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지은 스웨덴 대사관저. 클래식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스칸디나비아 가구에 컬러로 포인트를 준 공간이 돋보이는 이곳은멀리 남산까지 보이는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2006년 부임한 바리외 대사 부부는 지난 5년간 다이내믹하게 바뀐 서울 풍경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생활이 곧 디자인 스웨디시 라이프
‘스웨덴 사람은 트렌드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룹 아바의 음악, 이케아, H&M, 덕시아나 매트리스 등이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이템.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고 밝고 경쾌한 컬러 매치를 즐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대략 알고 있는 ‘스웨덴’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내용은 진짜 스웨디시 라이프다. 첫째, 시나몬롤과 커피를 즐기고, 외식보다는 각자 만든 요리를 함께 나눠 먹으며 파티하는 것을 좋아한다. 둘째, 재활용을 생활화하고 오래된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셋째, 평소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것일수록 좋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일상용품의 디자인조차 아름답다.
성북동 언덕길. 주한 스웨덴 대사관저는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스웨디시 라이프를 모두 담아낸 집이다. 대사관저는 평소 다양한 예술가가 모이기로 유명하다. 라리스 바리외 Lars Vargo 주한 대사가 지난 2006년 문학 모임 ‘서울문학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페인・러시아・미국 등 각국 대사와 그 부인들 그리고 한국 문인 고은, 공지영, 이문열, 신경림 씨 등이 참여하며 가끔 피아노 연주회와 시 낭송회도 함께 이루어진다. 부인 에바 바리외 Eva Vargo 씨는 섬유 예술가다. 한지, 대나무 등 한국적인 소재로 다양한 공예 작품을 선보이며 수차례 개인 전시를 연 바 있다. 부부가 공통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은 우리 문화와 스웨덴 사람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일정 부분 상통하기 때문이다.
1 빨간 벽이 인상적인 전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투실리우스의 스틸 체어와 베른트 프리베리 Bernt Friberg의 유리 캐비닛이 빨간 벽과 잘 어우러진다.
2 커피와 주스, 직접 구운 시나몬 파이 등을 서빙하는 티 테이블. 정갈하게 가꾼 정원을 바라보며 매일 아침 식사를 한다.
3 여성적 라인이 돋보이는 레드 컬러 패브릭 소파와 오토만으로 꾸민 응접실.
4 자연 패턴 패브릭 암체어 역시 스웨덴 정부에서 선정한 가구. 큰 가구를 코너에 배치해 더욱 안락한 느낌이 든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스웨덴의 생활 방식입니다.” 에바 바리외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스웨덴은 오래된 것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구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지금도 18세기에 지은 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요. 한국 역시 한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전주, 청주 등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 대사관저는 지난 1994년 지은 그대로죠. 가구 또한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비치우드와 같이 밝은 색상의 나무 가구와 컬러풀한 패브릭, 햇살처럼 환하면서도 수수한 이 공간은 찾아 오는 이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드는 특별함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통과 현대, 심플과 내추럴의 조화를 중시하는 스웨디시 스타일의 백미다.
2층 거실. 소파 뒤에 콘솔을 두고 도자를 장식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예술과 손맛으로 빚은 집
“2층은 저희의 사적인 공간으로 전 세계에서 가져온 가구 등으로 꾸몄습니다. 다시 만들었거나 커버링한 것이 대부분이지요.” 1층이 스웨덴 문화를 대변하는 대외적 공간이라면, 2층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리얼 생활 공간이다. 우선 계단을 오르면서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라리스 바리외 대사가 그린 작품이다. 그는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의 작업실은 게스트룸. 보통 서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는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해가지는 산, 도심 속의 산, 한옥 처마 너머의 산…. 서울의 산은 매번 새로운 소재가 된다고.
