목 가구가 제법 잘 어울린다.
5 좁은 골목에 간판도 없어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한옥이 펼쳐진다. 대문에서 바라보이는 곳이 오른쪽 날개, 누마루를 방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자연 향기 짙은 한옥 오가헌을 지은 정확한 연도는 1866년이다. 사실 집과 인연을 맺은 사연만큼 집이 품고 있는 세월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기나긴 역사만큼 집을 거쳐간 주인들도 세 개 가문의 7대가 넘어요. 이집을 지은 최원택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다고 해요. 그의 아들 최남주 역시 호남 탄광왕으로 불릴 만큼 넉넉한 부를 이룬 사람으로 영화 제작, 출판 등 문화 사업을 헌신적으로 한 인물이죠. 1930년대에 영화 <무정>을 제작했고, 배우들이 찾아와 이 집에 머물면서 광주의 멋과 맛에 흠뻑 빠졌다고 합니다. 1938년에는 최남주의 초청으로 광주에서 강연회를 연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故 손기정 선생이 묵기도 했고요.”
광주 도심에서 역사가 이 정도 된 한옥이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오가헌이 거의 유일무이하다고 설명하는 오옥순 씨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현재 복원한 오가헌은 14~15칸 정도로 최원택 씨가 지은 집의 안채나 별채로 추정한다. 오가헌은 남도 한옥이지만 ㅡ자나 ㄱ자가 아닌 날개가 있는 구성이 독특하다. 측벽을 돌아 대청에 오르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칸칸이 펼쳐지고, 오른쪽 날개 부분에 작은 방과 부엌이 연결되는 구조다. 원래 아궁이에 불을 때는 부엌이었으나 편의상 바닥을 메우고 아일랜드 조리대를 둬 입식 부엌으로 개조했다. 바닥은 모두 황토로 채운뒤 숯을 갈아 넣었고, 대청은 마루를 새로 깐 뒤 옻칠을 두 번 해 완성했다. 서까래와 대들보는 원래 한옥에 남아 있던 것. 심지에서만 볼 수 있는 고운 결로 추정해볼 때 그 굵기가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집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때 돌과 흙, 나무 등 오롯이 자연 재료만 사용했습니다. 비바람과 눈을 맞고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 서까래, 기둥들은 모두 질 좋고 튼튼한 금강송으로 하나하나 얇게 샌딩했어요. 그래서 색이 일정하고 곱죠. 쾌적하고 따뜻한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팔만대장경 장각판의 건축법을 활용해 바닥 공사를 했고요. 바닥에 소금을 채운뒤 고운채로 거른 흙을 해초 끓인 물로 이겨 발라 마무리하는데, 이것이 바로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해요.”
기자가 사는 동네는 자그마한 한옥이 많은데, 실제 공사하는 걸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가령 마당에 가득 쌓여 있던 흙더미가 모두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과연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오가헌도 지붕에 흙을 채웠다. 한옥은 흙이 있어야 지붕 선이 유지되고 단열도 되며 무게 중심을 잡아줘 건물이 흔들리지 않는단다. 그래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생각보다 웃풍이 없이 따뜻하다.
“한옥에 너무 많이 ‘편리’를 들이면 멋이 사라져요.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하죠. 예를 들면 남향의 대청마루는 꼭 보일러를 깔지 않아도 됩니다. 겨울 한낮의 볕으로 마루가 뜨겁게 달궈져 한겨울에도 아랫목에 앉은 듯 따끈하니까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여섯 달 만에 지은 별채는 하우스 웨딩 할 때 연회장으로 사용한다. 뒤뜰을 확장해 칸칸이 나눈 작은 방은 그간 모은 그릇과 소품을 장식하는 쇼케이스다.
1 무화과, 모과, 석류나무 등 계절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과실수가 많다. 올해는 감이 풍년. 잘 말려 다과로 낸다.
2 이모님에게 물려받은 분청 도자를 비롯해 여행을 하며 각지에서 모은 그릇, 커틀러리, 찻잔 등 귀한 볼거리가 풍성하다.
3 오가헌에서는 비빔밥과 팥죽 등 간단한 먹거리와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다. 오옥순 대표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4, 5 부엌 한쪽에 쌓여 있는 소반에 각상으로 정갈하게 차려내는 비빔밥.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재료 하나하나 그 맛이 살아 있고 자극적이지 않다.
한옥의 장점은 유연한 공간 구성에 있다. 문을 모두 닫으면 근사한 호텔로 변신하는데, 오가헌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한옥 스테이도 진행한다.
안채와 별채 사이 자그마한 구옥을 개조해 만든 살림집.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끈한 찜질방이 된다.
안채 오른쪽 날개 끝에 있는 방에서 안채 마당을 바라본 모습.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 “처음에는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했어요. 딸아이 결혼을 준비하다 문득 하우스 웨딩으로 전통 혼례를 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담한 정원에 꽃길을 만들고, 꽃가마가 들어서면 국악이 울려 퍼지는…. 한쪽에선 떡메도 치고 전도 부치고, 그야말로 흥겨운 잔칫집이었죠.” 그 후 하우스 웨딩을 전통 혼례로 치르고 싶다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연락해 아예 전통 혼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인 신부와 영국인 신랑의 하우스 웨딩도 진행했다. 평소에는 비빔밥, 팥죽 등 간단한 음식도 판매하는데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만 내려가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한다. 한국의 맛을 제대로 알리고픈 마음에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 미식 투어단의 공식 연회를 치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비결은 바로 한옥의 유연한 공간 구성 덕분이다. 방과 방 사이사이 분합문(옆으로도 열리고 위로도 열리는 문)을 모두 열면 하나의 공간이 되니 연회장이나 회의장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문을 다 닫으면 프 라이빗한 호텔이 되는 것. 실제 오가헌에 들어서면 다실과 마주하는 왼쪽 끝에 근사한 욕조가 있다. 원래 창고처럼 쓰던 공간을 오픈형 욕실로 개조한 것인데, 이 집만의 특별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공간을 볼 때 예쁜 면을 보잖아요. 저는 어디가 제일 미운가를 봐요. 미운 곳을 예쁘게 만들면 그 집은 예쁜 집이 되니까요.”
집 짓는 3년 동안 전통 한옥의 구조를 속속들이 체득했고 그러는 가운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한 수 배웠다는 오옥순 씨. 오가헌을 모태로 자그마한 한옥 마을을 조성하는 것도 바람이다. 조금 엉뚱하지만 가족 합창단도 만들고 싶단다. 아직 연회의 흥이 남아 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가곡 한 소절을 뽑는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를 배 떠나간다/ 순풍에 돛 달고서 어서 떠나자/ 서산에 해 지며는 달 떠온단다….”
오미자차를 마시며 난데없는 노랫가락을 듣는 이 순간, 인생은 노래하듯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기쁨과 슬픔, 인내와 희열, 고난과 희망 모두 인생이라는 악보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될 수 있으니. 역시 한옥은 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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