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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지금부턴 '서로 다른 가족들'이 행복한 집

2년에 한 번씩 가을 학기에는 ‘가족사회학’ 강의를 개설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 대에는 커리큘럼에만 있지 강의는 하지 않던, 말 그대로 이름뿐인 교과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기 과목이 되었고 수강생들의 소감도 나쁘지 않다. 대학에서 들은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학생도 여럿 있다. 가족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이 그만큼 깊다는 이야기다.

 

수강생들은 기말 과제로 관심 있는 주제를 하나씩 선택해 공동 또는 개별 보고서를 제출한다. 주제 선정은 자유인데, 이때 선택한 주제는 당시 청년들의 관심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주된 주제가 ‘IMF와 가족의 빈곤’ ‘남아 선호’ ‘딸의 차별 경험’ 같은 것이었다. 2010년쯤에는 ‘여성의 명절 노동’ ‘이혼’ ‘가정 폭력’에 집중됐다. 2015년 무렵에는 ‘데이트 폭력’ ‘동거’ ‘가사 노동 분담’ 에 관한 보고서가 많았다. 최근 강의에서는 ‘비혼으로 살기’ ‘생활동반자법’ ‘가족과 복지’ ‘남성의 육아휴직’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흐름은 가족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이 빈곤과 성차별에서 가부장적 가족 규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대되어왔음을 보여준다. 또 이혼 같은 가족 관계의 변화와, 동거처럼 실제적인 커플의 결합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느 해인가 ‘동거’를 연구하겠다는 학생이 너무 많아 연구팀을 짜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다. 보고서의 내용은 대부분 동거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원가족(시집과 처가)과 거리를 둘 수 있고 가사 노동 같은 성 역할도 동등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지는 점은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다. 과거에는 연애와 결혼,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시간에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 초롱 빛났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되살리며 자신은 더 멋진 연애를 하고 더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주제가 가장 인기 없는 강의다. 연애와 결혼은 남의 일이고, 내 생애에 부모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에 관심 밖 사건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의 시들한 표정 앞에서 나는 이 시간을 줄여야 할지 고민한다.

 

가족에 대한 청년들의 의식은 달라져왔다. 더 개방적이고 더 자유롭게, 더 개인적이고 더 민주적으로. 그러나 이런 변화를 환영만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단단하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동거는 불안한 관계이며, 이혼은 실패의 경험으로 해석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사랑하지 않을 때 헤어질 수 있는 자유는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정신적·물질적 능력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 시선의 변화도 필요하다. 이런 능력과 조건을 갖추기 위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비혼을 꿈꾸는 청년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 들어가지 않겠다거나 결혼과 출산이 가져올 삶의 단절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제도적 보호의 울타리 바깥에 있다는 점이다.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은 그래서 이들에게 간절하다. 개인은 혼자든 그 누구와 살든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법률혼 가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가는 그 선택을 보호하고 지원할 책임이 있다. 가족이 ‘행복한 집’이 되려면 서로 다른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4.5%가 1인 가구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법과 제도로 ‘정상 가족(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이라 분류한 29.3%보다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죠. 게다가 비혼 동거 커플, 한부모 가족 등까지 합하면 그 수는 굉장하죠. 그런데도 이 ‘법외 가족’은 의료·주거·사회 서비스 등에서 밀려나거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아직 그 법률 제정 여부를 두고 각계에서 논쟁 중이지만 생활동반자법이 그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대한민국 표준 가족의 삶’을 이야기해온 이 비혼 가구, 1인 가구, 생활 동반자 등의 라이프스타일로 시야를 넓히려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핵심은 ‘서로 다른 가족들까지 행복한 집’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생각을 피부에 와닿게 풀어내준 신경아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노동과 돌봄, 일과 삶의 균형, 감정 노동 등을 주제로 연구를 수행해왔고, 한국여성학회장, 한국사회정책학회장 등을 지내며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이론과 정책 개발의 토대를 만들어왔습니다.  〈백래시 정치〉 〈젠더와 사회〉(공저) 〈여성과 일〉(공저)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

 

 

글 신경아(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