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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안승열 씨 부부의 레노베이션 스토리 오래된 빌라, 갤러리로 다시 태어나다
조용한 노후를 보내기 위한 부부의 선택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레노베이션이었다. 그 안에는 부부 각자의 취향과 일상이 기분 좋은 리듬으로 공존한다.


갤러리를 연상하게 하는 다이닝 공간.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천장등은 다이닝룸을 가로질러 거실까지 이어지며 9m에 달한다.

거실에서 침실 입구를 바라본 모습. 나무 테이블을 경계 삼아 작품을 전시했다. 나무를 그린 그림은 모두 집주인 김영란 씨의 작품. 흰색 벽 중간중간엔 수납공간이 숨어 있다.


이 집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갤러리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깔끔한 화이트 도장 마감과 둥 글게 굴린 벽 모서리, 그림을 걸 위치를 감안해 적재적소에 설치한 간접등까지. 집의 성격을 좌지우지하는 이렇다 할 가구나 화려한 패브릭도 보이지 않는다. 278m²(84평형)의 모던하고 정갈한 빌라는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부부가 안온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완성한 공간이다. “일부러 가구를 버린 게 아니에요. 집주인분이 워낙 짐이 많지 않았고 저만큼이나 미니멀한 스타일을 원하셨어요. 서재의 책상이나 책장, 침대는 본래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이 집에 맞게 제작한 다이닝 테이블이나 새로 구입한 소파를 제외하곤 여백이 많은 집이죠. 그 여백은 집주인의 그림으로 하나하나 채울 예정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신용환 씨는 디자인만큼이나 기능에 심혈을 기울이는 디자이너다. 게다가 부부는 디자이너 못지않게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클라이언트였다. ‘단순한 형태와 최소한의 디자인’이란 콘셉트에 합의한 디자이너와 집주인 부부는 장식적 요소는 최대한 덜어내되 기능과 완성도에 충실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이 집을 바꿔갔다. 건강하고 완벽한 레노베이션을 위해 설계 기간은 장장 6개월, 본격적인 디자인 기간은 3개월, 시공은 2개월이 걸렸다.


1 목재와 철제 파이프를 골조로 구리를 커버링해 만든 헤드보드 겸 가구. 헤드보드 뒤쪽은 화장대의 용도다.
2, 4 구리 헤드보드를 경계 삼아 넓은 방을 침실과 드레스룸으로 나눴다. 침실 뒤쪽에는 아내 김영란 씨의 드레스룸이, 정면에 보이는 개수대 뒤쪽으론 남편 안승열 씨의 드레스룸이 자리한다. 침실과 드레스룸 옆에는 세면대를 설치해 유용하게 사용한다.
3 침실에서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김영란 씨의 개인 서재.

5 ㄷ자형 주방 맞은편에 만든 빌트인 수납장. 수납장 테두리의 수납공간에는 즐겨 쓰는 그릇과 와인 등을 보관할 수 있다.
6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위치한 방이 남편 안승열 씨의 서재다. 육중한 책상과 낮은 책장, 심플한 선반만으로 깔끔하게 꾸몄다.
7 ㄷ자형 주방 한쪽에 마련한 보조 테이블.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부부는 평소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잦아 실용적인 보조 식탁을 만들었다. 식탁 한쪽에 인덕션을 매입해 늘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
8 다이닝룸에 걸려 있는 디아만티니&도메니코니의 벽시계 ‘우오미노’. 하나는 한국 시간, 하나는 작은딸이 살고 있는 영국 시간으로 맞췄다.


28년 된 빌라의 모던한 변신 과정 올 초 이 빌라로 이사한 안승열ㆍ김영란 씨 부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집 살림을 했다. 주로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내려가는 양평 집과 남편의 사업을 위해 지내는 서울 집을 오갔는데, 그 일이 부담스럽던 즈음 서울 집을 중심으로 일상을 정돈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구한 빌라는 한적한 동네 상일동에 있다. 1층에 위치한 덕분에 넓은 창으로 사계절 내내 자연을 들일 수 있는 집. 여기에 제법 넓은 아틀리에 공간과 지하 창고도 생겼다. 머무는 공간이 도시든 시골이든 정신적 해방감을 맛봐야 한다는 생각은 거실 앞 작은 마당에서도 슬며시 드러난다. 작은 텃밭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마당도 있고, 집 안은 자연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로 채웠다. 모던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함께 자연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어 더욱 매력적인 빌라. 어디에서도 28년 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변모한 빌라의 레노베이션 1단계는 구조 벽체를 제외하고 모든 내부 마감을 털어내는 것에서 시작했다. 최소한의 디자인 요소와 기능성을 레노베이션의 목표로 제시한 집주인은 이집의 디자인을 디자이너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장식성은 배제하되 공간의 성격은 분명히 하고 싶던 디자이너 신용환 씨는 먼저 천장을 최대한 높여 갤러리 스타일의 공간감을 확보했다. 조적벽으로 만든 난간 역시 스틸 판으로 교체했고, 전체 마감 컬러는 작품을 걸기에 좋은 화이트로 선택했다. 중간중간 기능적인 요소가 필요한 부분에만 구리를 사용해 약간의 장식성을 가미했다. 특히 오래된 전기 시스템을 철거하고 콘센트는 모두 절전형으로 바꾸는 세심함도 보였다. 모든 벽을 반듯하게 만드느라 약간의 공간 손실이 있었지만 단열이나 완성도를 위한 작업이었다. 싱크대의 상판과 벽면을 모두 인조 대리석으로 마감한 덕분에 주방은 정갈하고 시원하다. 또한 주방 한쪽엔 부부의 일상을 감안해 간단하게 차려 먹을 수 있는 보조 테이블을 설치해 실용적이다. 집 규모에 비해 조도가 낮아 커튼 대신 빛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성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간접등 역시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성 조명등을 달았다. 현관 앞, 서재 등 일부 공간의 불편한 여닫이문은 미닫이문으로 교체했고 문의 프레임이나 문지방도 모두 없애 최대한 심플한 마감을 일관한 점도 돋보인다. 벽 안으로 교묘하게 숨긴 수납장은 이 집을 더욱 깔끔하게 만드는 요소. 지하에 습기를 빼주는 팬을 설치하거나, 물걸레로도 잘 닦이는 페인트를 사용하는 등 쾌적한 생활을 위한 배려 역시 놓치지 않았다.


