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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지금 에이징 솔로에 주목해야 할 이유

혼자 사는 사람들의 나이 드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뒤 여름 내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했는데,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어느 도서관에서 내 강의를 열심히 메모하며 듣던 중년 여성이 손을 들더니 고민을 털어놓았다. 비혼인 자신이 아픈 부모를 혼자 돌보는데 기혼 형제 자매는 나 몰라라 하고, 자신도 일해야 하는데 돌봄 시간은 점점 늘고…. 그의 고립무원의 처지에 마음이 아릿했다. ‘독박 간병’은 피해라, 고립되면 안 된다, 절대로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둥 뻔한 조언을 건네면서도 속으론 이런 말이 무슨 힘이 될까 싶었다. 내 말이 끝나자 뒤쪽에서 누군가 그에게 “힘내세요”라고 외쳤고 응원의 박수가 이어졌다. 끝나고 나오는 길에 다른 참석자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와 마주쳤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 두 분도 혼자 사신다길래 제가 손을 덥석 잡았어요. 우리끼리 티타임 가지려고요. 이렇게 시작해봐야죠.”

 

그에게 필요한 건 요원한 정답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걸 목격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책을 쓰면서 만난 비혼 여성들도 그랬다. 자신의 가족을 구성하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혼자 나이 들고 있지만, 삶이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홀로이면서 함께’인 조건을 만들어나갔다. 느슨한 네트워크를 맺기도 하고, 친구랑 같이 살거나 서로 돌볼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자매나 친밀한 파트너 때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연결망을 만들었다.

 

이는 내가 만난 비혼 여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는 사람은 급속도로 줄어들지만, 한솥밥을 먹는 식구는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족이 아닌 친구나 애인과 함께 사는 비친족 가구원이 2021년에 사상 처음으로 1백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5년 새 두 배가 늘어났다.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사이가 된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의 제도는 여전히 법적 가족의 권리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가족이 아닌 친구는 보호자가 될 수 없다. 동거인과 함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해도 대출과 신청 자격 앞에선 그저 남남일 뿐이다.

 

이미 해외에는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생활과 돌봄을 함께하는 상호의존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렇게 가족제도가 유연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출생률 회복도 이뤄냈다는 것이다. 가족이 짊어진 막중한 책임을 사회가 덜어내 가볍게 해주고, 남녀 모두 돌봄을 함께 하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도 차별 없이 키울 수 있고, 서로 돌보는 사이라면 누구든 필요한 권리를 누리도록 제도가 유연해진다면 아이 낳기 어려운 팍팍한 사회를 벗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족 형태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필요한 때다.

 

“혼자여서 결핍되고 불완전한 게 아니라 혼자로도 충분한 에이징 솔로의 삶이 궁금했다”. 김희경 작가가 쓰고 많은 독자가 구입으로 화답한 <에이징 솔로> 프롤로그 한 구절입니다. 1인 가구 시대, 비혼 중년의 삶을 조명한 이 책은 ‘더 많은 개인과 가족을 포용하는 삶의 모델’이라는 요즘 <행복>의 고민과 맞닿아 있죠. 삼고초려 끝에 그의 글을 싣게 되어 참 좋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인류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동아일보 기자,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를 거쳐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일했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흥행의 재구성>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내 인생이다> <여성의 일, 새로 고침>(공저)을 썼고,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아시안 잉글리시> <푸른 눈, 갈색 눈>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공역)를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글 김희경(작가, 강원대학교 객원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