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빛깔과 보라색 거대한 줄무늬로 연출한 거실. 직선형 소파의 앉는 자리는 보라색 벨벳으로, 등받이는 패션 디자이너 카스텔 바작이 만든 밀리터리 패턴 패브릭으로 커버링해 참신한 디자인이 되었다. 팔걸이가 있는 폴트로나 프라우 카나페 스타일 소파 위에는 미소니의 니트 쿠션과 화려한 페이즐리 블랭킷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며, 테이블 대신 컬러풀한 줄무늬 패브릭 스툴을 매치했다. 창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놓인 캐비닛은 이케아에서 구입한 것이고, 오른쪽 서랍장은 수공예 박음질이 돋보이는 클래식 명품이다.
(왼쪽) 컬러와 패브릭 디자인의 귀재다운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파올로 바냐라.
(오른쪽) 파올로의 편애 목록인 줄무늬, 보라색과 주황색 그리고 빈티지 아이템이 조합된 침실. 침대 사이드 테이블 서랍장은 이케아 제품이고, 스탠드는 아르테미데 톨로미오 오리지널 제품. 아르데코 스타일의 샹들리에 ‘에피스 Epis’는 1940년대 디자이너 로베르트 고센스 Robert Gossens가 만든 것으로 코코 샤넬의 주문으로 제작한 것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는 것 중 하나가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속설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정설로 입증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는 더욱더 확고해지는 바. 저 멀리 유럽 대륙에 살고 있는 텍스타일 디자이너 파올로 바냐라 Paolo Bagnara의 이야기를 풀어놓자니 ‘옛말 틀린 것 없음’은 이제 국경마저 초월한 인류 보편의 진리임을 깨닫는다. 올해 나이 64세, 텍스타일 디자이너 겸 스타일리스트인 파올로는 ‘보고 배운 대로 자란다’는 속설을 제대로 증명하는 이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조각가 파우스토 멜로티 Fausto Mellotti(스위스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와 쌍벽을 이루는 초현실주의 조각가로 1986년 작고했다) 가문 재단사이던 어머니 그리고 밀라 노의 명물인 오렌지 컬러 트램(전차)을 만든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파올로 바냐라. 또래 아이들이 옷을 입기만 할 때 그는 이미 옷감의 차이를 알았고, 오렌지 트램을 타고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옷감과 소품을 보고 상상의 날개를 펼쳤단다. 그리고 아주 어릴 적부터 이러한 생활을 지극한 일상으로 알고 지낸 파올로는 자신이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 자부한다.
(왼쪽) 컬러와 패턴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리빙룸.
(오른쪽) 평소 모아 둔 전등갓으로 리폼한 샹들리에와 이케아의 줄무늬 러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서재.
나에게 오렌지는 베이지, 퍼플은 블랙 컬러다 자주색과 주황색, 스트라이프와 체크로 점철된 공간. 이 집의 인테리어는 한마디로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비롯한 것이다. 5년 전, 타향살이를 접고 고향인 밀라노에 돌아온 파올로는 자신의 유년 시절 겨울을 떠올리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어머니가 작업하던 옷감을 만져볼 수 있었던것은 저에게 무척 행운이었지요. 모든 원단이 당시에 보기 드문 최고급 옷감이었으니 말입니다. 그중에서 제가 첫눈에 반한 옷감은 페이즐리 패턴의 따스한 캐시미어였고,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은 역동적인 줄무늬 옷감이었죠.” 파올로의 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능과 추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줄무늬 패브릭을 연상케 하는 스트라이프 패턴의 벽면, 고풍스러운 도시에 생기와 낭만을 전하던 트램처럼 집 안 곳곳에 활기를 불어넣는 오렌지 컬러가 ‘바냐라 가문’의 문장처럼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이 집의 주제가 되는 바이올렛 컬러는 제가 일곱 살 때 메트로 극장에 몰래 들어가서 봤던 영화 <센소 Senso>(국내에서는 <애증>이라는 영화로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1954년 작품이다)의 여주인공 옷을 모티프로 한 것이에요. 풍성 하게 퍼져 내려가는 와인 빛깔의 숄과 드레스가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파올로의 취향은 주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컬러풀한 그릇은 파리에서 살 때 저가 인테리어 숍에서 구입한 캐주얼한 아이템이요, 구리 냄비는 모두 빈티지 경매를 통해 구입한 ‘족보’ 있는 디자인이라고. 개수대 아랫부분은 에트로 패브릭으로 커튼을 만들어 처리했다.
디자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전자의 혜택은 파올로 스스로 주변 환경의 모든 것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전환하는 능력으로 이어졌고, 영화와 오페라는 디자인의 교본이 되었다. 이렇듯 세상 만물에서 의미를 찾고 영감을 얻던 파올로 는 혈기 왕성한 20대 중반, 이탈리아 굴지의 미디어 그룹 라모에스의 제안을 받아 디자이너로 데뷔한다. 그는 패션 매 거진 <이오 돈나 Io Donna del Corriere della Sera>의 별책 부록인 ‘남자 대 남자(Da Uomo a Uomo)’의 진행과 그 포장지 디자인을 의뢰받아 최고의 히트작을 남겼다. 이때 그가 사용한 메인 컬러가 ‘오렌지’요, 소재는 ‘패브릭’으로 이는 곧 디자인계에 새로운 베이식, 즉 기본 색상과 소재 탄생을 예고했다. 독특하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오렌지 컬러의 매력을 알리기 시작한 후 파올로는 <보그 Vogue> 이탈리아판을 아트 디렉팅하며 탄탄대로에 올랐다.