김영란 씨의 개인 서재에서 주방을 통해 다이닝룸을 바라본 모습. 벽에 걸려 있는 꽃 그림은 집주인 김영란 씨의 작품이다.

상부장을 모두 떼어내고 인조 대리석으로 벽과 싱크대 상판을 마감한 ㄷ자형 주방. 주방 정면 창으로 아름드리 살구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


예술적 감성을 담은 집 갤러리 느낌의 미니멀한 마감도 한몫했지만 이 집이 여느 집과 달라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집 안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꽃, 나무를 비롯한 풍경 작품이 대부분인데 모두 안주인인 김영란 씨의 작품. 그저 좋아서 시작했고 30년 넘게 그림을 그려왔지만 자신은 화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1980년대 화가인 친구의 언니에게 그림을 배우고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처음처럼 목요일마다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그림 친구들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물론 그 친구들 중 화가로 사는 이도 있고 중간에 그림을 포기한 이도 있다. 그에게 그림은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됐고, 그 흔적은 집 안 곳곳에서 다정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전공자도 아닌 데다가 그냥 그려온 거라 화가라고 이야기하진 못하겠네요. 주부로의 생활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림에 많은 것을 쏟고 몰두하는 화가와는 다른 인생이었죠. 젊은 시절엔 공모전에 여러 차례 응모했고 상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래서 더 이상 욕심도 없고요.

주로 풍경을 많이 그리고 큰 작품을 좋아하는데, 미처 이곳으로 옮겨오지 못해 아직 양평 창고에 있는 작품이 훨씬 많습니다.” 삶의 1순위로 가족을 꼽는 그이지만 손에서 붓을 놓아본 적은 없다. 끊임없이 그렸고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연을 그릴 때 특히 더 교감한다”고 이야기하는 김영란 씨는 20일 가까이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과 그림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그가 사는 동네며 양평의 풍경, 크고 작은 공원이 그녀의 캔버스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군데군데 손자, 손녀를 그린 사랑스러운 인물화도 보인다. 레노베이션을 통해 마련한 아틀리에 역시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의 모임 장소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자연광에서 보는 그림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그림은 주로 낮에 이뤄진다. 멋진 가구보다 스스로 뿌리내린 식물이 더 아름답다고 여기는 김영란 씨. 본인만 손사래를 칠 뿐 이미 화가 같은 인생을 사는 그다. 그리고 그의 일상과 작품은 하얀 캔버스 같은 집을 배경 삼아 한층 깊이 있고 아름다워진다.


1 갤러리 느낌을 내기 위해 둥글게 굴린 벽 모서리. 정면에 보이는 방은 게스트룸이다. 철판으로 난간을 만든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김영란 씨의 아틀리에가 있다.
2 기존의 벽돌 난간을 허물고 미니멀한 메탈 소재로 난간을 세웠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정면엔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이 걸려 있다.

지하지만 늘 밝은 빛이 들어오는 김영란 씨의 아틀리에. 밝은 창가는 주로 자연광에서 작업을 하는 김영란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디자인 및 시공 노르딕 브로스 디자인 커뮤니티(070-8225-0067, www.nordicbrosdesign.com)

이 집에서 눈여겨볼 디자인 포인트
소통하는 공간, 침실, 드레스룸, 개인 서재 이 집의 인테리어를 맡은 신용환 실장은 넓은 침실의 중간에 가구 역할을 하는 구릿빛 구조물을 세웠다. 이 구조물은 침대 쪽에서 보면 헤드보드와 보조 테이블, 파티션을 겸하고, 반대쪽에서 보면 드레스룸 화장대의 일부이자 선반으로 쓴다. 이 방은 보조 화장실이 자리한 안쪽 복도를 통해 김영란 씨의 개인 서재와 일직 선으로 연결된다. 개인 공간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한 열린 구조의 레노베이션을 완성한 것.

작품을 극대화할 수 있는 벽 마감과 조명등 설치 화이트 도장으로 마감한 벽과 부분 조명등은 집주인 김영란 씨의 작품을 배려한 선택이었다. 그저 좋아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198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이어오는 김영란 씨의 삶이다. 디자이너는 집주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미니멀한 재료와 마감재를 사용했다.

과감한 재료의 다양한 응용, 구리 이 집에서 눈에 띄는 포인트 컬러는 바로 구리다. 지하 아틀리에 천장의 일부, 침실 중앙의 헤드보드 겸 가구, 주방의 테이블 받침 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재료는 단순히 미적인 요소뿐 아니라 기능까지 감안한 선택이었다. 구조적으로 강도가 필요한 부분에 사용한 구리는 목재 틀과 금속 파이프로 기본 구조를 잡은 후 구리판을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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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소영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