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23년 12월 당의정과 탕후루의 행복론

쓴 약에 단물 옷을 입힌 당의정과 새콤한 과일에 설탕물을 덧씌운 탕후루는 형제지간이다. 형제라면 성이 같아야 할 텐데 왜 다를까 의아할 수도 있는데, 각각의 한자 ‘糖衣錠’과 ‘糖葫蘆’를 보면 이해가 된다. 모두 단것을 뜻하는 糖씨인데, 이것이 포도당에서는 ‘당’으로 읽히고 설탕에서는 ‘탕’으로 읽히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형제지간이라 같은 점도 많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한자어 糖衣를 우리말로 하면 ‘단물 옷’이 된다. 영어로는 슈거코팅sugarcoating이라 하는데, 단물 옷이라 번역해놓으니 훨씬 더 정겹게 느껴진다. 葫蘆는 중국어로는 ‘후루’라 읽지만 우리는 ‘호로’라 읽는다. 조롱박을 뜻하는데, 우리는 쓰지 않으니 뭐라 읽든 낯설다. 둥근 과일을 꼬치에 꿰어놓은 모양이 조롱박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조롱박은 귀엽지만 새콤달콤한 과일에 몹시 단것을 덧씌운 것은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단물 옷 속의 약은 쓰다. 단 옷 속에는 쓴 약이 들어 있는 줄 알지만 우리는 눈을 질끈 감고 삼킨다. 그래야 병이 낫고 몸이 건강해지니 살짝 입힌 단물 옷에 감사하며 먹는다. 새겨들어야 할 말은 귀에 거슬린다. 그러나 부모님, 아내, 친한 친구의 쓴 말에는 몸에 좋은 진심이 담겨 있는 줄 알기에 철이 들면 귀에 거슬리더라도 머리와 마음에 새긴다. 

 

과일을 둘러싼 설탕물은 너무 달고도 끈적인다. 과일은 씨를 퍼뜨리기 위해 스스로 최대한 단맛을 낸다. 여기에 농부의 노력이 더해져 과일은 충분히 달다. 그런데 이것도 부족한지 설탕을 녹여 두껍게 덧씌운다. 설탕 덩어리는 혀는 만족시키지만 치아, 혈관, 관절을 괴롭힌다. 벌레는 치아에 들러붙은 설탕을 양분 삼아 치아를 잠식해간다. 당분으로 손쉽게 찌운 살은 혈관을 압박하고 관절을 과로하게 만든다. 

 

할 말은 해야 하고 들을 말은 들어야 한다. 그러나 바른말이 듣는 이를 아프게 찌른다면, 사탕발림의 말이 너무 달아 바른말을 잊게 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때로는 당의정처럼 에둘러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단물이 너무 과해 탕후루처럼 설탕 범벅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단물 옷을 입힌 쓴 약처럼 완곡하게 말하지만 뼈 있는 말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누구나 태어난 지역에서 배운 ‘말씨’와 자신의 성별, 나이, 직업 등에 맞는 ‘말투’를 지니고 산다. 한 사람의 말은 말씨가 씨줄이 되고 말투가 날줄이 되어 짜임이 만들어진다. 그 짜임으로 ‘말매무새’를 어떻게 가다듬을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되 약간의 꾸밈으로 멋을 부렸다면 당의정의 말매무새이고, 치장이 과해 외려 천박하게 보인다면 탕후루의 말매무새이다. 

 

상대가 듣고 싶은 호칭, 서로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높임법, 진심을 가득 담은 따뜻한 ‘말차림’은 입으로 차려낼 수 있는 최대의 밥상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는 약간의 달콤함을 담은 말차림은 누구나 반긴다. 당의정과 탕후루는 형제지간이지만 형만 한 아우가 없는 법이다. 형인 당의정을 닮은 말차림과 말매무새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국정감사장에까지 불려갔지만 탕후루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는데요, 30년 넘게 우리말의 말소리와 방언을 조사하고 연구해온 한성우 교수가 탕후루에서 비롯한 행복론을 들려드립니다. “당신은 어떤 말씨와 말투를 지녔나요? 그 말씨와 말투로 어떤 말차림을 만들고, 어떻게 말매무새를 가다듬어 말을 하나요?” 한성우 교수는 요즘 만나는 모든 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방언정담>을 시작으로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등 말의 주인인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면서 말씨, 말투, 말차림, 말매무새에 대한 질문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세 치 혀를 통해 만들어지는 말 한마디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말할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글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화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