(왼쪽) 주방에 마련한 다이닝 룸. 아르데코 식탁 세트가 놓인 가운데 등받이가 높은 벤치형 의자를 매치해 패브릭 장식 효과를 높였다. 벤치를 감싼 꽃무늬 자카드 패브릭은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고전 패턴으로 런던 리버티백화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오른쪽) 거실 서랍장 위에는 1936년에 제작한 엘사 슈파렐리 Elsa Schiaparelli의 ‘쇼킹 Shocking’ 향수병이 놓여 있고 그 뒤로 파올로 집을 위해 그린 듯 컬러와 체크가 조화를 이룬 아우렐리오 사르토리오 Aurelio Sartorio의 그림 ‘블랑코 Blanco’가 걸려 있다.
해체와 재조합, 결코 금기시되는 것은 없다 기존에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소란스럽거나 경박하지 않은 디자인. 천재와 둔재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처럼 그의 디자인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파올로는 잡지 디자인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디자인 근원인 텍스타일 영역에 진입했다. 대중적으로 첫 성공을 거둔 것은 다소 의외의 아이템인 넥타이였다. “파리 방돔 광장에 있는 샤르베 Charvet라는 고급 남성 맞춤 셔츠 전문점에서 제 넥타이를 보고 독특하다며 6개나 사갔어요. 그러더니 곧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신비로운 보르도 와인 빛깔의 스트라이프 패턴 넥타이. 선과 색상 사이에서 소리 없이 춤을 추는 듯한 파올로의 텍스타일 디자인은 높은 호응을 얻었고, 이후 파리에 문을 연 이탈리아 남성 패션 브랜드 갈로 Gallo의 기하학적 컬러 패턴의 양말로 이어졌다.
사소한 아이템인 넥타이와 양말을 통해 남성 패션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파올로. 그런 그가 파리 생활을 뒤로 한 채 밀라노에서 새롭게 시작한 작업은 인테리어 텍스타일 디자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텍스타일 디자인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패브릭 자체를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기존에 나와 있는 패브릭을 저만의 감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을 즐깁니다.”
(왼쪽) 파올로가 좋아하는 원단과 빈티지 스카프를 유리 액자 안에 넣어 작품처럼 연출했다. 티볼리 라디오 역시 그의 컬러 취향을 알려준다.
(오른쪽) 욕실 벽면의 라디에이터에 헝가리산 수건을 작품처럼 걸어놓았다. 거울에는 빨간 이케아 붙박이장과 이탈리아 현대 작가의 팝아트 그림이 비쳐 보인다. 세면대 밑에는 주황색과 흰색이 줄무늬를 이룬 원단으로 커튼 덮개를 설치했다.
파올로는 기성품 의자나 소파 등을 자신이 원하는 색상과 질감의 패브릭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문 대신 패브릭으로 커튼 월을 만들며, 옷감과 옷감을 이어 붙여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스트라이프 패턴을 연출한다. 그리고 다소 엉뚱하고 무모하다 싶은 이 모든 아이디어를 온전히 그의 집에 펼친다. “누군가는 이 집의 모든 것이 무척 즉흥적인 발상으로 이뤄진 듯 가볍다 말하지만, 이는 오랜 세월 제가 깨달은 디자인 신념을 통해 정교하게 탄생한 결과입니다.”
사실 사전 정보 없이 파올로의 집을 보노라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자가당착에 빠지곤 한다. 톡톡 튀는 컬러로 무장한 남성 디자이너의 집이다 보니 그 현란함이 아이디어의 전부라 단정하는 선입견이랄까. 하지만 그 숲에 존재하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다 보면 파올로의 탁월한 안목과 세련된 재치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우선 그만의 고급스러운 감각은 ‘완벽한 디테일’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최고급 가죽 소파로 인정받는 폴트로나 프라우 Poltrona Frau의 클래식 소파를 바이올렛 톤 벽면과 우아하게 조화되도록 소파 전문가에게 의뢰해 청록색 패브릭으로 커버링했다. 또한 그의 세련된 재치는 ‘경매에서 건진 빈티지부터 이케아까지’ 가치 분배의 노하우를 통해 빛을 발한다. 코코 샤넬이 좋아했다는 빈티지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다채로운 패브릭 전등갓을 더해 모던한 디자인으로 변신시켰고, 그 아래쪽에 이 케아의 스트라이프 러그를 놓아 절묘한 컬러 매치를 연출했다. 광기와 우연으로 점철된 ‘디자이너의 전설’이 창조한 결과라고 하기에는 이 사람의 일관된 취향과 안목은 한두 해 쌓은 내공이 아니다.
