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23년 3월 봄이면 새들은 둥지를 틀고

지인의 시골집 마루에 앉아 아침 바람을 쐰다. 텃밭 너머에 선 늙은 느티나무가 소란하다.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틀고 있다. 아직 잎을 틔우지 않은 느티나무에 광주리만 한 까치집 여섯 채가 적나라하다. 저 정도면 까치 마을이네! 나무가 무거워 보여 내심 놀라는데 지인이 이르기를 모두 헌 집이라고 한다. 까치 한 쌍이 저 나무를 터전 삼아 살며 해마다 새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까치는 둥지를 틀고 나면 서둘러 알을 낳고 부화한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한 달 동안 자란 새끼들이 둥지에서 떠난다. 한 달은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올봄에 큰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앞서 내가 지방에 직장을 잡으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우리 집의 두 집 살림은 내력이 꽤 되었다. 아내에게는 오랫동안 하던 일이 있었고 두 아이는 자라서 아버지 따라 이사를 가자고 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저녁마다 전화로 아이들 일을 상의했다. 사춘기 아들 둘을 홀로 돌보느라 아내는 고생이 많았다. 큰아이를 내보내면서 아내는 세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고 허전해했다. 나도 우리 둥지가 깨지는 것만 같아 쓸쓸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는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이가 지낼 방을 구해주고 났더니 이번에는 조용하던 작은아이가 소란을 피웠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작은아이는 희망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해 상심이 컸다. 아이가 느닷없이 아빠가 지내는 도시로 전학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투정인 줄 알았는데 아이의 마음이 완고했다. 혹시나 다른 사정, 그러니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든지 하는 말 못 할 문제가 있는지 물었지만 그러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픈 열망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내는 아빠랑 둘이 지내면서 입시 생활을 어떻게 하겠냐며 을렀다. 아이는 “왜 안 돼?” 하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안 될 건 없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아 아이에게 일단 아빠가 지내는 곳으로 내려가 한 주 지내보자고 제안했다.

 

며칠 동안 아이는 혼자 도시를 돌아다녔다. 자기가 다니고 싶은 고등학교를 둘러보고 와서 품평을 했다. 하루는 퇴근 무렵에 된장찌개를 끓여놨다고 전화를 해왔다. 아이는 아빠와 이렇게도 지낼 수 있어, 하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아이와 한 침대에 누워 밤 깊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모르는 아이가 곁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건 선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 듯싶었다. 그러면서 혼자 남게 될 아내가 걱정되었다. 아내는 친구들에게 무슨 복이냐며 농담을 듣겠지만, 빈 둥지에 남겨진 듯 한동안 허전할 것이다. 

 

 

신이 작가를 세상에 보낸 까닭을 알겠습니다. 이 짧은 글로도 봄을 맞는 누군가(특히 첫 번째 독자로 그의 글을 읽은 오늘의 저!)의 마음을 느즈러지게 만드니까요. 둥지를 틀고 떠나는 까치 이야기로 쌉쌀하고도 들척지근한 부모·자식 간, 부부지간의 일을 풀어내는 것은 단연코 작가만 할 수 있을 테고요. 소설가 전성태는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산문집 <세상의 큰형들> <기타 등등의 문학> 등을 펴냈습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글 전성태(소설가)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