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 파란색 벽면과 주방의 분홍색 벽면이 산뜻한 대비를 이룬 공간. 주방 입구 양옆에 호위병처럼 디스플레이한 피겨 컬렉션이 눈길을 끈다.
수천 장의 레코드는 전용 수납장을 별도로 제작한 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넣었다. 빈티지 암체어 한 쌍은 레오파드 패턴 패브릭으로 새롭게 커버링했다.
1 일곱 난쟁이 인형은 은은한 불빛을 선사하는 조명 기구로도 한몫한다.
2 드라큘라 백작 마리오네트는 ‘특별석’에 앉혔다.
3 책 위에 문진처럼 올려놓은 피겨. 집 안 곳곳을 재미있게 연출한다.
4 만화 때문에 일본 문화에 익숙한 집주인은 낡은 장식장을 일본 신문을 붙여 리폼했다.
5 집은 주인과 닮았다는 데 의외로 평범한(?) 듯한 집주인 필 마르케스.
취미도 디자인이 되나요? 누가 봐도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 만화 캐릭터 인형과 액션 피겨 그리고 빈티지 인형과 레코드를 수천 점 모았다고 하면 이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린다. “멋지다”라며 환호하는 사람과 “그걸 어디에 쓰려고”라며 걱정하는 사람. 브라질의 DJ이자 수집가로 유명한 필 마르케스Pil Marques는 오랜 시간 이런 평가의 엇갈림 속에서 갈등 아닌 갈등을 겪다가 지난해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컬렉션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세상에 공표하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로 독특한 개성을 구축해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귈레르미 토레스Guilherme Torres의 스튜디오였다. “토레스처럼 재기 발랄한 디자이너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도 이해하고, 이를 가치 있게 연출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죠.” 마르케스의 예감은 기대 이상의 결과로 돌아왔다.
“이 집은 순서를 바꿔서 디자인한 게 중요 포인트예요. 보통 구조를 바꾸고 공간에 맞는 가구를 매치하는게 정석이라면 이번 프로젝트는 집주인의 컬렉션을 파악하고 이를 돋보이게 해줄 배경 색과 가구를 찾는데서 인테리어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았죠.” 큐레이터가 전시의 콘셉트를 세우고 주제를 돋보이게 할 디스플레이를 궁리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면 맞는 표현일까. 각기 다른 아이템이지만 분명 컬렉터의 일관된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 토레스는 이를 하나의 스타일로 아우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혼자 살지만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파티를 자주 즐긴다는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디자이너 토레스는 거실을 라운지 스타일로 연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소파.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회색 소파는 토레스가 디자인해 제작한 것이다. 화이트 양털 카펫은 파란색 벽면이 한층 밝아 보이게끔 도와주는 장치로, 오랜 시간을 투자해 찾아낸 것이다. 만화책 마니아가 사는 집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배트맨’ 삽화 액자가 거실 전체 분위기를 주도한다.
1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뜻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디스플레이. 주방 유리 수납장에는 컵과 장난감을 함께 정리해 넣었는데, 단순히 나열하기보다는 나름의 스토리와 위트를 가미해 또 다른 장식 효과를 주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잡고 있는 줄 끝에 매달린 귀신 인형. 섬뜩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재치 있지 않은가?
2 보통의 경우 그릇을 놓는 선반에 캐릭터 오브제를 진열한 ‘역발상’이 돋보이는 주방. 그릇은 싱크대 위에 정리해놓았다. 컬렉션은 눈에 쉽게 들어오고, 그릇은 바로 찾아 쓸 수 있어 좋다고.
3 낡아서 더 멋진 빈티지 소파와 해골 프린트 장식의 쿠션.
4 욕실에는 바다와 연관된 피겨와 장난감을 가득 모아놓아 유쾌하면서도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샤워 커튼 속 ‘몸짱’ 쿨 가이!
프로페셔널 DJ인지라 집에서도 이를 연습하고 즐기는 마르케스. DJ 부스 주변에는 늘 그의 음악을 들어주는 다양한 캐릭터 인형이 있어 행복하다고. 피겨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몸짓을 보면 살아 있는 생명체 같기도 하다.
