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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궁금해요 <김영헌: 프리퀀시>
디지털리티를 품은 21세기적 ‘신회화(new painting)’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화가 김영헌. 뜻밖에도 인터뷰에서 그는 레코드판에 새겨진 소릿골,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으로 바라본 우주, 휘어진 공간과 시간, 은하의 소용돌이 등을 이야기했다.

충남 논산 출신인 김영헌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영국 런던 예술대학교 첼시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1990년대에는 동물의 날고기로 만든 인체 형상이나 실험용 쥐를 사용한 설치 작품으로 미술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후 영국에서 수학하며 회화로 방향을 바꿨고 프랑스와 독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2020년에는 하인두미술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뉴욕·프랑스·홍콩을 주무대로 작업 중이며, 지난 2022년 학고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김영헌의 작품은 리움미술관(서울), 자하미술관(서울), 성곡미술관(서울) 등에 소장돼 있다.
“피라미들이 색동 찌를 건드리고 갔다. 고요하던 늪에 저녁 바람이 불자 물결에 비친 하늘이 천천히 밀려왔다. (중략) 열세 살 뇌의 위쪽이 파문을 따라 스르르 움직였다.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나 캔버스 앞에 선 나는 한 마리 피라미처럼 파문 속을 유영한다.”
열세 살, 홀로 낚시하던 날을 기록한 작가 노트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그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기에 머릿속에 깃든 물결무늬를 오랜 시간 뒤 그림으로까지 연결한 걸까요?
어린 시절에 시간과 공간, 물질로 구성된 자연과 맞닥뜨리는 강렬한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했을 겁니다. 그리고 물 가까이 앉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 종일 찌를 쳐다보면 허기도 들고,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에 어지럼증을 느꼈겠죠. 실제로 뇌가 물결처럼 움직일 리 만무하지만, 밀려오는 물결을 따라 내 머릿속이 스르르 움직이던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때 내가 특별한 감각과 지각을 지닌 조숙한 아이였다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을 잊지 않은 채 성장한 사람’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어릴 적의 나를 만난다면 ‘꼭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하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물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어요. 2009년부터 선보인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연작에 대해 많은 이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틈, 균열, 결합’으로 설명해요. 물결무늬 같은 자유 파형과 기하학적 파형이 섞여 있어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그림이 이를 뛰어넘는 ‘근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요. 선생님이 찾은 우주와 세계의 본질, ‘파동이자 리듬’이라는 본질을 담고 있다고요. 그래서 전시명도 ‘Frequency(진동수, 주파수)’이고요.
제 그림 속 줄무늬는 LP 음반의 소릿골, 아날로그 TV 화면의 줄무늬, 나선팔 형상의 은하가 내뿜는 별의 파장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알고 보면 태풍의 위성사진에도, 돌을 던지면 나타나는 물결 무늬에도, 세면대 구멍으로 빨려드는 물에도 회전과 리듬이 있죠. 우리는 음의 파동을 통해 소통합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도 결국 매체에 기록된 파장을 통해 작곡가와 연주가의 감정과 음악적 사유, 서정성을 전달받는 거죠. 또 우리는 빛의 파장으로 색을 느끼고, 입자로 빛의 따스한 느낌을 맞이합니다. 우주는 작은 입자가 뭉치고 흩어지면서 만들어내는 파장이고, 끊임없는 리듬이니까요. 이렇듯 우주가 파장과 리듬의 프랙털 구조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왔어요.

저는 첨단 물리학이나 우주과학이 밝혀내는 사실에 눈과 귀를 열어놓은 예술가입니다. 추측과 믿음에 근거한 ‘과거의 세계관’은 천체물리학자의 연구를 통해 계속 리셋되고 있어요. 또한 디지털 정보 체계의 연결로 인류가 지니게 된 집단 두뇌, 가상의 삶 등 세상은 유사 이래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요. 최고조로 고양된 인텔리전트와 감수성이 작용하는 곳이 음악·미술·문학 등의 예술 영역이라 하면, 예술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초래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것을 미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고요.

들을수록 심오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연작을 들여다보면 공간 또한 ‘얽힌 고리’ 같다는 양자론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의 그림 속 형상도, 그 형상을 이루는 물감이나 캔버스도 사실 무생물이 아니라 입자가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우리와 작용하는 존재로 보이고요. 보는 사람도 매 순간 변화하고 끝없이 부유하며 진동하는 듯합니다.
제 작업을 아주 잘 이해한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완성되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작품은 내부에 언어를 품은 하나의 개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개체 앞에 서면 창작자인 저도 그림 속에 숨은 코드를 따라가는 감상자가 됩니다. 감상자가 작품의 시각언어를 읽기 시작하면 그의 인텔리전트가 작동합니다. 단순한 정서적 느낌일 수도, 시각언어에서 촉발된 지적 경험일 수도, 감정과 감각을 전율시키는 활동일 수도 있어요. 마크 로스코나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텔리전트가 그림 속 코드를 느끼게 되고, 코드가 하나씩 풀리면서 작품 속 감수성과 상상력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내 작품은 무엇을 전하는 걸까?’ 늘 생각합니다. 제게 회화는 미술의 역사가 찾아낸 시각언어를 이용해, 심리적·지적 작용, 감각 그리고 상상력을 실어 옮기는 수레 같은 존재예요. 물감에 고착되어 있지만 움직이고, 우리 눈을 통해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는 운반 장치 같습니다. 제 작품은 혁필 줄무늬와 색면, 선과 얼룩, 점과 자국 등 순수 추상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요. 추상미술의 언어는 코드화되기 때문에 자신의 인텔리전트를 총동원해 작품의 인텔리전트와 연결하는 것이 제 작품을 감상하는 출발점이겠죠.


