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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이지숙 씨의 레노베이션 스토리 낯섦과 익숙함의 하모니
마감재의 거친 느낌을 부각시키는, 이른바 노출 인테리어를 일반 가정에서 소화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집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다행히 제멋에 취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이자 그들이 사랑하는 물건이다. 낯선 공간에 익숙함을 끌어들인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한 사례를 만나본다.


아들 방에서 전실 복도를 통해 거실을 바라본 모습. 자칫 갤러리처럼 차갑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지만 문의 나무 몰딩과 초록 식물, 온화한 느낌의 아트워크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침실 창가에 놓인 테이블은 이태원 앤티크 숍에서, 모던한 투명 의자는 세덱에서 구입했다. 오른쪽 벽면에는 친정어머니가 선물한 두 개의 나비장과 황규백 화백의 판화가 놓여 있다.


새집으로 이사를 앞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전에 없이 과감한 변신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 변신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오게 마련. 첫째는 예산이고, 둘째는 스타일, 즉 ‘새로운 인테리어를 기존의 살림살이와 얼마나 조화롭게 연출하느냐’이다. 이곳은 서초동의 159㎡(48평형) 아파트. 요즘 누구나 관심 있는, 그러나 일반 집에 적용하기엔 자칫 차가워 보이고 비용도 많이 들어 선뜻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인더스트리얼풍 ‘노출 인테리어’는 이 집의 변신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정해진 예산 vs. 확실한 목표 “제 집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체 공사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예전 아파트는 동네 지물포 가게에 의뢰해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손을 봤는데,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허점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이사 오면서는 전문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기로 결정했어요.” 침착하면서도 신뢰가 가는 어조, 상대방을 배려하며 자신의 얘기를 풀어나가는 집주인 이지숙 씨는 과연 아나운서 출신다웠다(그는 극동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했다). 그는 이 집의 개조를 계획할 초기, 두 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고 한다. 원하는 콘셉트도 서로 잘 통했고 다 좋았는데, 몇 번의 만남 후 그를 당황하게 한 부분은 견적이었다. 모두 초기 예산은 안중에도 없는 듯 몇천만 원이 더 웃도는 예산을 뽑아온 것이다. “전체 공사라곤 해도 구조 변경을 하거나 섀시를 교체할 생각은 아니어서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리라는 예상은 안 했거든요.” 사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에 맞게 레노베이션을 하는 것이지, 무리해서 집을 고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 그러던 즈음, 사진가 동생에게서 여름 디자인의 김보영 실장을 소개받았다. 당시 동생의 스튜디오 레노베이션을 맡은 김보영 씨는 우연히 이지숙 씨의 얘기를 들었다. 고맙게도 “(그 예산으로) 왜 못 해?”가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렇게 새집에 대한 주인의 로망과 현실적 예산을 염두에 둔 절충주의적 레노베이션이 시작되었다.


사진가 보리 씨의 여행지 풍경 사진이 걸린 주방 모습. 벽면에 놓인 벤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들이다. 다용도실로 나가는 입구의 새시는 나무 문으로 교체했다.

침실과 서재 입구. 커다란 하나의 방에 가벽을 세워 침실과 서재로 분리했다.

1 미니멀한 화이트 주방 가구에 나뭇결이 진한 스프러스 원목 테이블과 선반을 추가했다.
2 거실 정면에는 TV와 아트월 대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거실 벽에 걸린 회화는 이아름 작가 작품. 천장 역시 노출 느낌을 살리되 핸디 코트를 발라 가정집에 어울리게 소화했다.


실험적이지만 차갑지 않은 집 집주인 이지숙 씨가 원한 사항은 매우 명확했다. 바닥을 투명 에폭시로 마감하고 벽면 전체를 하얀색 페인트로 도장하길 원했다. 가공하지 않은 공간의 거칠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좋아서였다. 과감한 그의 발상에 디자이너는 손뼉을 치고 좋아할 일인지 모르나, 김보영 씨는 반대였다. 첫째, 바닥의 경우 마루를 철거한 후 콘크리트 상태를 보고 에폭시 마감을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고, 둘째, 벽은 칠을 하기 전에 수작업으로 밑에 켜켜이 쌓인 벽지들을 제거해야 하므로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이었다. 에폭시 마감은 다행히 마루 철거 후 콘크리트 상태가 깨끗해서 가능했고, 벽면의 경우는 주인이 한사코 우기는 바람에 실행하게 되었다. 에폭시 마감으로 처음에는 화이트 컬러를 염두에 두었으나, 바닥에 실제로 실험을 해보고 나니 티끌 하나 허용치 않을 듯한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바닥은 지금의 회색빛이다. “에폭시 마감이 주는 반짝거리는 질감, 얼룩덜룩하게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아요. 주부의 입장에서는 청소하기 편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한편 디자이너는 따스한 느낌을 주는 나무 소재를 일부러 곳곳에 많이 적용함으로써 공간이 자칫 차가워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다. 특히 합판 소재는 빠듯한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사용한 요긴한 자재. 예를 들어 실내의 모든 문은 기존에 있던 것에 페인트만 새로 칠해 재활용한 것인데, 문틀의 안팎 테두리에 베니어합판 몰딩을 두른 것만으로도 새것 같은 신선함이 가미되었다. TV 테이블, 서재 책상, 아들 방의 책장과 책상 등 꼭 필요한 몇 가구는 맞춤 제작했는데, 대부분 저렴한 합판을 이용하고 포인트를 주고 싶은 부분에만 원목을 적용해 비용을 조절했다. 이런 나무 소재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공간은 단연 주방이다. “미니멀한 화이트 주방으로 끝낼 뻔했는데, 디자이너가 나무로 포인트를 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아일랜드 앞쪽에 미니 테이블을 붙이고 상부장 대신 나무 선반을 설치했죠. 결과적으로는 아늑한 느낌이 완성됐어요.” 맞은편 식탁에 앉아 주방을 바라볼 때가 가장 흐뭇하단다.


