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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도 마이어의 뉴욕 아파트 창조적인 삶을 원한다면 색깔 있는 집을 만들어라
컬러는 에너지 공급원이 될 뿐만 아니라 집 안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경제적인 디자인 요소. 하지만 색깔, 특히 원색을 집 안에 들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포인트로 써볼까? 과감하게 전체에 적용해볼까?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 마이어의 아파트를 소개한다.


1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나무 암체어는 20세기 초 제작한 앤티크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바닥과 같은 그린 톤의 실크로 천갈이를 했다. 대리석 상판 테이블은 1950년대 제작한 것이며, 그 위의 남자 콜라주 오브제는 집주인 도 마이어가 제작한 작품. 골드 박스 조각 오브제는1960년대 제작한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작품, 벽에 걸린 잉크 드로잉은 줄스 파신Jules Pascin의 1920년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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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로 향하는 복도 벽면은 흑백 패션 화보 사진으로 장식했다. 단순한 콜라주 같지만 모델의 표정과 포즈를 선별해 신중하게 붙이느라 석 달 넘게 걸렸다고 한다. 왼쪽 벽면에 건 흰색 액자에는 사진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1980년대 작품이 있는데, 작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다.


3 동그란 프레임의 사진 작품은 사진가 이지마 카오루Izima Kaoru의 ‘Nanyuki, Kenya’라는 작품으로 2007년 제작한 것으로 다섯 번째 에디션이다. 2인용 소파는 1954년 제작한 플로렌스 놀 Florence Knoll 디자인 제품이며 테이블은 모두 피에르 가르뎅이 디자인한 것이다.

4 한때 회색만으로 집을 꾸민 적이 있는 도 마이어는 그때의 잔재를 여전히 잘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식탁 의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의자를 그가 회색으로 리폼했는데, 이 무채색 의자는 여러 개를 한자리에 놓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며 집 안에 오브제가 된다. 광택이 있는 스틸 테이블은 피에르 가르뎅이 디자인한 것이다. 회색 실크 카펫은 도 마이어와 그의 형이 함께 디자인한 것으로 ‘North Africa’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상품. 식탁 위 오브제는 로리 맥웬Rory McEwen의 1963년 작품. 그가 어릴 적 존경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가 꾸민 집에 있던 것으로, 그 집이 경매에 나왔을 때 우연히 구입했다.

미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 마이어Doug Meyer에게 컬러는 디자인과 예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66m2 남짓한 뉴욕 아파트는 바닥과 벽면을 온통 초록색으로 ‘도배’ 했을 만큼 컬러 자체가 인테리어 디자인의 시작이자 끝이니 말이다.

“물론 저도 한때는 베이지와 그레이로 꾸민 무난한 방에서 생활했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한 번도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게다가 어떠한 상상력도 발휘할 수 없었죠.” 돌이켜보면 그는 생활 속에서 늘 색깔이 함께 있었고, 원색의 공간에 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창조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방을 핑크로 꾸미고 싶었어요. 엄마에게 부탁해서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핑크로 연출했죠.”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정말 핑크를 열망했다는 도 마이어. 당시 그의 형 젠Gene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형 친구가 그의 방을 보고 “젠한테 여동생이 있는 줄 몰랐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도 마이어는 이를 두고 창피해하기는커녕 그 후로도 2년간 핑크 방을 고수했다고.

그의 원색 사랑은 성인이 된 후, 룸메이트가 생기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무채색을 인테리어의 정석이라 생각하는 파트너를 만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과감하게 회색으로 집 안을 단장했다. “회색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회색 방은 제게 감옥과 같았어요.” 지나친 자신감이었을까, 결국 그는 파트너와 헤어졌다. 마이어의 집이 생명력 넘쳐 흐르는 녹색 시대를 맞이한 건 암울한(?) 회색 시대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회색의 잔재는 의자와 침대, 소파 등에 남아 있지만 톡톡 튀는 초록을 배경으로 차분한 균형을 이룬다.

“원색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깔끔한 바탕을 확보해야 그 색상의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캔버스처럼 단순한 여백이 많을수록 색깔의 속성이 잘 드러나는 법. 마이어는 이를 위해 바닥과 벽면 사이 몰딩을 제거했고, 바닥재도 걷어냈다. 바닥은 초록색 에폭시로, 벽면은 무광 페인트로 마감했고 그 결과 집은 바닥과 벽면의 경계마저 모호한 그린 박스가 되었다. “아, 침실 벽면은 인디언 블루로 칠했는데, 이는 그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랍니다.” 침대 머리맡 벽면에 오렌지 컬러의 앤디 워홀 작품인 메릴린 먼로 프린트를 걸어놓은 침실은 보색의 대비로 상쾌한 기운이 감돈다.


