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 아천동 아치울마을에 자리한 김은주 씨의 주택. 지층은 모던 스타일을 시도한 유일한 공간이다. 블랙, 그레이 등 모노톤을 기본으로 하면 김은주 씨가 평소 좋아하는 클래식과 모던이 함께 어우러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고급스러움을 더할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른 것. 소파와 패브릭은 에프알디자인 제작.
좋은 인테리어란 집주인의 취향이 제대로 반영된 공간이다. 하지만 취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취향이 어떠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레노베이션에서 전제되어야 할 집주인과 디자이너의 궁합,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부분 캐노피와 곡선 라인의 헤드보드, 화려한 문양의 침장까지 세미 클래식 스타일로 완성한 침실.
단독 주택에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람들은 땅부터 물색한다. 풍광 좋고, 지리적으로 접근하기 편리한 곳. 적당한 땅을 발견하면 과연 어떤 집이 좋을까 고민하며 건축가와 시공사를 알아본다. 건축가에게 설계 도면을 받고 시공사를 선정해 집을 짓기까지 몇 달의 과정을 거쳐 골조를 마감한 뒤에는 가구·벽지·조명등·패브릭·스위치 커버 등 집을 집답게 만들어주는 세부 선택 사항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의 취향을 가장 많이 드러낼 수 있는 바로 이 과정에서 집주인 대부분은 지치고 힘이 빠진다. 건축가가 설계한 후 시공사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대부분 집주인의 몫이요, 야심 차게 스크랩해둔 특정 스타일을 요구해봤자 한정된 예산으로는 어림없다는 볼멘소리만 되돌아오기 일쑤다. 건축가가 설계한 구조적이며 심플한 마감은 살릴 수 있지만 스타일이 보이지 않는 집, 이는 바로 건축가와 시공사 사이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역할이 빠졌기 때문이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짓기로 결심한 김은주 씨도 보통 사람들처럼 먼저 건축가를 정하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설계안을 받는 순간 어딘지 2% 아쉬운 마음이 들었단다. 건축미는 빼어났지만 그가 생각하는 집이 갖춰야 할 미덕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인테리어 마감도 원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 레노베이션을 맡은 에프알디자인 최선희 대표에게 인테리어 자문을 얻기 위해 전화를 걸었죠. 그런데 마침 에프알디자인이 건축팀과 협업해 판교에 집을 짓고 있다는 거예요. 그날 바로 사무실로 찾아갔어요. 에프알디자인은 제가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줄뿐더러 가구, 패브릭, 액자 하나까지 완벽하게 구현해주니까요.”
통상적으로 건축가가 건축물의 종합 설계를 담당한다면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설계상 좀 더 세밀한 부분, 즉 각 공간의 미학과 기능, 개성을 책임진다. 외국처럼 건축가가 집을 설계할 때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함께 투입되어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면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함께 보면서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최선희 대표는 강조한다. 아천동 주택은 외주 건축팀과 설계부터 함께 조율하고 시공, 내부 데커레이션까지 진행한 맞춤 레노베이션 케이스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완성한 블랙&화이트 세로 스트라이프 벽과 블랙 도기가 인상적인 3층 욕실.
최근 욕실 인테리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오픈 구조다. 침실과 연결된 욕실은 문과 문턱을 없애거나, 채광이 좋은 곳에 욕조를 배치하고 큰 창을 내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창에 필름을 부착해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2층에 자리한 부부만의 프라이빗한 거실. 인조 대리석으로 제작한 테이블 외에 모든 가구는 리폼해 사용한다.
1 아일랜드 조리대에서 다이닝 테이블을 바라본 모습. 식탁 위 조명등은 모오이 제품이다.
2 계단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곳에 가벽을 설치해 덤으로 복도가 생겼다. 가벽 앞쪽으로는 액자와 의자를 두고, 뒤쪽으로는 페치카를 설치했다.
3 주택에 사는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디자이너는 테라스, 덱 등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3층 테라스는 헤이의 라운지 체어와 스트라이프 해먹을 이용해 캐주얼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4 모듈 방식으로 제작해 해체와 변형, 확장이 가능한 책장. 조형적 형태와 블루 컬러가 공간에 확실한 포인트가 된다.
채광 좋고 개방감이 느껴지는 주택살이의 묘미 아치울마을 언덕 위에 모던하게 들어선 김은주 씨의 집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건물 후면과 연결되는 1층 현관이 건물 전면부에서 보면 2층인 구조다. 현관을 기준으로 한 층 내려가면 거실과 다이닝 공간이 펼쳐지고, 한 층 올라가면 부부 침실과 프라이빗한 거실 그리고 서재가 자리한다. 3층은 유학 간 두 아들의 공간.
“외국에는 뒤쪽에서 보면 지층인데 앞으로는 시원한 전망이 펼쳐지는 이런 구조의 집이 많아요. 마당과 연결 되는 지층 같은 경우 거실부터 마당까지 확 트인 개방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죠. 벽으로 공간을 막는 대신 큰 가구나 가벽만으로 공간을 분리해 유기적 느낌을 냈어요.”