침실을 분리함으로써 생긴 서재 공간. 카키 톤 벽면은 고운 시멘트를 바른 듯 따듯한 느낌을 내는 노바 코트를 이용해 도장한 것이다. 가족이 마주 앉아 작업할 수 있도록 테이블을 T자 형태로 만들었는데, 가로 테이블 상판만큼은 원목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좋아하는 것들과 친밀한 동거 절충이 필요하던 또 한 가지는 이 새로운 공간과 가족의 오래된 세간, 즉 새것과 옛것의 만남이었다. 정해진 예산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가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가구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 벌써 예전 일이기는 하지만 7년간의 미국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이지숙 씨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이기도 하다.

“남편과 저 그리고 아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자기 공간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아주 많아요.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편도 아니고요.” 무언가를 구입할 때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한번 손안에 들어온 것은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 집에 놓인 모든 가구는 이사 때 제작한 몇 가지 외에 모두 미국에서 생활할 때부터 쓰던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이 집에 놓인 모든 물건은 100% 사용되는 것이고, 가족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 것이다. 또한 그는 세간을 일부러 많이 들이지 않는다. 청소하기도 불편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끌어안고 사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옷이나 집이나 마찬가지. 불필요한 것을 끌어안고 살수록 정작 필요한 것에 쏟을 수 있는 애정이나 중요도는 낮아지지 않을까? 세간이 많지 않은 이지숙 씨의 집에서 유독 시선을 많이 끄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아트워크다. 그 작품들은 벽면 이곳저곳에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공간과 입체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친정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얼마 전부터는 친한 큐레 이터를 통해 젊은 한국 작가들과 중국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제가 베이지, 브라운, 올리브그린, 블랙&화이트, 이런 톤들을 좋아하다 보니 집도 그런 분위기로 꾸몄어요. 다행히 드문 드문 놓인 미술 작품들이 포인트 역할을 해주어 생동감을 느낄 수 있지요.”

집 안을 둘러볼 때면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이 시선에 걸리는 그 느낌이 좋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살면서 하나하나 바꿀 수 있으니까. 마음이 동하는 어느 날이면 벽 하나를 직접 페인팅해 색을 바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감한 시도가 이제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세간을 위한 열린 가능성으로 바뀐 이지숙 씨의 집은 그렇게 편안한 실용주의를 보여주었다.

1 레노베이션을 하고 남은 합판을 이용해 주인이 직접 만든 북 케이스. 두꺼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쌓아 기둥으로 사용했다.
2 외기가 머무는 베란다 공간. 느낌이 좋아 구입한 추상 회화와 좋아하는 오브제, 암체어를 배치했다. 명확한 기능은 없는 공간이지만, 외부의 자연을 실내로 적극 들이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3 작은 욕실이지만 천장에 미송 합판을 대고, 나무 선반을 얹어 자연의 친근한 느낌을 가미했다. 또 하나의 욕실 같은 콘셉트. 욕조 대신 미니멀한 유리 샤워 부스를 설치했다.

가정집에 적용하기 전 알아두어야 할
노출 인테리어 실전 팁

바닥을 투명 에폭시로 마감할 수 있는 집은 제한적이다 일반 가정집은 마루를 깐 게 대부분이다. 마루를 걷어낸 후, 내부 상태를 보고 나서야 에폭시 시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내부에 크랙이 많으면 에폭시로 마감했을 때 표면에 이질감이 생겨 적합하지 않다. 이 집에서는 마루를 걷고, 샌딩을 한 다음 에폭시를 부었다. 에폭시 바닥은 타일처럼 빨리 데워지고 빨리 식는다.

노출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벽면 도장은 따로 있다 무조건 화이트 페인트를 칠한 게 아니라, 안에 붙어 있던 벽지를 다 뜯어내고 그 위에 러프한 바닥과 어울리는, 일명 스타코 마감 방식으로 도장했다. 퍼티에 질석을 섞어 핸디 코트처럼 손으로 마감하는 방식으로, 거친 입자와 질감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 벽지를 뜯어내는 작업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무조건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반 집에서 벽과 바닥을 노출시킬 경우에는 자칫 삭막하거나 차가울 수 있는 분위기를 완화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이 집에서는 저렴한 합판 소재와 따뜻한 느낌의 원목, 기존에 사용하던 클래식한 가구를 적절히 섞어 분위기를 안정감 있게 만들었다. 또 서재와 아들 방 같은 경우에는 좀 더 따스한 질감의 노바 코트를 벽면에 적용하고, 천장은 벽지로 마감했다.



 디자인 및 시공 여름 디자인(02-543-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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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예준 | 사진 김덕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