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23년 1월 신나게 사는 법

또 냄비를 바짝 태우고 말았습니다. 쩝! 

 

“30분 있다 알람 해줘.” 알람이 울렸을 때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 말하면서 스마트폰을 끄고 바로 일어서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들짝 놀라서 부엌으로 쫓아와 보니 냄비가 아주 새까맣게 타고 말았습니다. 하던 일에 그렇게나 집중을 했다니 — 이럴 때는 정신이 어디까지 갔다 오는 걸까, 어디쯤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 있는가 보다, 정신은 거기까지 가 있다 오는 게다 — 이런 생각을 해보는 일요일입니다. 

 

명상을 할 때 생각을 버리라고 합니다. 생각의 끈을 놓아주지 않으면 뇌와 모든 근육을 옥죄어 제 할 일을 할 수 없게 한답니다. 우리의 생각을 좇아, 매사에 즉각 대응해 바로 싸울 수 있는 태세의 몸을 풀어주기 위해 빈 마음 상태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도 다른 관점으로 돌아볼 여지 없이 꽉 차 있는 어리석은 분별심으로 아옹다옹하느라 정작 완전한 자신을 만나지 못한다고, 명상은 결국 자기를 만나는 시공간으로 떠나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버릴 수 있나 하는 반항심과 의구심이 이제는 저의 어리석음인 줄 알겠습니다. 이런 것이야 말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불교에서도 분별심을 내려놓으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조금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퀸시 존스, 그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거치고 열네 살부터 레이 찰스와 다닌 지방 공연을 시작으로 크게 성공한 미국의 흑인 뮤지션이며 음악 프로듀서입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가끔 본 것은 총, 시체, 오가는 돈다발, 갱이었고, 열한 살에야 백인을 처음 볼 정도로 가난하고 후진 마을에서, 갱이 되는 것만이 잘되는 길이라 생각되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친구들과 상점에서 뭘 훔치다 들켜서 여러 방면으로 도망가 흩어졌을 때 그가 숨어 들어간 공간에 피아노가 있었답니다. 처음 본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보는 순간, 온몸으로 멋진 소리가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순간 자기가 도망 중이라는 사실도 잊을 만큼 강력한 이끌림으로 음악이 자기 인생의 전부가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후에 신이 거기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답니다. 

 

그가 트럼펫 명연주자가 되어 프랑스에 갔을 때 만난 어느 선생의 설명이 그를 작곡까지 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은 일곱 개의 흰 건반과 다섯 개의 검은 건반으로 이루어진 12음계로 만들어졌고, 베토벤부터 모든 뮤지션이 그 음계 안에서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을 듣습니다. 당연한 이 원리에 새삼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자신감을 얻고 그는 수많은 곡을 썼으며, 마이클 잭슨도 키웠습니다. 솔부터 스윙, 재즈, 펑크, 보사노바, 로큰롤, 팝… 우리가 아는 모든 음악 장르에서 뛰어난 곡을 썼는데, 열두 개의 음계뿐이므로 그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이 그리로 인도하여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않는 페이지를 보여준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누구나 확실하게 아는 이 대명제에 관해 최근 들어서야 자꾸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몰두할 수 있는 대상과 시간이 있느냐가 그 답으로 떠오릅니다. 밥 먹으라고 불러대도 노는 데 열중한 아이의 즐거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정신 팔려 있을 때 우리는 ‘신나게’ 놀고 있다고 합니다. 나 말고 다른 힘, 어쩌면 신이 나와서 함께 있어주기에 나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몰입해 거기 오래 머무를 수 있거나, 짧은 시간을 영원처럼 느끼는 게 아닐까요? 이게 아인슈타인의 시간 원리인지, 최근 많은 사람이 말하는 메타버스적 구조인지요. 그런 시간을 만난 사람은 이미 남들 다 알 수 있게 성공을 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몰입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신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구나,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발행하면서 그런 분이 엄청 행복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느새 신나는 일이 줄어든 그냥 어른이 되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 독자 여러분! 어릴 적 신나는 일 같기야 하겠습니까만, 여러분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시공간을 자주 만드는 해가 되시기를…. 네? 건망증과는 달라요. 아니 달라야 해요. 물건이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일을 개발해서 그대 자신을 잃어버리라니까요. 신이 그대에게 깃드는 시간! 


추신: 그렇지만 냄비는 태우지 마셔요. 

 


<행복이 가득한 집> 발행인 이영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