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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나의 마지막 작품

5월의 목요일, 엄마는 지중동물처럼 침대에 웅크린채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확장된 지각으로 숨소리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창문에 노란 새똥 줄무늬가 사선을 그었고, 간혹 정화의 봄비가 내렸다. 나는 커튼을 좌르륵 끝까지 열었다. 공원의 반투명 연두색 이파리들은 계절의 환호 대신 평평한 후회를 불렀다. “커튼만 걷고 문은 열지 마.” 엄마는 호흡을 내쉬며 낮게 말했다. 

 

모든 창문은 하루가 끝날 때 밤의 거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눈은 거울을 볼 수 없었다. 엄마의 여든여덟. 예상된 통계의 지점에서 우리의 모든 장면에는 파열이 숨어 있었다. 원인과 결과. 그 이상한 불확실성. 그사이 엄마의 두 눈이 실명 직전의 상태로 치달았다. 당신이 보는 것은 오직 그림자와 흐릿한 형상뿐. 

 

“나 좀 안과에 데려다줘.” 식목일 날, 엄마는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목소리로 말했고, 2주 간격으로 양안을 모두 수술받았다. 예후랄 것은 없었다. 엄마의 눈에 세상은 무의미에 매달린 너무 익힌 미트볼로 보였기 때문에. 

 

“다 때 되면 가는 거야. 없이 지내다 보면 너도 살게 돼 있어.” 엄마의 어조에는 안도도 실망도 없었다. 엄마에게 죽음이란 이어지는 날들과 사라지는 달들 사이의 변형일 뿐이라서. 나는 모두가 수긍하는 자연의 질서, 죽음의 대조적인 방식에 반발했다. “안 돼. 5년, 아니 10년, 아니 딱 20년만 나하고 더 살자.” 

 

실존의 지리학 속에서 모든 날은 특정한 단위로 축소되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와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방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바꾸고, 혈압을 재고, 약을 챙기며 그 표정에서 행복과 초월의 흔적을 살폈다. 나의 손위 형제들과 상관없이 나만 당신의 유골을 뿌릴 자격이 있다는 거창한 오해 때문에. 그러나 나의 자의식은 발달 전환기의 불안을 겪는 10대일 뿐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불변의 리듬을 따랐다. 오늘도 엄마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양말을 신기고, 두 뺨과 코와 이마에 키스했다. “이마에 키스하는 건 존경의 표시래.” 2층 방에서 1층 부엌까지 열여섯 계단을 내려온 엄마를 위해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데, 기름 한 방울이 프라이팬을 빠져나와 나를 데웠다. 나는 엄마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지 못하는 초보자. 카레라이스를 차려드린 다음 나는 물었다. “나하고 사니까 행복해?” 엄마의 대답은 “물!” 단음절의 한마디. 아토초의 속도로 물을 떠드려도 엄마의 일인칭 단수는 다음 요구의 첫 머리로 제한되었다. “커!” 

 

나는 엔진 달린 사마귀처럼 삐걱대며 커피를 내려드리고 엄마 가슴에 귀를 댔다. 내가 태어난 사회에 나를 붙들어주는 마지막 실타래. 엄마의 심장박동은 잡음이 많고 기포가 섞여 있었다. 물속의 잔물결처럼 파동을 그리는 마음은 엄마가 부재할 때의 나를 상상하지만 형태가 없었다. 나의 좌표는 매일 더 멀어지는 그녀의 방식 안에 있기 때문에. 

 

“그때에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어.” 나는 일본어로 하는 엄마의 술회를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그녀 삶 전체를 내 삶과 나란히 놓고 해마다 비교할 것 같았다. 아홉 살에 해방을 맞은 엄마는 그렇게 1년 반의 일어 배경으로 아침마다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셨다. 

 

“매일매일 일본어를 다섯 문장씩 공부하자.” 오늘은 ‘비가 온다’를 배웠다. 다시 ‘눈이 내린다’로 응용하는 일타 강사의 교습법은 문학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작년 11월 나가사키 여행 중에 엄마에게 배운 일본말로 서빙하던 할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내 배가 종이 풍선처럼 불러요.” 엄마는 내 뒤통수를 만지며 지금의 나와 예전의 아이를 연결해주었다. 

 

“착돌이. 착하고 말 잘 듣는 착돌이. 넌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한테 화를 낸 적이 없어.” 내 성장기의 저장소이자 당신 과거의 역사가는 눈 먼 얼굴로 다시 말했다. “나의 마지막 작품.” 어떤 의미로 그 순간의 장엄한 행복은 현실의 영역 너머에 있었다. 그날 밤 닫힌 창문은 엄마가 아니라 나를 위한 밤의 거울이 되었다. 어느 날짜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이 영원히 가버린 뒤에야 나는 오늘 아침의 행복을 이해할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외로운 행복을. 

 

 

한때 잡지깨나 읽었다는 사람은 모두 아는 이름이죠. 수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수많은 독자가 편집장의 글을 정독하게 만든 <GQ KOREA>의 초대 편집장이자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학교 ‘스누트’를 운영하며 글을 가르치는 이충걸이 자신의 행복론을 들려주었습니다. 그와 <행복>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 35년 전 그는 <행복>의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거든요. 그 연줄 덕분에 읽는 이에게 행복의 한 조각을 설명이 아닌 이미지로 전하는 아릿한 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충걸은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에세이집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슬픔의 냄새>,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 등을 펴내며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첫 장편소설 <너의 얼굴>을 출간했습니다. 

 


글 이충걸(작가) | 담당 양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