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02월 상태에 대한 만족 (함성호 시인)
-
시인 함성호 씨의 두 번째 글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물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 “예”라는 대답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글쎄요”라거나 뭘 그런 걸 묻느냐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안녕하세요?”라고 물어보자. 이 의례적인 인사말에는 “예” 혹은 “그렇지요, 뭐” 하는 대답이 관례다. 그렇다면 이번엔 좀 구체적으로, 문방구에서 연필 한 자루를 산 사람이 있다고 치고 그 사람에게 물어보자. “만족하십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예. 그렇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앞의 두 경우와 비교해볼 때 보다 분명한 답이 나온다. ‘행복’보다는 ‘안녕’이, ‘안녕’보다는 ‘만족’이 더 분명한 답이 나온다.
이 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만족 滿足:1. 마음이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이라는 뜻이고, 안녕 安寧:1.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이며, 행복 幸福: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히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가리킨다. 자세히 보면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인간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흐름에 의지한다는 뜻이 강하고, ‘안녕’은 탈이 없는 소극적 상태다. 그리고 ‘만족’은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웰빙’이라는 말은 행복보다는 만족에 훨씬 가까운 말이다(원래 wellbeing은 철학 용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eudaimonia’를 번역한 것으로 ‘좋은 수호신을 가지고 있다’ ‘잘 있다’를 의미한다). 행복이란 단어는 중국어에서도 우리와 같은 의미보다는 만족이라는 뜻이고, 일본어 ‘幸せ’도 만족에 가깝다. 한자의 幸은 갑골문에서 죄인의 두 손목을 묶는 형구 모양에서 나왔다. 나중에 형구에서 풀리니 다행하다는 뜻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더 이상 원의로 쓰이지 않고 만족하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행복은 차라리 영어의 lucky에 더 가깝다. 중영사전에도 행복은 happiness, happy, 혹은 welfare, wellbeing의 뜻으로 쓰고 있다. 일본에서도 ‘幸せ’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의미하다가 현재는 만족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널리 쓰인다. 유독 한국에서만 ‘행복’은(자의 그대로) 어떤 알지 못할 흐름에 의해 만들어지는 좋은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행복하세요?”라는 물음에 한국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어제와 비슷한 일상에서 무슨 커다란 행운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웰빙은 ‘만족한 상태’를 뜻한다. 건강이든, 돈이든, 음식이든, 권력이든 충족된 상태다. 그 상태의 수준은 당연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만 원의 행복이 백 원의 행복보다 더 큰 것은 아니다. 인간이 받는 심리적, 정신적 상처의 크기가 없듯이 행복의 크기도 없다. 그리고 웰빙은 그 모든 것이 통합된 상태의 만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wellbeing)은 많은 경우 부분의 상태를 의미한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도 누군가가 해준 따뜻한 밥 한 끼로 그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 순간이 지나면 그 어머니는 다시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잠기겠지만, 그것이 슬픔을 이기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순간에 느끼는 만족한 상태로서의 행복일 수 있다. 그래서 행복은 영원하지도 않고, 부분에 대한 만족이다. 웰빙이 상업주의의 욕망이 되어 개인의 욕망을 점령할 때, 타자의 욕망이 스스로의 욕망처럼 되어버릴 때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에 끌려간다. 그러나 자기 욕망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 있음의 경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을 어마어마하게 생각하지 말자. 행복이 더 작고, 더 사소한 것일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지니까.
함성호 시인의 두 번째 행복론입니다. 지난 호부터 시작한 화두- 웰빙, 만족, 행복, 욕망을 한 번 더 되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행복이 가득한 집>이 묻습니다. 행복하세요? 안녕하세요? 만족하세요? 아니,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