(왼쪽) 파올로의 작업실. 마호가니 더블 문이 달린 ‘Stanley’라는 뷰로형 작업대는 영국식 붉은 가죽을 손바느질로 커버링한 수공예품. 가죽 서랍 안에는 파올로가 양말을 만들 때 영감을 주는 옷감 견본들이 가득하다. ‘빌로 빌로 Bilou Bilou’라는 디자인 의자는 나폴리산 벨벳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오른쪽) 파올로가 ‘갈로’라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를 위해 디자인한 기하학 패턴의 컬러 양말.
스타일? 편견은 버리고 ‘편애’는 키워야 산다 파올로의 컬러풀한 아파트가 공개된 후, 그는 찬사와 질시를 동시에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집을 화려하게 수놓은 가구와 패브릭은 모두 인테리어 숍에서 구할 수 있는 기성품이요, 그의 집 구조 또한 대대적 개조 없이 벽만 단장한 유럽의 평범한 아파트였으니 말이다.
“직접 만들어 쓸 게 아니라면 누구나 기성품을 사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개성에 맞게 응용하고 연출하는가에 따라 특별한 존재가 되고, 색다른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수없이 거쳤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파올로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집’을 꿈꾸는 사람에게 ‘부러워만 하지 말고 무엇이든 시도해보라’ 권한다. 그래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해내고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인테리어가 어떤 것인지 깨닫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편견은 없지만 선택에서는 ‘편애’가 존재합니다. 편견이 없기 때문에 이케아를 비롯한 저가 생활용품부터 명품까지 고루 사용하고, 특정 컬러와 패턴을 선호하는 일관된 편애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스타일로 아우를 수 있는 거죠.”
그가 올봄, 당신의 집을 단장할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제안한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집을 꾸미고 싶다면 파올로의 비법에 귀 기울일 것. 이 모든 것은 이미 그가 자신의 집에서 100% 실현한 것이니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결심과 실행, 단 두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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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바냐라의 집이 부럽다면? 색깔 있는 집을 꾸미는 4가지 노하우
1 효과적인 개성 연출, 소파 천갈이 계절에 따라 옷을 달리 입고, 심지어 기분이나 약속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은 당연한 일. 등받이나 앉는 자리 등 쿠션이 분리되는 소파의 경우 커버만 교체해도 공간을 색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 단, 프레임의 컬러를 고려해 매치할 것. 물론 소파 전체를 완벽하게 천갈이 하는 것도 좋은데, 이때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맡기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2 패턴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라 프랑스의 한 문학가는 줄무늬를 일컬어 ‘사탄의 원단’이라 했을 정도로 오묘한 매력이 있다고 평했다. 클래식한 멋과 역동적인 감각을 동시에 발산하는 스트라이프와 체크 패턴을 다양하게 활용한 파올로. 파올로가 패턴을 선호하는 것은 바로 변화무쌍한 매력 때문이다. 특히 벽면에 스트라이프 패턴을 입히면 두 가지 컬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공간에 생기가 돌고 가구와 소품을 돋보이게 해준다. 지루하다 싶으면 컬러 중 한 가지 색상만 달리 칠해 쉽게 분위기를 전환할 수도 있다. 줄무늬 특유의 복잡함이 싫다면, 너비를 최대로 넓히는 것이 좋다.주황색 침대에는 카스텔 바작이 디자인한 ‘벽에 낙서하지 마라’는 일러스트 패턴 쿠션과 체크와 도트 패턴 패브릭을 조화시킨 베드 스프레드를 매치했다.
3 감각적인 원단을 액자에 넣어 작품으로 활용하라 멋진 회화 작품이 있어야만 집 안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패브릭 원단. 스카프, 디자인 양말, 심지어 스타일리시한 사각 팬티까지, 유리 액자 안에 넣으면 작품으로 연출할 수 있다. 자투리 천이 많다면 패치워크로 조합해 액자에 넣기만 해도 패브릭 아트가 따로 없다.
4 공간에 풍성함을 선사하는 커튼 월&갓 리폼 조명 보기 싫은 문짝, 낡은 붙박이장을 교체하고 싶을 때 효과적인 처방은 그 앞에 패브릭으로 ‘막’을 치는 것. 특히 보르도 와인색ㆍ보라색ㆍ사프란색 등 따뜻하고 풍성한 컬러를 돋보이게 할 벨벳 천으로 커튼을 만든 후, 가리고 싶은 대상 앞에 설치하면 깔끔하고 독특한, 나만의 색깔 있는 집이 된다. 만약 옷을 보관하는 공간에 이 커튼을 달 경우, 커튼 이면은 먼지가 붙지 않는 원단으로 처리하면 좋다. 또한 빗방울 같은 크리스털이 풍성하게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는 장식성이 높기 때문에 분위기 메이커로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여기에 전구 크기에 맞는 색색의 패브릭 조명갓을 더하면 조명등 자체는 물론 불빛까지 컬러풀하게 연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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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미영 텍스트 피에르 레옹포르테 Pierre Leonforte 자료 제공 파이 인터내셔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