1961년 켄터키에서 태어난 도 마이어는 자신이 컬러에 집착하는 이유를 부모님 덕분이라 결론 내렸다. 외관을 모두 화이트로 칠한 가운데 현관문은 핫 핑크만 고집하던 어머니는 철마다 집 안을 새로운 스타일로 바꾸는 데 귀재였고, 모자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주말이면 비비드 라임 코듀로이 바지와보라색 재킷을 입고 클럽 모임에 나갔다. 그리고 그가 열 살 되던 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생일 선물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David Hicks의 화보집 두 권이었다. 원색과 보색 대비, 지오메트릭 패턴을 쓰며 인상 깊은 공간을 만들어 20세기 인테리어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은 힉스의 책은 열 살 소년에게 잠재되어 있던 컬러 DNA를 일깨운 기폭제가 되었다.

열여섯 살 때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도 마이어의 예술 감각은 서서히 꽃을 피웠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하고 홀리 솔로몬 갤러리에서 아트 딜러로 활동하면서 예술에 대한 안목까지 넓혔다. “홀리 솔로몬에서 일할 때 컬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지요. 홀리 솔로몬 오너의 집에 갔는데 그곳의 클래식 가구는 고전 가구에서 볼 수 없는 컬러로 단장했더군요. 알고 보니 모두 아티스트 킴 매코넬이 다시 페인팅한 거였어요.”

(오른쪽) 침실은 예전의 회색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벽면에 인디언 블루를 칠해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침대 헤드보드 대신 쿠션감 있는 12폭 파티션을 만들어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프린트는 그가 20년 전 구입한 작품으로, 늘 그의 침실에 자리한다.


1 주방 가구 역시 초록색 콘셉트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린 톤으로 페인팅했다. 상부장은 진한 청록색으로, 하부장은 라임 그린 톤으로 채색했다. 상부장 아래 벽면은 1950~1990년대 패션 일러스트 작품으로 장식해 감각적인 주방을 완성했다.

2 복고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벽지로 꾸민 드레스룸. 도트 패턴의 컬러풀한 넥타이는 도 마이어 형이 디자인한 것.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젠 마이어가 만든 넥타이는 1980년대 뉴욕 패션의 아이콘이 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넥타이 뒤에 놓인 그림은 도 마이어 형의 자화상이다.


3 침실의 파티션 윗부분 벽면은 도 마이어의 작은 갤러리. 10년간 모은 그림을 가지런히 진열했다.

4 현관 진입부 벽면은 조제프 프랑크Joseph Frank 디자인의 ‘라 플라타La Flata’ 리넨으로 마감했다. 서랍장 위 그림은 발레리 조던Valerie Jaudon의 ‘악시옴Axiom’으로 2010년 작품이다. 도 마이어 옆에 있는 초록 머리 여인 콜라주 오브제는 그의 작품이다.


색깔의 힘, 그 오묘한 매력이 아트의 최고 경지라 생각한 그는 자신의 집에 그 확신을 표출해냈다. 흑백 패션 사진을 콜라주한 복도는 컬러 개념에 맞춰 하나의 면으로 느껴지게끔 연출하기 위해 사진 내용을 따져가며 배치하느라 석 달하고도 두 주를 작업했을 정도.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에요. 원하는 색상과 그와 어울리는 배색을 정한 후에는 이 색상 조화가 잘 드러나도록 버릴 것은 버리고, 장식은 최대한 심플하게 함으로써 바탕이 넓어 보이게 하면 그 디자인 의도가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장식은 입체 오브제든, 회화 작품이든 비범한 것 한두 점만 매치하면 공간과 공간 사이에 긴장감이 생기기 때문에 한층 세련된 느낌이 들지요.” 그러고 보니 도 마이어 집에서는 초록색의 독특함이 그리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컬러가 선사하는 긴장감 못지않게 그가 지난 10년간 만들고 모은 독특한 콜라주 오브제와 사진 작품이 또 다른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

“집은 완벽하게 휴식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하고 창조하는 에너지가 샘솟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의미에서 당분간 이 집은 지금의 모습에서 크게 변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아파트 건물 뒷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 집에 있는 예술 작품을 구입한 갤러리가 있는데, 이곳 또한 제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보물 창고다 보니 이사할 일은 없을 듯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 마이어가 살고 있는 집을 통해 생각해보길! 앞으로 집을 꾸미고 거처를 정할 때,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극제’가 무엇일까를. 그것을 먼저 파악하는 자가 색깔 확실한 집을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번역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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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이정민 기자 | 사진 마크 로스캄스Mark Roskams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