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09월 정말 고백합니다 (이영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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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잔인한 황제 ‘네로’조차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했을 정도였다는 데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역사 다큐멘터리였는데 그렇게 말하는 해설에 현장감을 더하려고 당시의 네로 분장을 한배우가 두루마리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것을 클로즈업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로마군의 침략을 받은 그 지역은 땅을 몇 미터만 파고 내려가면 어김없이 불에 탄 나무와 회색 잿더미층이 드러나 마치 지층처럼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실제로 땅을 파헤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얼마나 싸움이 처절했었는가를 보여주는 여실한 증거라고 하더군요. 로마군이 그곳을 쳐들어왔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다른 곳과 달리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여성들까지, 아니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항을 했으며, 그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심했으면….’ 그다음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라면 모두 전사가 되어 얼굴에 험상궂은 칠을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공격에 맞대항을 했습니다. 이들은 마을의 모든 농기구에 나누어 타고 로마군 앞의 최전선에서 저돌적인 제스처에 포효를 지르면서 빠르게 돌아다니며 공격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스스로를 용맹스럽게 부추겼을 뿐 아니라 상대를 위협하는 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로마군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남다른 힘에 눌려 공격 첫날 놀랄 만큼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 전이기 때문이라거나 지리적인 미숙함 때문이려니, 또는 이럴 리가 없을 텐데 했답니다.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공격을 했지만, 저들의 함성과 협심에는 이상하리만치 힘이 붙고 점점 세어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으며, 로마군은 또다시 제법 심각한 희생자를 세어야 했습니다. 로마군이 아무리 훈련이 잘되고 최신 무기를 지닌 최정예 부대로 연승을 해왔다고 해도 이쯤 되니 워낙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 해외 원정의 막바지라 지친 탓도 있어, 굽힐 줄 모르는 용맹스러운 저항에는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칫하면 모두를 몰살시킬지도 모를 것 같은 위기감에 로마군의 지휘관은 더욱 거칠게 싸움을 명령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마치 온 동네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보려는 것처럼 뭉치더니 드디어 여자들까지 싸움터에 나섰습니다. 여자들은 그냥 돌이나 나르는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구잡이이기는 했지만 정말 남자 전사들과 똑같이 곡괭이와 칼을 적에게 휘두르면서 전쟁터의 한가운데로 나선 것입니다. 그 옛날의 영화로운 색상으로 완전무장한 로마군과 마치 오페라의 집시들을 연상시키는 민중들의 찢어진 평상복의 대비는 심지어 아름답기조차 했습니다. 화면은 거의 고전 명화 같았습니다. 어쨌든 전사로 나선 여자들은 남자들과 섞여 똑같이 힘을 보태고, 보다 더 높은 톤으로 괴성을 함께 지르면서 망설임 없이 그대로 로마군의 적진 깊숙이 돌진하였습니다. 이렇게 여자들까지 나서서 행동하는 용기와 휘두르는 무기로부터 튀는 피를 본 사람들이 보이는 결집은 대단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쯤에서는 흔히 ‘마을이나 조국을 지키려는 열정과 합심과 지극함으로 끝내 천하의 적을 몰아내고 말았다….’ 이런 구절로 끝이 나야 마땅했을 이 싸움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날 저녁에 꼭 해두어야 할 일을 미룬 채 계속되는 싸움의 결말을 더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쪽의 피해는 실로 대단히 컸습니다.
제대로 된 무기조차 지니지 못한 대항자들이 마구 쓰러져갔고, 침략군 측 피해도 대단했습니다. 정말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이었죠. 이쯤에서 잘생긴 로마군 지휘관의 고민에 찬 얼굴이 한참 비춰졌습니다. “그만 퇴각을 명령해야 할까? 여기가 끝인데… 로마로 돌아갈까? 그러면? 살았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겠지. 아니, 어쩌면 벌로써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지…. 군인이 전쟁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최상의 선택일 뿐이다. 죽더라도 이 전쟁터에서 죽는 쪽을 택하자…”라고 해설자를 통해 되뇝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치밀하게 작전을 짰습니다.
