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해내는 넷 제로 에너지 하우스로 건축주 정소익 씨의 공간, 부모님 공간, B&B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2 소솔집의 건축주이자 문화 기획자, 건축 교육자인 정소익 씨와 어머니. 두 사람 뒤로 보이는 작은 박공집이
정소익 씨의 공간이다.
3 다락을 포함해 아래・위층을 모두 합한 면적이 약 231m2(70평형)인 소솔집. 지붕에는 3kW 태양광 발전 설비와 난방을 위한 태양광 집열관을 설치했다. 태양열 난방과 태양광 발전 설비, 보조용 화목 보일러를 포함해 평당 4백30만 원의 시공비로 완공했다.
‘소솔집’을 만나기 위해 여행하는 기분으로 남해를 찾았다. 소솔집은 ‘아름다운 식솔이 있는 집’이라는 뜻.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 잡은 집들이 이웃하는 마을에서 소솔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구릉을 타고 자연스레 펼쳐진 다랑논의 끝자락, 산등성이를 등지고 자리한 소솔집은 다행히 위용 넘치는 건축이 아니었다. 뱃머리에 점잖게 앉아 바다를 감상하는 새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자태로 그곳에 있었다.
문화 기획자이자 건축 교육자인 건축주 정소익 씨와 공공 예술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양수인 씨가 함께 완성한 소솔집은 친환경 주택이다. 수많은 에너지와 재화를 소비하는 현대 건축은 존재 자체로 환경을 침해한다. 그건 비단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동굴에서 살고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거처를 만들던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필요에 의해 생산하는 건축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소솔집은 이러한 현대 건축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과로 연구하고 발전 중인 넷 제로Net Zero 에너지 하우스를 따른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해 자원을 보존하고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디자인. 건축 단계부터 지속 가능한 건물을 완성해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자급자족형 집이 바로 넷 제로 에너지 하우스다.
1 세로로 긴 구조의 메인 동에서 거실 반대편에 자리한 주방. 노출 마감과 합판, 블랙&화이트 주방 가구가 모던하게 조화를 이룬다.
2 왼쪽으로 보이는 계단은 아래층 B&B로 연결되며 세로로 긴 정면 끝에 주방이 위치한다. 주방을 지나면 건축주인 정소익 씨의 공간이 나오는 배치다.
3 지인들이 올 때마다 가져온 묘목으로 함께 정원을 가꿔가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건축주는 집들이 선물로 묘목을 희망한다. 이 작은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 안부를 묻고 이어가는 구실을 할지도 모른다. 아직 황량한 소솔집 마당에 유자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다.
친환경 소재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
“오래전 밀라노 유학 시절 석유 파동으로 운송업이 대대적인 파업을 한 적이 있어요. 파업 3일 후 밀라노 시내에서는 어떤 신선한 먹거리도 구하기 힘들었죠. 우리의 생활 패턴이 얼마나 취약지를 몸소 체험했어요. 그 일을 경험으로 언젠가는 자족할 수 있는 생활 터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건축주 정소익 씨에게 귀농은 막연하지만 오랜 꿈이기도 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솔집은 마을 공동체에 기반을 둔 자족적 삶을 위해 정소익 씨가 시도하는 첫 실험이자 의지였다. 그가 이 계획을 현실화하고자 찾은 파트너는 건축 사무소 삶것의 양수인 소장. 그는 건축 작업과 함께 꾸준히 시민 참여형 공공 예술을 선보이는 작가이기도 하다. 명분과 의미가 확실한 작업에 열성을 보이며 최대한 논리적인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축가인데,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지극히 일반적이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공공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이 건축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건축, 도시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공유해오던 건축공학과 선후배가 의기투합한 결과물이 소솔집이다.
“한정된 조건 안에서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 건축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건축주가 원하던 넷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위해 필요한 첫번째 조건은 단열입니다. 이건 건축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죠. 두 번째
는 사는 사람의 의식 변화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고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이야기죠.”
