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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젊은 건축가 상 수상한 이동준 씨의 스위스 티치노 주택 메탈 드레스 입은 큐브 하우스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이동준 씨가 <행복>에 기분 좋은 프러포즈를 했다. 초록 잔디 카펫이 펼쳐진 한적한 마을에 ‘메탈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네 식구의 행복한 집 이야기.


스위스 티치노 지역에 위치한 건축가 이동준 씨의 집. 2층 거실에서 주방 쪽을 바라보면 3층 서재의 일부가 보인다. 스킵 플로어skip floor(층계마다 반 층 차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로 서재의 경우 창문의 반은 거실이 보이고, 반은 마을이 내다보이는 구조. 헬라 욘게리우스 디자인의 패브릭 소파는 비트라, 펜던트 조명등은 이스태블리시드 앤 선즈 제품으로 인엔 판매. 집의 외관과 꼭 닮은 패브릭 커버 사이드보드는 스위스 디자이너 모리츠 슈미드Moritz Schmid 제품이다.

“저는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이동준이라고 합니다.”
두 달 전쯤 편집부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를 <행복>에 소개하고 싶다고 용건을 밝힌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이동준 씨. 짧은 통화였지만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알프스를 배경으로한 빨간 벽돌집이 떠오르는가 하면, 스위스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호기심(스위스는 헤어초크 드 뫼롱Herzog de Meuron,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르코르뷔지에까지 세계적 건축가를 배출한 곳 아닌가!), 특히 많은 매체 중 <행복>에 소개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다 알게 된 재밌는 사실. 스위스에 거주하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구독하는 국내 잡지가 <행복>이며, 소개하고픈 프로젝트는 바로 자신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마리오 보타가 설립한 건축대학 USI, Accademia di architettura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동준 씨는 졸업 후 프리랜서 건축가로 마리오 보타, 안토니오 치테리오 등과 작업하다 2006년 자신의 스튜디오 스토커 리 아키테티Stocker Lee Architetti를 설립, 역시 건축을 전공한 아내 멜라니 스토커Melanie Stoker와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1년 전 스위스 남부 티치노 지역에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었다. ‘메탈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기다란 큐브 형태의 집은 현지에서도 독특한 형태로 입소문이 자자한 모던 건축물로, 스위스ㆍ독일ㆍ프랑스의 인테리어& 건축 전문지 20여 곳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일면식도 없이 이메일로 다소 딱딱한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그가 갑작스레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상’의 후보로 선정되어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서울을 찾은 그는 2012년 ‘젊은 건축가 상’ 수상이라는 뜻하지 않은 수확까지 거머쥐었다. “제대 후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일본 학생들은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거예요. 유럽, 그중에서도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 밀라노로 계획을 수정했죠.” 하지만 이탈리아의 안일한 행정과 교육 시스템은 열정이 넘치는 동양의 진중한 청년에게 오히려 혼돈 그 자체였다. 마침 스위스에 마리오 보타가 건축 학교를 설립해 화제를 모을 때라 과감히 디자인에서 건축으로 진로를 변경, 졸업 후 각종 설계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그는 짧은 경력과 외국인이라는 악조건에도 스위스에서 30여 개의 설계를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왼쪽) 유학과 결혼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스위스에 정착해 건축을 전공한 아내 멜라니 스토커와 함께 건축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건축가 이동준 씨. 2012년 한국의 ‘젊은 건축가 상’을 수상, 스위스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완성도 높은 건축 해법을 제시하면서 독특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평을 얻었다.

큐브 형태의 건축물 외벽은 티타늄 아연으로 마감했다. 모서리는 곡면으로 처리했다.

집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가구가 등을 맞대고 있는 구조. 0층 현관, 1층 침실, 2층 리빙 다이닝룸, 3층 서재로 공간을 분리했다.

해발 360m에 지은 집. 거실 창문 너머로 제네로소 산의 늠름한 능선이 펼쳐진다.

데칼코마니처럼 좌우 대칭으로 가구, 소품을 배치한 딸 안수, 미수의 방.