그들은 다음 날 살아 있는 모든 병사들을 삼각형 구도로 진군하게 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옷감 샘플을 자른 가위같이 들쭉날쭉한 삼각형 구도가 되도록 전열을 만들어 적을 향해 행군 명령을 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봅니다. 프로그램에서는 현대의 전쟁전략가 두 사람에게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전략적으로 볼 때 그 구도는 아주 대단한 지략이며 ‘그 행렬 자체가 또 하나의 완벽한 무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적은 숫자의 로마군은 찬란한 투구와 갑옷과 창을 지닌 아름다운 전투복으로, 삼각 형태를 유지한 단체의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그들이 목적한 대로 손으로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발로는 모든 것을 밟아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의가 남다른 상대와 싸움을 해야 했던 이 전쟁터에서도 그들은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만의 독특한 전략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피해만큼 로마군은 분풀이를 했습니다. 저들이 끝까지 항거한 힘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그 어느 곳보다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풀 한 포기까지 남김없이 모든 것을 완전히 불태우고 파괴시켰다고 합니다. 몇 날 며칠 동안이나 불이 꺼지지 않았다던가요? 이 두루마리 승전보를 받아 읽은 ‘네로’ 황제조차 지나치다고 했을 만큼, 그리고 아직도 검게 탄 그 땅의 흔적이 몇 미터 아래에 지층처럼 남아 있을 만큼 참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전쟁에서건 여전사가 그렇게까지 활약한 경우는 없었노라고 했지만 비석조차 남지 않은 그들의 노력은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중간 부분부터 보았던 터라 어느 지역의 전쟁 이야기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바라다본 이 역사 다큐멘터리가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마을 사람들이 이겼어야 했다고, 그렇게 열심히 져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역사에 대해 따지고 싶기도 하고요, 지키려고 한 마음보다 결국 몇 배의 대가를 치르고 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 너무나 불공평한 현실이 못내 저까지도 미안하고 서운한, 그런 감정이 남아 있는 거예요. 열심히는 하는데 방법이 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걸까, 세상 변한 것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옛날식의 정情만 남아 사태를 판단하며 센티맨털만 앞서는 것 아닐까, 제대로 훈련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은 과연 있었나, 신무기나 전략이라는 것을 만들거나 세워본 적은 있었나…. 여러 번의 전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멀리서, 그것도 적은 숫자로 온 로마군에 대해서는 왜 프로다움에 박수를 쳐주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며칠 전 본 그 다큐멘터리가 최근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내 고민의 주제와 아주 닮아 있기 때문에 더 집착하고 혼란스러워했던 것은 아닐까….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가 고칠 점만 생각한다고 했지요. 남 안되었다고 객관적이지 못한 쪽에만 눈을 두는 사람은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발행해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어떤 자세와 마음이었는지 돌아봅니다. 마구잡이지만 행복을 지키려고 전사처럼 무기가 될 만한 것이라면 다 휘두르며 내달려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지키겠다는 일념, 그럴 정도로 무엇을 더 채워야만 행복해진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치면 그 힘만큼, 아니 그보다 더 피폐해지는 줄 모르고, ‘열심히’라는 단어만으로 무조건 지키려 한 행위가 자칫 우리의 모든 일에서도 그저 아름답게 보이면서 때로는 ‘욕심’인 줄을 몰랐던가 봅니다. 행복을 만들고 지키려는 데도 훈련과 신무기와 전략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남보다 먼저 그것을 깨닫고 준비하면 승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행복을 위한 목적에 충실하도록 설계해보는 것에 몰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하다 싶은 것은 용의주도하게,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위엄도 있어 보이게, 또 여유가 있으면 값이 나가는 재료를 써도 좋겠지요. 그러나 짐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마음과 창의력이 열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문장을 어딘가에 새겨도 좋을 것입니다. 있을 것은 정말 꼭 차게 있도록 하고, 없을 것은 정말 확실하게 비우는 마음이 바로 행복 전략이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미지 좋은 잡지로 이만큼 성공할 수 있게 성원해주시고 구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 멋지십니다. 그 성원이 거름이 된 것이 분명해요. 지금부터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신무기, 훈련법, 전략을 만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념이 꽉 차 오르는 기분이 들어요. 정말 고백합니다. 더 좋은 내용을 만들 수 있겠어요. 아니, 대단한 기술이나 그런 것을 펼치겠다는 것이 아니고요, 방법으로써의 ‘행복’을 적어도 지난 20년보다는 성숙하게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소박한 의지인 것입니다. 즉, 행복을 전략으로 얻자는 것이지요. 자꾸 훈련하고 무기를 개발하면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알려드릴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신문에 난 시를 읽으셨나요? 유금이라는 옛 시인의 노래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이다.” 정말 정말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시예요. 그리고 세밀한 관찰이고. 이제 이 시처럼 세상에 비웃어야 할 대상이란 없으며, 서로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행복할 권리이고, 내게 오로지 충실할 수 있는 기술 익히는데 몰입할 수 있는, 그래서 질투할 시간조차 없는, 이런 신념이 꽉 차오를 수 있도록 마음 훈련하는 전략을 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