건축가 양수인 소장은 소솔집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효율적인 관리와 사용이 가능한 건물 상태, 즉 완벽한 단열이었다. 건물 구조체 외부에 단열재를 입히는 외단열 시스템을 적용했는데, 20cm 두께의 콘크리트 벽 위에 다시 20cm 두께(법적 단열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로 외단열을 하고, 그 위에 고무 소재 우레아(방수에 용이한)를 뿌린 후 본 타일을 바르고 도장해 외관을 완성한 것이다. 집의 단 1cm의 공간도 외기가 직접 닿지 않는 구조다. 집의 남쪽 지붕 경사는 연중 태양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평균 각도로 기울였으며, 그 면적 역시 태양열, 태양광 설비에 딱 맞는 크기로 계획했다. 비상용 보조 보일러도 나무를 때는 화목 보일러를 사용해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했다. 본래 단열을 위해서라면 크기를 줄여야 하던 창은 좋은 풍광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크기를 늘린 대신 창문과 벽 사이의 기밀도를 높여 열 손실을 줄였고 자연 환기가 원활하도록 배치했다. 이처럼 넷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일반 주택건설에 비해 추가 구조물이 필요해 초기 설비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건축주 정소익 씨는 6~7년 정도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는 계산을 이미 마쳤고, 높아지는 전기료 때문에 그 시기는 한층 빨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4 매끈하게 마감한 노출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인테리어가 된 소솔집 내부. ‘집 안의 집’과 같은 형태로 유동적인 합판을 사용해 방과 욕실을 만들어 넣은 모습이다.
5 ‘ㄱ’ 자로 꺾인 거실 창가. 남해 바다의 맑고 한가로운 풍경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지속 가능한 건축, 지속 가능한 삶
완벽한 단열로 물이 새지 않고 보온력을 갖춘 내부 벽은 깨끗한 코팅 합판을 사용해 거푸집을 짠 덕분에 별도의 마감 없이도 매끈하게 완성했다. 건축주의 부모님이 사용하는 방과 화장실 등 개인 공간은 유동성이 있는 합판으로 마감했다. 한정된 건축 비용 안에서 설비에 우선순위를 둔 탓에 현관 입구는 돌바닥을 포기했으며 미완의 조경은 살면서 조성해나갈 생각이다. 포기할 것과 지킬 것을 정확히 구분한 건축주와 한계 안에서 최선의 디자인을 완성한 건축가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여러 가지 순기능을 현대 건축의 세련된 틀 안에 구현한 것이다.
소솔집은 귀농한 부모님의 공간, 주말 주택으로 활용하는 정소익 씨의 공간, B&B 공간의 가변적인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직사각형 집 두 채가 서로 엇갈리며 반쯤 연결되었고 다랑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지 조건을 활용한 B&B는 땅에 반쯤 묻히게 배치했다. 이곳은 지인들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룸이자 여름에는 외국에 사는 작은딸 가족이 몇 달씩 와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두 개의 독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지만 분리 또한 가능하다. 정소익 씨는 언젠가 B&B 공간을 건축 학교나 워크숍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1, 2 메인 동과 분리된 정소익 씨의 개인 공간. 서재를 겸한 작은 거실과 사다리로 오르내릴 수 있는 다락형 침실로 구성했다. 박공지붕 아래 놓인 침실의 창밖으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남해의 풍광이 펼쳐진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50년간 서울에서만 사시던 부모님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해로 내려와 집을 지은 정소익 씨.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남해를 추천한 인물은 그이 못지않게 강한 추진력으로 딸의 의지에 동참해
준 어머니였다. “남해는 그저 여행지로만 생각하던 곳이에요. 낯선 곳에서 여생을 보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아직까지는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맑고요,
시간 시간마다 달라지는 풍경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서울에서의 삶보다 움직이는 시간도 많아졌고 다양한 일상에 관심도 많이 갖게 됐어요. 이곳 분들의 부지런하고 자부심 있는 삶의 태도에 많은 걸 배우고 있
습니다.” 변화에 즐겁게 동화되고 있는 어머니 역시 딸 못지않게 이곳의 삶에 만족한다.
재미있게도 정소익 씨는 남해를 찾는 지인에게 집들이 선물로 과실수 묘목을 추천한다. 미완의 마당을 지인들과 함께 가꿔나가고자 하는 계획이자, 자신의 나무를 돌보기 위해 가끔 들르라는 기약의 의미도 있다. 소솔
집은 이렇듯 지속 가능한 건축과 지속 가능한 교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건축적 메타포가 됐다. 그와 그의 가족은 소솔집 덕분에 나누고 베푸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 안에서 ‘소모’가 아닌 ‘충족’의 삶을 누리며 에너지
를 채우고 있다
3 다락에서 내려다본 건축주의 공간. 다락 정면에 보이는 문은 드레스룸. 아래는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4 정소익 씨의 개인 공간 앞으로 연결된 마당은 B&B 옥상이다. 마을의 전체 풍경과 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곳이다.
5 B&B는 지금은 게스트룸으로도 사용하지만 언젠가 건축주가 운영하는 건축 학교나 워크숍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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