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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성공과 실패 사이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내가 원시시대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면 가장 먼저 사자 밥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적응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한 세계적 부호 워런 버핏의 말이다. 그는 자신이 막대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타고난 재능이 시대를 잘 만난 행운 때문이라 생각했다. 괴팍하고 독선적이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골방에서 ‘덕후질’이나 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됐을지 모른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을 누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삶은 쳇바퀴 같은 평범한 시간 속을 헛돌다, 자기 연민과 함께 사라진다.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능력자들은 부와 명예를 거의 독차지한다. 낙오한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을 선망하며, 성공담을 열심히 곱씹고 내일을 위해 투지를 다진다. 하지만 모두가 고루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워런 버핏의 고백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공은 대체로 행운에 힘입은 결과다. 성공을 위해선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므로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재능 있는 사람은 신의 주사위 놀이에 운 좋게 당첨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재승박덕’하지 않게 겸손해야 한다. 재능이 없다면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노력은 사회가 권하는 가장 큰 미덕이다. 재능보다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을 사회는 더 높게 쳐준다. 게으른 사람은 성실한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그게 이 사회의 암묵적 이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력조차도 운 좋게 주어지는 자원이다. 노력은 성취 동기의 결과물인데, 성취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가장 일찍 회사에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회사 가는 게 매일 아침 아이가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레고 즐거웠단다. 그러니 새벽 4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월요병을 이해할 리 없으며, 9시 출근 시간도 못 맞춰 허둥대는 직원들을 너그럽게 대했을 리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정주영 회장은 자기희생적 노력을 처절하게 기울인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잠 없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에 ‘워커홀릭’이었을 뿐이다.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 있다. 게으르고 평범하기 그지없던 학생이 고2 때 중간고사 한번 잘 치는 바람에 인생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내게 조금도 관심 없던 선생들이 앞다퉈 “이주엽이 누구냐?”며 날 찾기 시작했다. 내게 쏟아진 그 황홀한 관심을 잃을까 두렵던 나는 떠밀리듯 ‘열공’했고,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전에 없던 성취 동기가 너무도 우연히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성취 동기조차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찾아오기도, 또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노력의 결과만 절대시하면 성공에 의한 사회적 위계는 폭력적인 것으로 변한다. 지금 성공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란다. 지금의 자리는 당신이 잘나서 올라간 게 아니라, 남들보다 운이 좀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기를. 시대와 환경이 당신의 재능과 노력을 선순환시키는 그 드문 행운을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성공을 오롯이 개인화해서, 좌절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우쭐대선 안 된다. 성공을 선망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란다. 당신이 못나서 성공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번 생이 조금 불운했을 뿐이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그들 성공한 사람들도 없다. 그러므로 성공을 부러워하느라, 나를 타자화해선 안 된다. 평범하거나 혹은 남루하더라도 당당하길 바란다. 나의 삶은 일회적이며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삶은 허비되기 시작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워런 버핏처럼 자신이 얻은 경제적 대가가 운 좋게 얻은 사회적 결과물임을 알고, 조금이라도 돌려주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행운을 누린 사람이 불운한 처지에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은 선의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다. 그래서 행운과 불운 사이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인간은 우연의 난폭함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성공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그렇기에 모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성공’이 아닐 겁니다. 작사가이자 음반 제작자인 이주엽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행운과 불운이라고 말합니다.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담은 이 글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물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평범하거나 남루할지라도 당당하기를! 가수 최백호가 부른 ‘길 위에서’의 가슴 먹먹한 가사를 쓴 작사가 이주엽은 14년간 한국일보 편집 기자로 일하다 음반 기획사 JNH뮤직을 설립해 말로, 박주원, 전제덕, 권진원 등 존재감 뚜렷한 음악가의 음반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필력으로 가요사에 남을 명곡을 소개하는 ‘이주엽의 이 노래를 듣다가’라는 글을 신문에 연재하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