반면 남은 것을 가지고 다른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는 에바 바리외 씨는 전통 직조 기구로 텍스타일 작업을 한다. 그는 종이를 재료로 텍스타일하는 작업도 즐긴다. 특히 한글이 쓰여 있는 종이는 좋아하는 재료 중 하나. 때때로 헌책이 쌓인 것을 발견하면 무조건 사오는데, 이렇게 구입한 종이와 한지로 공예품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목걸이도 만든다. “어릴 적부터 중고 제품을 좋아했어요. 도예를 전공한 저희 딸 역시 좋아합니다.(웃음) 스웨덴에는 좋은 제품을 파는 중고 가게가 점점 늘고 있어요. 다양한 텍스타일은 물론 손맛 나는 가구를 발견할 수 있지요. 예전에는 대부분의 가구를 손으로 제작했기때문에 가구의 질이 매우 훌륭하며, 적절한 가격에 살 수 있었지요.”
이처럼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그림 혹은 텍스타일 등 핸드 크래프트 작업과 책 읽기를 하며 보낸다는 부부. 책 읽는 장소는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2층 창가다. 그곳에 앉아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맞은편 서울 성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밤이 되면 성곽 길을 따라 조명도 들어온다. 산 능선을 바라보며 아이패드로 스웨덴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 소소해서 더 행복한 일상이다.
(오른쪽) 손으로 하나하나 깎아 만든 의자 는 바리외 부인이 이모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
1 텍스타일이 발달한 스웨덴의 옛 가정에서는 전통 베틀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꼭 가지고 다니는 보물 같은 아이템.
2 에바 바리외 씨는 한지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한지를 가늘게 자른 뒤 꼬아서 줄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직조 작품을 만든다.
3 게스트 룸을 작업실로 쓰는 바리외 대사.
4 돌, 실패, 닥종이 공예품은 에바 바리외 씨가 모으는 우리 전통 소품이다.
서울, 자연을 누리는 행복
바리외 대사는 중국학 석사와 일본학 박사를 받을 정도로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다. 부인 에바 바리외 씨 역시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부부 모두 일본어 실력이 수준급이다. “스웨덴 디자인과 일본 디자인은 모두 미니멀하며 공통적으로 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한 공간에서도 잘 어울리지요. 2층 생활 공간에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스웨덴 전통 가구는 물론 일본, 한국 가구를 함께 매치했어요.”
프라이빗한 부부 공간을 만나는 계단 앞 전실은 펼치면 테이블이되는 익스텐션 타입의 콘솔과 박스 조명등을 장식했다. 4폭 병풍, 화기, 발가락 오브제 등 세계 각국의 컬렉션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한결 멋스러운 공간을 완성했다. 집에는 특히 유리 공예품이 많은데 이는 모두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으로 이러한 가구와 소품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함께한다. 책 또한 마찬가지. 글로벌 유목민으로 살아오면서 고국이 그립거나 지칠 법도 한데, 에바 씨는 언제나 새로운 걸 발견하고 탐험할 수 있어 좋다고 눈을 반짝인다. 국가별 민속품처럼 의외의 소재와 재료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 자리한 담양 죽부인은 나중에 조명등으로 만들 예정. 대나무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대나무를 활용한 공예품과 텍스타일을 구상 중이다.
(왼쪽) 디자인은 동양적이지만 패턴은 스웨덴 전통 방식을 따른 도자잔은 마츠 테셀리우스 Mats Theselius 작품이다.
1 갓을 쓴 선비를 그린 유화, 종이 오브제 등을 장식한 계단 풍경.
2 청동 오브제와 부엉이, 도자잔 역시 스웨덴의 문화를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3 2층 전실. 일본에서 구입한 가구와 조명등, 오브제로 꾸몄다.
4 거실 코너를 꾸며주는 패브릭 의자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스웨덴 제품으로 일본에서 구입한 고재 소품과 매치했다.
“한국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 많아요. 해인사, 동화사, 통도사…. 경주는 아시아 역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지역이지요. 안동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고요. 그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바로 산입니다.” 바리외 대사는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을 하늘과 산등성이 맞닿은 풍경이라 강조한다. “일본 도쿄 역시 몇 년간 지냈지만 고층 건물과 집들뿐 자연을 느낄 수 없었지요. 서울은 달라요. 축복받은 도시죠.”
바리외 대사 부부는 오는 여름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친다. 지난 5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느낀 점을 작품으로 표현한 미술 전시 (5월 27일까지, 청담동 123 갤러리)를 통해 한국에 대한 그들의 진심 어린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