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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꿈의 집, 1년 후 카페 서연의 집
첫사랑이라는 감성 소재를 ‘건축’이라는 개념과 접목해 화제를 모은 영화 <건축학개론>. 실제 영화 속에서 주인공 승민이 서연을 위해 지은 집이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드라마틱한 폴딩 도어, 나른한 옥상 잔디밭에서의 휴식을 기대하며 ‘카페 서연의 집’을 찾았다.


1년여의 공사를 거쳐 지난 3월 27일 오픈식을 하고,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한 카페 서연의 집.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간을 직접 둘러보고 흔적을 향유할 수 있도록 갤러리 카페 형식으로 신축했다.

카페 서연의 집은 바다를 바로 앞에 두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두 주인공이 2층 잔디 옥상에 누워 있는 모습은 제주의 바다와 하늘이 함께 담겨 <건축학개론>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힌다.

카페 2층 공간.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 영화의 의미와 기억을 오래도록 전해줄 이곳은 명필름 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최근 젊은 층의 제주 이민이 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제주 인구가 5천 명 증가했다는 통계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늘 푸른 귤나무, 올레길 등 제주는 도시민을 위한 치유의 아이콘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관광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의 중요한 모티프로 주목받은 ‘서연의 집’은 제주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다. 주인공 승민과 서연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다시금 확인하는 곳이자, 탁 트인 바닷가를 조망할 수 있는 통유리창, 두 주인공이 누워 낮잠을 자던 잔디 옥상 등 눈이 호사하는 명장면을 선사하지 않았는가.

집, 카페, 갤러리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바닷가에 자리한 ‘카페 서연의 집’은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지은 세트를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구승회 씨는 ‘서연의 집’ 인기 비결로 지극히 영화적인 풍경과 주변에 펼쳐진 자연을 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축이 한 일은 별로 없다는 겸손한 설명도 덧붙였다. “애초 집을 짓는다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였기에 ‘서연의 집’이 들어설 장소와 지역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이은 대표는 제주가 어떠냐 물었고, 스무 곳이 넘는 집을 헌팅하며 위미리 바닷가의 오래된 양옥을 선택했죠. 붉은 타일로 마감한 1층 집은 마당에 온갖 풀이 무성했는데, 다락방 너머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나 훌륭했어요. 검은 돌들이 흩뿌려진 바다와 빨간 등대까지, 드라마틱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죠.”

서연이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원하는 집의 모습에 몇 가지 영화적 이야깃거리를 충족시킬 장치를 덧붙여 만든 공간은 폴딩 도어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과 잔디 옥상이라는 두 요소로 또 다른 주인공이라 불릴 만큼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제작사인 명필름은 시나리오 작업실로 사용하려던 공간을 더 많은 사람과 영화 속 감성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카페 겸 갤러리로 방향을 수정했고, 6개월간의 설계와 6개월간의 시공을 거쳐 지난 3월 카페로 오픈했다.

구승회 씨는 최대한 영화 속 모습을 반영하되 실제 집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요소를 수정했다. 기존 세트는 대지 경계선 상관없이 건물이 앉아 있었으나 신축할 때는 대지 경계선을 지켜야 하기에 집이 전체적으로 뒤로 물러나야 했다. 또 바람이 심한 바닷가 집에 기와를 얹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 기와를 생략하고, 2층 옥상은 안전을 위해 난간을 추가했다. 카페 2층 잔디 옥상은 면적이 조금 줄었지만 오붓하게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를 배치하고, 1층에는 CD플레이어를 설치해 혼자 온 여행객도 지루하지 않다. 승민이 서연을 위해 만든 건축 모형, 연못에 난 발자국, 키를 잰 흔적, 영화 속 스틸 사진 등도 카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1 영화의 건축 자문을 맡은 구승회 씨가 카페를 설계하고 미술감독 우승미 씨가 인테리어를 총괄했으며, 연출을 맡은 이용주 감독도 아이디어를 보태는 등 <건축학개론> 제작진이 다시 모여 영화 속 장면과 흔적들을 보존한 멋진 카페를 탄생시켰다. 왼쪽부터 구승희, 우승미, 이용주 씨.
2 공간 곳곳에 <건축학개론> 스틸 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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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서연의 발자국이 찍힌 수돗가가 작은 연못으로 변신했다. 제주의 생태를 보는 듯 야생화로 꾸민 조경은 ‘일곱난장이의 숲’ 조의환 대표가 진행했다. 
4 빨간 파벽돌로 마감한 입구.

제주의 기존 가옥보다 규모가 큰 건축물 이 된 카페 서연의 집. 검은 현무암을 닮은 짙은 회색 뿜칠로 외장을 마감해 주변 경관을 해치거나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카페 2층 잔디 옥상은 오붓하게 누워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아웃도어 데이 베드를 두었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하고 낮은 원목 가구로 라운지처럼 완성한 내부 인테리어는 서연의 집 세트를 시공한 우승미 미술감독이 맡았다.


폴딩 도어와 잔디 옥상, 경계의 점유 내부 공간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역시 1층의 폴딩 도어(접이식 문)다. 불과 10m 앞에 펼쳐진 바다를 집 안으로 들이는 역할을 하는 폴딩 도어는 어정쩡한 단이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일반 의자 높이 정도의 넓은 턱이 있어 폴딩 도어를 열면 작은 툇마루 같은 공간이 생기는 데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앉아 CD플레이어를 듣거나, 차를 마시거나, 두 명이 책상다리를 하고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 선반처럼 무언가를 올려두는 역할도 한다. 완벽한 내부도 아니고 마당도 아닌 공간, 구승회 씨는 이를 ‘경계의 점유’라 설명한다. “경계가 되는 부분을 좀 더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 했어요. 창은 열리고 닫히며 안과 밖을 나누고 연결하잖아요. 단, 바람이 심할 때는 바닷가에서 돌이 튀어 올라오기도 해 나무로 만든 슬라이딩 도어를 덧문으로 설치해 보완했어요.” 또한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2층의 잔디가 깔린 옥상 이야기를 한다. 구승회 씨는 이 옥상에서도 중요한건 어쩌면 잔디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서연의 집 옥상이 다른 공간과 차별되는 점은 바로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 정확히 얘기하면 오직 끝을 알 수 없는 하늘과 햇볕만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답답함을 털어버리고, 풋풋한 감정을 나누고, 공명하게 울려 퍼지는 옛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건축학개론>은 무려 4백만 명이 관람한 영화다. 이미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공간이라 설계를 수정, 보완하는 데 부담감이 컸을 터. 실제 카페 오픈 후 달라진 모습에 서운해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구승회 소장을 비롯해 명필름의 심재명・이은 대표는 “자연이 해결해줄 것”이라 자신한다. 사실 폴딩 도어, 옥상 모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그 너머 바다가 있고 머리 위로 하늘이 펼쳐지니 감동스러운 것. 영화 속에서도, 영화 밖에서도 위미리 바다가 8할 이상의 역할을 할 테니 변치 않을 자연을 통해 영화 속 정서를 충분히 느끼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1리 2975번지 문의 064-764-7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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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