가벽을 중심으로 왼쪽은 주방 수납장과 조리대, 오른쪽은 소파와 커다란 다이닝 테이블을 병렬식으로 배치했다. 소파와 마주 하는 가벽 앞면에는 TV와 페치카를 설치하고, 뒷면에는 주방 수납장을 짜 넣은 공간 활용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또한 집주인에게 주택에 사는 묘미를 제대로 만끽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최선희 씨는 3m 이상의 높은 천장고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덱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지층과 덱은 하루 중 김은주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처음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모두 부엌이 어디냐고 물어요. 가벽 뒤로 수납장을 짜 넣고, 카운터처럼 턱을 높인 조리대를 설치해 거실 입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동선이 참 마음에 들어요. 조리대부터 수납장까지 양쪽으로 길게 배치되어 저장 식품이나 그릇 찾기도 편하고, 지저분한 건 가벽 뒤로 숨길 수 있으니 갑자기 손님이 와도 걱정할 필요 없죠.”
초록색 소파, 벽돌 마감 등 캐주얼하면서도 빈티지하게 완성한 3층 두 아들의 거실 겸 서재. 2층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보이드 구조가 특징이다.
집주인 김은주 씨(왼쪽)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선희 씨. 최선희 씨는 실제 ‘단골 고객’이 많다. 5년 전, 10년 전 레노베이션을 맡긴 클라이언트가 그의 세세한 관심과 디테일에 감동해 이사를 하면서 혹은 살던 집에 변화를 주고 싶어 다시 레노베이션을 의뢰하는 것. 김은주 씨 역시 두 번째 인연이다. 이처럼 건축과 인테리어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 설계 당시부터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고려해 구조, 마감재는 물론 가구, 패브릭 등 세세한 부분까지 테마를 잡고 진행해 만족도가 높다.
리폼 가구로 취향을 반영하다 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부부 침실과 프라이빗한 거실이 있는 2층 공간이 다. 웜 그레이와 베이지 톤의 컬러웨이, 몰딩과 타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한 침실과 욕실은 마치 18세기 후반의 건물을 레노베이션한 부티크 향수 브랜드 조 말론Jo Malone의 런던 쇼룸을 보는 듯하다. 캐노피가 드리워진 침대 위에는 침장과 베개, 쿠션이 그림같이 세팅되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침대 정리란다. 침대 맞은편, 가장 채광이 좋은 창가에 배치한 노출형 욕조는 또 어떠한가. 다소 비현실적으로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침실과 욕조는 여자라면 한 번쯤 누리고픈 호사스러운 공간이다.
부부만의 프라이빗한 거실은 3층으로 이어지는 보이드 구조와 가벽 활용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가벽 하나로 거실에는 또 하나의 공간, 복도가 생긴 것. 가벽 앞쪽으로는 클래식한 의자와 그림을 장식하고, 뒤쪽으로는 페치카를 설치해 6m 높이의 통창에 길게 떨어지는 커튼과 함께 색다른 공간감을 선사한다. “아파트에 오래 살던 부부가 갑자기 2층 침실에서 지하 거실과 주방을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남편 서재 겸 부부만의 작은 거실을 추가로 구성했죠. 책상 옆에 커다란 장식장을 두고, 개수대와 냉장고를 마련해 간단한 차나 간식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김은주 씨는 디자이너의 이런 세심한 배려를 높이 산다. 또 작은 거실에 있는 가구는 모두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를 리폼한 것이란다. 각기 다른 장소에 있던 소파와 암체어는 커버링을 다시 해 색상 톤을 맞추고, 장식장과 의자는 프레임을 블랙으로 도장해 요즘 유행하는 뉴 클래식 오브제로 재탄생한 것.
“사실 경제적 가치만 두고 따진다면 리폼은 디자이너나 소비자에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에요.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상당하니까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잖아요. 소비자가 그 물건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면 굳이 스타일이 안 맞는다고 교체할 것이 아니라, 재배치와 리폼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주는 게 바로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침실의 노출 욕조도 시중 제품이 너무 비싸 도장해주는 업체를 찾아 따로 제작했다는 최선희 씨. 3층 두 아들의 공간에 놓은 모듈 책장과 소파, 침대, 선반 등은 모두 제작 가구로 비용을 낮췄다. 두 아들 방에 하나씩 둔 카우치형 1인용 소파는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활용도가 높다.
“아천동 주택은 건축 단계부터 서로 조율해나가 디자인 면에서 좀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김은주 씨와는 이미 한 차례 레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웬만큼 파악하고 있었기에 한결 수월했고, 무엇보다 무조건 신뢰하고 따라 주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요.”
좋은 인테리어란 집주인의 취향이 제대로 반영된 공간이다. 하지만 취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취향이 어떠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레노베이션에서 전제되어야 할 집주인과 디자이너의 궁합, ‘척 하면 척’ 알아듣는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또한 까다로운 취향을 고려한 인상적 선물은 평소 상대방에게 얼마나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취향에 꼭 맞는 ‘집’을 선물 받은 김은주 씨는 매일매일 근사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이란다.
디자인 및 시공 에프알디자인 (02-3446-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