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을 전공해 남편이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그 나라 말을 배우는 안주인 에리카 씨. 사진 촬영을 부탁했을 때 “행복이가득한집” 이라고 정확히 발음하며 서울에서 보던 잡지에 집이 실리게 되어 영광이라고 선뜻 응해주며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부부가 앉은 소파는 이케아, 원목 의자는 깔리가리스 제품. 카펫은 튀니지 여행길에 구입한 것.
15세기에 지은 아파트로 들어서는 입구.
이태원 고가구점에서 구입한 한국 전통 문틀에 유리를 얹어 커피 테이블로 사용한다. 푸른색 소파는 까시나 제품.
1 경주 여행길에 구입한 신라 토기를 본뜬 오브제와 몽골에서 구입한 함을 매치했다.
2, 4 산마르코 광장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서재와 침실.
3 분청사기를 좋아하는 부부는 술잔을 화기로 활용하고, 그릇과 접시를 그 옆에 오브제처럼 두었다.
한때 ‘퓨전fusion’이란 단어가 문화의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사전에서 fusion이란 단어를 찾으면 용해, 합병, 융해 등 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음식이든 패션이든 주로 동서양의 문화를 접목했을 때 즐겨 사용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태고 이래 모든 문화가 퓨전일진대 유독 최근에 화두가 되었음은 조금 의아하지만, 그만큼 동서고금의 문화를 접합 하는 작업에 개안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마리 오 스카를레트Mario Scarlet・에리카 슈베이체르Erica Schweizer 씨 부부의 아파트는 동서고금 퓨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에 지은 5층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구석구석 한국의 멋이 물씬 풍기는 마감재와 가구, 소품을 장식했 으니. 더구나 베네치아는 동양의 문화를 서양에 전파하던 실크로드의 종착역이 아닌가? 인류 문화사에서 동서양 문 화의 종착지, 퓨전의 기원인 역사적 도시에서 퓨전 인테리어를 맞닥뜨린 즐거움이란!
한국의 담백한 멋에 빠지다 이 즐거움을 제공해준 마리오・에리카 씨 부부와의 인연은 13년 전인 2000년 가 을, 마리오 씨가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의 과학 담당 서기관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보통 외교관의 삶이 그렇듯 새로운 근무처에 부임하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행보를 넓히기 위해 현지인과 잦은 교류를 갖게 마련이 지만 이 부부의 경우는 약간 예외였다. 의례적인 사교 모임을 통해 가벼운 교류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진지 하게, 머무는 동안 그 나라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면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 부임하든 제일 먼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앤티크 숍을 찾는다는 이 부부는 주말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도락이었고, 기회 만 닿으면 자선 활동도 열심히 하는 보기 드문 주재원이었다.
피사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한 로마 출신의 마리오와 파도바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이탈리아 북부 피에라디프리미에로Fiera di Primiero 출신인 에리카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남남북녀. 더구나 산세 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돌로미테에서 태어난 에리카와 1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로마 출신의 마리오가 만났으니 지방색이 강한 그들은 남쪽과 북쪽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다소 다혈질(?) 부부다. 하지 만 그 둘도 의견의 접점을 이루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 근무 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고 4년 동안 나라 곳곳을 돌아본 일이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우리 딸 실바를 임신했어요. 입덧이 너무 심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한국 의 고색창연한 문화가 계속 그리웠죠. 그래서 언젠가는 베네치아에 동서양을 접목한 보금자리를 꾸미기로 마음먹었 어요. 기둥과 천장 골조가 한국의 전통 가옥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한국을 떠나 잠깐 고국 근무를 마친 뒤 다시 선택한 근무처는 유럽연합(EU)의 본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이었다. 유럽연합의 환경・문화를 연구하는 부서에 지원했는데, 이유는 가정과 딸의 육아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고. 잦은 저녁 파티와 모임으로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외교관 생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니, 역시 서울에서 보여준 진지한 삶의 태도를 반영한 결정 아닌 가? 그리고 4년간의 유럽연합 연구원 생활을 접고 유네스코로 자리를 옮긴 마리오 씨는 장모의 고향이자 처갓집에서 가까운 베네치아에 자리를 잡았다. 베니스의 유네스코 사무소에서 과학 담당 치프로 활약하는 그는 “이제 드디어 한 곳에 정착해 문화를 보존하는 일에 남은 삶을 바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1 계단 아래 좁은 공간은 아담한 사이즈의 반닫이와 이층장을 두어 수납장으로 활용한다. 와인 잔 수납장으로 활용하면 좋다고. 장과 원앙새는 장안평에서 구입.
