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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봄날인데 좀 행복해지면 안 돼?

봄이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떠나버리겠지만. 이 계절은 정신과 의사에게 특별하다. 적은 일조량과 음산한 분위기로 우울과 근심 걱정이 가득하던 진료실에도 따스함과 웃음이 번져간다. 그간의 불행을 만회하려는 듯, 행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행복은 모두에게 다르다. 금수저가 못 되어 신세 한탄만 하는 우울증 젊은이는 올봄에는 SNS에서 본 근사한 차를 몰고, 모델 같은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에 가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팬데믹 이후 직원들 월급과 임대료 걱정으로 공황장애에 시달리던 한식집 사장님은 맛집으로 입소문 자자하던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행복해지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강의실 의자에 몇 번 앉아보지도 않았는데, 등록금을 또 내야 한다고 투덜거리면서 다음 학기에는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너무 행복할 것이라는 ADHD 환자는 밝게 웃는다. 그러고는 모두 꿈꾼다. 행복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영원하고 완벽한 행복’을 이루고야 말겠다고.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남보다 잘나 보이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효도를 하면 만족감, 자부심, 기쁨은 얻을 수 있다. 그러면 행복한 것일까? 행복학자들은 “행복이란 즐거움과 의미가 공전하는 주관적 감정 상태”라고 정의한다. 

 

‘즐거움’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오랜 시간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즐거움만을 추구한다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마약 중독자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의미’만 추구한다면, 이 또한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즐거움 없이 의미만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 복잡한 것은 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라는 것에 있다. 주관적이란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행복은 각자 느끼면 그만이란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많이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불안, 우울, 분노, 하물며 무감동까지 ‘감정’이란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속성이다.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 행복의 본성인 셈이다. 그리고 감정은 휘발성이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사랑처럼 행복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안타깝지만 ‘영원하고 완벽한 행복’은 없다.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행복이라면, 행복 네 번에 불행 한 번 정도라고 한다. 혹시 이 좋은 봄날에도 불행하다 느낀다면, 곧 다가올 5분의 4만큼의 행복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보면 어떨까. 

 

이제 행복해질 때도 좀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팬데믹이 여전히 우릴 놓아주지 않는 봄날. 즐거움, 의미, 주관적 감정이라는 복잡한 얼개로 걸러봐야 할 행복에 대해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떠난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서기도 한 천생 상담가입니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한 수백 편의 글을 썼습니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습니다.

 


글 김진세(정신과 전문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