최소의 표현으로 극명한 주제를 드러내다 디자이너 토레스는 작업의 대부분을 컬렉션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를 가치 있는 장식 요소가 되게끔 편집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거실과 침실에 놓아야 할 장난감을 분류하고 주방 선반에 그릇 대신 세라믹 캐릭터 컬렉션을 놓는가 하면 욕실에는 해변을 테마로 한 오브제와 장난감을 한자리에 모아 바캉스 분위기를 연출했다. 구조를 변경하거나 최신형 설비를 더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확실히 새롭고 기상천외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방대한 수집품이 주인공이 되게 하려면 아주 작은 요소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죠. 그래서 손톱만 한 캐릭터 인형 하나도 확실하게 보여지도록 가구와 배경 색을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토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페인트칠과 전기 배선 공사 등 실질적인 개조 작업에 소요된 시간은 전체 공사 기간 중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4일. 이전의 시간은 모두 수집품을 분류하고 배치할 공간과 배경 색깔을 정하는 데 투자했다. “원래 거실은 흰색이었는데, 블루 톤으로 바꾸어 화려하며 세련된 분위기가 되었지요. 누구나 거실에 들어오면 환영을 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토레스가 노린 컬러 효과는 확실했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 그 너그러운 품에 안긴 형형색색의 빈티지 컬렉션과 빛바랜 가구는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바닥에 깐 흰색 양털 러그는 파란 벽면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니. ‘최소의 표현으로 극명한 주제를 드러내겠다’는 디자이너의 의도는 이미 완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소중한 피겨를 한데 모아놓은 침실.
1 같은 테마의 캐릭터 인형을 모아 수납장 칸칸이 진열했다. 피에로 캐릭터 인형 중 긴 막대 끝에 캐릭터가 달린 것이 ‘페즈PEZ 캔디 디스펜서’다.
2 옷걸이에도 호랑이 피겨를 걸어놓았다.
3 사이드테이블로 활용한 빈티지 트렁크. 흰색의 빈티지 트레이는 액세서리 수납함으로 사용한다.
의외와 반전이 빚어낸 개성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장난감과 인형으로 가득한 공간. 하지만 이 집이 정말 재미있는 것은 역발상와 반전이라는 화법으로 연출한 재치 있는 디스플레이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J로 활동하는 집주인 마르케스의 음악 장비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위치에 놓아 흥을 돋웠고, 키보드 옆에는 기타를 연주하는 동물 캐릭터를 실사 프린트해 마네킹처럼 세워 놓았다. 주방은 파스텔 톤 핑크로 칠하고 선반에는 그릇 대신 다양한 인형과 장난감을 진열했다. 이러한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이 집의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데, 특히 욕실은 그 정점을 찍는다. 상어와 오리, 마린보이와 인어공주 인형과 식스팩이 멋진 남자 모델의 사진을 전사한 샤워 커튼 그리고 파랗게 칠한 클래식 프레임 거울을 한자리에 모은 욕실. 원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시의성에서 소외되었던 것들을 모은 결과는 낯설고도 참신한 개성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침실은 집주인 마르케스의 소장품 중에서 최고의 애장품만 모은 아카이브다. 피겨 컬렉터 사이에서 희귀 아이템으로 불리는 빈티지가 여기 다 있다. 이를테면 스타워즈 페즈 캔디 디스펜서(PEZ, 막대형 용기에 사탕이 들어 있으며 뚜껑은 입체로 만든 영화나 만화 캐릭터로 처리), 아트 토이 회사의 모던 피스와 스트리트 아티스트 나단Nathan, 게리 베이스맨Gary Baseman 등의 작품이 있다. 누군가는 이 집을 보고 ‘소년의 꿈’이 완벽하게 현실로 이뤄진 집이라고 말하지만 이곳은 엄연한, ‘어른을 위한 팝 파라다이스’요, 소소한 장난감들이 현실 속에 안착한 이상향이다. 클라이언트가 무엇에 매료되었는지 그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본연의 임무를 완수한 건축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 토레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던 직설적인 데커레이션으로 멋진 인테리어를 연출한 그에게 집주인 마르케스가 말한다. “수천 개의 장난감 피겨 역시 토레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인 귈레르미 토레스(www.guilhermetorres.com) 번역 윤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