2 차 거름망 또한 장식품이 될 수 있다니. 밋밋한 벽면을 재미난 갤러리로 변화시켰다. 전통 소품인 실패, 부채 등도 장식 오브제로 활용하면 좋다. 차망은 인사동에서 구입.
3 침실 거울은 베니스 지방 장인이 만든 것. 가구는 모두 B&B 이탈리아 제품.
4 마리오・에리카 씨 부부와 딸 실바. 아파트 거실 창문에서 수로를 내려다볼 수 있다.
부부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리빙룸. 현관을 지나 거실에 들어서면 줄지어 있는 천장 대들보가 눈에 띈다. 자재는 이탈리아 것을 사용했지만 기법은 한국의 전통 가옥과 비슷하다. 부부에게 집은 한국을 알리는 일종의 대사관 같다. 집 안 곳곳에 한국 전통 가구나 소품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현지인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열심이다.
한옥의 정취가 멀리 베네치아까지 베네치아는 관광객에게는 한없이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물의 도시다. 하지 만 모든 이동 경로가 물길인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 더구나 가족은 오랜 외국 생활로 편리 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던 터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문화유산 격의 베네치아 아파트들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환기가 잘되는 주거 공간, 엘리베이터도 있으면서 전망 좋고 환한 거실을 갖춘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무려 3개월간 찾아다닌 부부는 산마르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이사가 문제였다. 모든 가구와 짐을 수상 보트로 옮겨 건물 밖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로 날랐으니 서울에서부터 가져간 가구를 옮길 때의 고생은 그야말로 평범 한 필설로 형언키 어려웠다. 그나마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면 다행이고 못 들어가는 가구는 꼭대기 층까지 등짐으로 날 라야 했다. 그렇게 아찔한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한국 고가구와 소품들을 현지에서 구한 가구와 보기 좋게 배치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금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러 나라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저는 물건을 보면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직감적으로 떠올라요. 예전에 이태원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한국 전통 문이 그 예죠.” 에리카 씨는 전통 문살에 유리를 얹어 소파 테이블로 활용한다. 사용해보니 한국 고가구는 무척 기능성이 뛰어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가구가 낮고 자그마해 계단 아래, 복도 한쪽 등 좁은 공 간에도 매치하기 좋다는 것. 우리 전통 소품은 집 안을 꾸미는 데도 아주 효과적이다. 차 거름망을 벽에 조르르 걸어 둔 것을 보니 우리보다 우리 전통 소품을 더 유용하고 멋스럽게 사용할 줄 아는 그들의 감각이 새삼 부럽다. 음식으 로 따지자면 두루치기처럼 두루두루 어울리는 것,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앤티크와 한국 고가구의 매력 아닌가.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잉태해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스파게티나 피자보다 밥을 좋아해 쌀 요리를 준비한 날 은 어느새 식탁으로 달려와 한 접시 뚝딱 해치워요.” 혹시 DNA도 퓨전화된 것은 아닐까? 부부 역시 한국 음식을 좋 아하는데 마리오 씨는 미역국과 비빔밥을, 에리카 씨는 잡채를 꼽는다. 그리고 가끔 내가 베네치아를 방문해 미역국 과 잡채, 비빔밥을 준비해주면 유네스코 사무실의 동료들까지 초대해 한국 음식을 함께 나누며 건강한 식문화라고 열띤 찬양을 펼친다. 그러고 보니 계단 옆 이층장에도 서울에서 구입한 도자기 세트가 한가득이고, 한국 음식을 먹을 때면 꼭 젓가락을 고집한다. 마치 한국을 알리는 일종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그네들이 베네치아의 한복판 산마르코 광장에 둥지를 틀고 있음이 그저 고맙고 신기할 따름이다.
유네스코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오 스카를레트 씨.
1 아담한 정원이 싱그러움을 더하는 아파트 입구.
2 맞은편 아파트의 자가용 모터보트를 정박해두는 곳. 사실 물길이 유일한 통로기 때문에 마치 차고의 입구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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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장명숙 씨는 34년 전 한국인 최초의 밀라노 유학생으로 국제적 패션 학교 마란고니Istituto Marangoni에서 무대의상과 스타일리스트 과정을 전공하고 30년간 서울과 밀라노를 오가며 교수와 디자이너로 활약, 2001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명예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국 다음으로 이탈리아의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지금도 이탤리언의 삶 속에서 배울 점을 발견. 혼자 알기 아까운 이탤리언 라이프스타일을 <행복>에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