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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행복이 가득한 집’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 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민한 사람이 보는 세상은 덜 예민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비교하자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된 컴퓨터와 같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이렇게 예민하면 뇌가 과부하에 걸릴 것이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집’이 중요하다. 집은 외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에게 집이 편안한 공간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와 이혼, 성인이 되어서는 배우자와의 갈등, 자녀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계속 이들을 예민하게 만든다. 

 

‘안전기지’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가 제시한 이론으로,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상을 의미한다. 안전기지가 잘 형성되면 자신의 예민성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안전기지는 부모가 되지만, 부모의 성격이 좋지 않거나 불화가 있다면 안전기지 역할을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안전기지를 만들어가면 어릴 때 부모가 해주지 못한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배우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도 아니라면 직업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나 담당 의사, 취미 활동, 반려동물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게 하나도 없다면 자신의 예민성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예민성을 조절할 수 있는 안전기지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하버드 대학교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는 1938년에 시작해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총 8백14명을 평생에 걸쳐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 정도는 행복한 삶에서 중요 변수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을 긍정적 태도로 넘기는 사람이 결국 더 행복했다. 이 연구에서 앤서니 피렐리라는 인물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1941년 연구원이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난방도 잘 안 되는 보스턴의 초라한 집에서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무력한 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47년 뒤인 1998년에는 보스턴 공원이 보이는 좋은 집에서 사는 대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피렐리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이고 가족들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평온의 기도’를 성실하게 한 덕분에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용기와 인내심을 지닐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과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의 저자 전홍진 교수. ‘예민러 멘토’라 일컫는 그의 책이 많은 예민러의 호응을 얻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예민함은 나쁜 게 아니라고, 예민러의 행복은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새로운 안전 기지를 만들어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달래주며 북돋워주기 때문이죠. 둘러보면 예민러 아닌 이가 없는 시대에 그의 이야기는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습니다. 전홍진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신과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연구부학장, 삼성서울병원 디지털치료연구센터장,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미국과 한국의 우울증 환자를 비교하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으며, 우울증·치매·스트레스에 대한 치료 및 연구를 해왔고, 자살 예방에 대한 연구 활동 및 유족 지원,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과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습니다. 

 

 

글 전홍진(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