그의 집이 있는 티치노 지역은 스위스 최남단 지역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자동차로 45분), 코모(10분)와 근접해 있으며 지중해서 아열대 기후로 온화한 날씨를 자랑한다. 많은 스위스인이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으로 손꼽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이 펼쳐진 곳. 하지만 사실 집을 짓기에 땅의 조건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길이 90m, 폭 15m의 길고 좁은 형태로 경계선으로부터 4.5m씩 거리를 두고 벽을 세우면 사용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의 폭은 5m 정도(벽체 1m 소요).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그와 아내 멜라니의 흥미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폭이 좁아 공간이 수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죠. 길이에 맞춰 짓자니 건축물 규모가 너무 커졌고, 그래서 등을 맞댄 형태로 두 가구를 나란히 배열했어요. 한국에서 유행하는 땅콩집과 유사한 형태죠. 스위스의 일반 주택 형태와는 많이 달라 주말이면 사람들이 구경 오곤 해요.”
무엇보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구성에 있다. 0층(우리나라에서는 1층의 개념)에 현관과 게스트룸이 있고 1층에 침실, 아이 방, 화장실이 있는 구조. 보통의 집이라면 1층에 두었을 주방과 거실을 2층에 배치, 3층은 서재로 사용한다. “폭이 좁은 땅에서 아래쪽에 산다는 것은 앞에서 뒤까지의 거리, 즉 깊이(depth)가 적다는 얘기예요. 반면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지죠. 저 너머 산까지가 내 공간인 셈이에요. 그래서 가족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을 2층으로 배치했어요.”


1 남쪽 빛은 너무 강렬해 피해야 하기에 남쪽으로 난 계단과 통로에 좁은 쪽창을 배치했다.
2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가요를 좋아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제주도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서 여름휴가를 즐긴다.


“오직 ‘가족’을 위해 고민한 첫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좁은 공간인 만큼 가구나 패브릭 등을 활용해 공간을 분리한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 아일랜드 조리대가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는 파티션 개념의 사이드보드는 집의 외관과 흡사한 형태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 소파 위쪽 천장에는 ㄷ자형 레일을 설치하고 커튼을 달았는데, 주방 쪽으로 스르르 커튼을 치면 마치 벽처럼 주방과 거실이 분리된다. 남쪽으로 창이 없고 북쪽으로 통창을 낸 것 또한 독특하다. 남쪽의 빛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단해야 할 빛이라는 것. 북쪽 빛은 하루 종일 들어와도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빛이기 때문에 통창을 내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아파트 주거 양식의 한계점, 주택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는 한국과 스위스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듯하다.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 콘도미니엄에 살았다는 이동준 씨는 위층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도 몰랐단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토요일이면 같은 블록에 사는 이웃들이 모두 나와 같이 정원을 가꾸고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사실 스위스는 집을 소유하는 이가 드물다. 월세보다 높은 세금을 내기때문이다. 그런데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와이너리까지 준비 중인 이동준 씨. 클라이언트가 아닌 ‘가족’을 위한 건축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아이들이다. 집 때문이 아니라 집이 갖고 있는 ‘환경’ 덕분이다. 큰딸 ‘안수’는 6m 높이의 체리나무에 바구니를 들고 올라가서 체리를 따 먹으며 한 시간씩 노는데 그렇게 건강한 아이를 보면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울타리 없이 가깝게 지내는 네 이웃이 있어요.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아이들을 찾으러 네 집을 모두 돌아다녀야 해요. 첫 번째 집에 가면 한 시간 전까지는 데리고 있었는데 두 번째 집으로 갔다고 하지요. 두 번째 집에 가면 방금 세 번째 집으로 갔다고 하고. 다섯 살, 세 살짜리 아이들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밥도 먹고 과일도 먹으며 나름대로 꽉 찬 하루를 보냅니다. 또래 친구 하나 없는데 이웃 할머니, 할어버지와 스스럼없이 노는 모습을 보면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잘 지었다 싶어요.”

3 오직 휴식 기능에 초점을 맞춘 침실. 좁고 긴 잔디길이 깔려 있는 집 주변에는 단독주택과 포도 농장이 줄지어 있다. 이동준 씨 가족도 오는 9월 와이너리를 오픈할 예정이다.
4 주방 아일랜드에서 바라본 거실 모습. 다이닝 공간은 아이 의자와 컬러풀한 임스 체어로 포인트를 주었다.

위쪽 창으로는 마을 풍경이 보이고 아래쪽 창으로는 2층 거실이 바라보이는 서재. 2층에서도 3층 창문에서 넘어오는 채광을 만끽하고, 서재에서 작업할 때도 가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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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Marcelo Villada Ortiz,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