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곰용 씨의 여름 옥상
-
뻐꾸기 운다. 숲이 짙어지기 전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초여름 소리. 얼마 전부터 밤마다 개구리 합창 연습이 한창이었다. 나는 선캡을 쓴 채 커피를 들고, 배우자 곰용 씨의 옥상에 올라간다. 곰용 씨는 지금 쌈 채소를 수확해 씻고 있다. 저 채소들은 적당한 양으로 나뉘어 곧 지인들에게 선물로 갈 것이다.
대추나무, 뽕나무, 다래나무, 장미조팝, 단정화, 둥굴레, 페퍼민트, 로즈메리, 감자, 오이, 호박, 수박, 딸기, 참외, 가지, 고추, 토마토, 미나리, 케일, 여러 쌈 채소…. 우리 집 옥상 농부 곰용 씨가 키우는 식물이다. 밖으로 다니며 활동하길 좋아하는 그는 팬데믹 시기의 에너지를 옥상 텃밭 가꾸기에 소진했다. 매년 ‘옥상 농사 놀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짧은 기록을 남겼는데, 올해가 다섯 번째 시즌이다. 씨앗과 모종을 심고, 수시로 옥상에 올라가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해충을 박멸하며 지지대를 보수한다. 그는 식물을 잘 돌봤고, 식물은 무럭무럭 자라 실한 열매를 맺었다. 쫀득쫀득한 찰토마토의 식감에, 절굿공이 같은 오이의 크기에, 매번 놀라면서 맛나게 먹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느끼는 시골 정취라니, 곰용 씨의 옥상은 꽤 즐겁다. 이 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직접 키운다’라는 행복감을 맛보며 산다.
사실 이 집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집 중 가장 작고 춥고 더운, 불편한 집이다. 단독주택에서 살 수 있다는 말에 홀려서 오긴 했지만,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 동네는 그들의 시계에 맞춰 돌아갔다. 가장 가까운 슈퍼는 초저녁에 문을 닫았고, 옆집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아침 6시부터 공업용 재봉틀을 돌렸다. 옆집에 찾아가 8시부터 일하시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는 곰용 씨의 말에 할머니가 되레 화를 냈다. “그 시간에 눈이 떠지는 걸 우짜라꼬?”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의 일간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부산에서 겪은 일을 재료 삼아 글을 쓴다.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는 건 아마 부산이 좋아서겠지. 단순히 부산이 나를 먹여 키웠다고 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등단하고 나서야 부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살던 장소마다 내가 소설을 쓰는데 지녀야 할 태도가 담겨 있었다. 이질적 존재를 환대하는 태도 말이다.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부산에는 이주민이 많이 드나들었다. 해방 후 타국에서 귀환한 동포,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 산업화 시기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까지 많은 이가 부산의 문을 두드렸다. 부산역과 부산항 인근의 산은 집으로 빼곡하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만든 계단과 골목이 여러 갈래 생겼고,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산 중턱에 차가 다니는 산복도로가 생겼다. 산복도로는 부산진구, 동구, 중구, 서구에 걸쳐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이 산복도로 위, 수정동이다.
결혼하기 전 30여 년 가까이 살던 곳은 지금의 부산시민공원 자리에 있던 하야리아 미군 부대 옆, 연지동이다. 아빠가 운영하던 세탁소 인근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살았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사람, 공장 노동자, 자영업자, 유흥업소 종업원, 그 종업원과 동거하는 건달까지…. 사람들은 서로 달라서 자주 다투었지만, 먹고 살려고 억척을 떨었고 비슷한 처지의 옆 사람을 기꺼이 챙겼다. 잘살아서 챙기는 게 아니라 못사는 걸 아니까 챙겨주는 그 사람들이 좋았다. 나는 연지동과 산복도로 마올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남겼고, 그 글처럼 살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쓰며 사람 구실 하려는 나 자신올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다.
옥상에는 간혹 곰용 씨가 심지 않은 것이 자라기도 한다. 채송화, 복숭아, 살구, 유자나무 등. 허락도 구하지 않고 아무 데나 자리 잡고 앉아 슬그머니 뿌리를 내리는 그것들이 신기해 한참 들여다본다. 옥상에 자리 잡은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굼벵이, 개미, 애벌레, 노린재, 벌과 나비, 그리고… 길고양이가 옥상에 몰래 낳은 새끼 고양이들까지. 곰용 씨는 옥상 문을 두드린 그것들을 기꺼이 거두어 돌봤다. 그것을 보며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새삼 배운다. 복숭아나무는 올해 처음 열매를 맺었다. 고양이들은 가끔 도마뱀을 잡아 선물로 준다. 곰용 씨의 여름 옥상은 올해도 풍년이다.글 이정임 | 담당 최혜경
이정임
‘이질적 존재를 환대하는 태도’, 외지인에겐 쉽사리 잡히지 않던 부산 문화의 고갱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활동하는 소설가가 그 고갱이를 솜씨 있게 발라 소화하기 좋게 건넵니다. 타향이 내 집이 되는 곳, 부산 이야기를 곰용 씨의 옥상 친구들 소식으로 시작하시지요. 이정임 작가는 1981년 부산 출생으로,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고, 현재 요산문학관 사무차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20회 부산소설문학상, 2017년 부산작가상, 2024년 이주홍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 <손잡고 허밍>, 산문집 <산타가 쉬는 집>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