‘P23043-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P23043-Electronic Nostalgia’, 린넨에 유채, 100×80cm, 2023

마침 선생님의 회화를 설명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인 혁필 기법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시골 장터 등에서 가죽에 안료를 찍어 그리던 기법이라 하던데요. 선생님은 어떻게, 왜 혁필 기법을 받아들이게 된 건가요?
미술대학을 잘 마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저는 1990년대 중반, 스케치북에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설치 작업에만 몰두했어요. 자신만의 세계를 지닌 화가로 성장하려면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2000년 삼성에서 지원하는 파리예술공동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면서 한국을 떠난 후 4년의 파리 생활을 거쳤고, 다시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10년 동안 그만둔 회화를 다시 시작했죠.

골드스미스와 첼시 칼리지 대학원에서 작업할 때는 물감이 번지도록 넓은 붓으로 팔레트와 화면 위에서 혼합하는 방식을 썼어요. 점차 혁필에 가까운 느낌을 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가죽 붓에 잉크로 그리는 전통 혁필화에 비해 보통 붓에 유화를 사용한 방법으로는 그것을 구현하기 어려웠지만, 차츰 혁필보다 더 혁필 같은 느낌을 낼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실수나 우연을 통해 얻은 요소를 오히려 조장하거나 용인하며 제 기법으로 받아들였어요. 마치 물리학의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를 충돌시켜 존재하지 않던 원소를 발견해내듯, 작품 실험 과정에서 생긴 실수나 실험을 이어갔어요. 결과적으로, 수많은 실수와 실험 덕분에 오히려 그림이 변별성과 풍부한 색의 표현을 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한국 전시 <가상 풍경>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말 그대로 의식과 무의식이 충돌하는 가상공간으로 보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번 전시는 좀 더 우주적, 근원적 세계로 상승한 듯 보여요.
그사이 뉴욕과 파리, 홍콩에서 개최한 여섯 번의 개인전 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7년의 작품이 추상과 구상성의 경계에 있었다면, 2023년의 작품에는 형상이 사라지고 추상 언어만 남았죠. 붓의 크기도 커지고 구성도 심플해진 점도 있고요. 음악에 견주자면 가사를 포함한 교향악에서 소편성 악기의 선율만으로 구성한 실내악이나 소나타가 된 셈이죠.

제게 회화성의 의미는, 물질인 색과 붓과 나이프 그리고 캔버스 화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풍부함을 말합니다. 내 의지대로 완성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물감이라는 매질이 빚는 캔버스 위 풍부한 실수, 변화와 변주라는 자연의 근본 요소를 받아들입니다. 잘 녹음된 레코드가 먼지 잡음을 품고 있듯, 풍부한 아날로그적 요소를 시각 코드로 연결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회화의 원천이죠.

제임스 웹 망원경과 허블 망원경으로 더 자세히 바라본 태양계의 움직임이나 우주의 새로운 사실에 귀 기울이고, 짧은 생을 살다 가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 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2009년 몽골 초원에서 하늘에 모래같이 가득한 별을 만나고, 이제야 겨우 사람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디지털리티를 품은 회화를 선보이고 있지만, 이번 전시의 작가 노트를 읽다 보면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지점, 즉 ‘아날로그적 접촉’을 그리워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해도 덜 외로운 것은 음악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리밍을 통해 지구 저편의 라디오를 청취하고, 서버에 저장된 음악을 찾아 스마트폰의 버튼을 클릭하기도 하지만, 저는 음반을 뒤집고 바늘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노동을 통해 음악 듣는 걸 더 즐깁니다. 레코드판에 새겨진 신호를 물리적인 레코드 바늘로 읽어들여 증폭하는 행위는 손가락으로 클릭해 듣는 디지털 음악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 있어요. 평생을 음악으로 살다 간 천재에게, 그리고 평생 연마한 악기로 재현해낸 연주자에게 바치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죠. 아날로그 기기인 턴테이블을 회전시키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상상력이 시간을 뛰어넘어 파동을 타고 제게 전달되는 순간을 즐깁니다. 편리한 디지털 기기도 사용자에게 아날로그적 접촉감을 주기 위해 거꾸로 햅틱haptic 기능이나 물리적 다이얼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리운 사람이라면 가상공간의 만남보다 아날로그적 만남이 훨씬 기쁘기도 할 것입니다.


<김영헌: 프리퀀시>
기간 2023년 12월 20일부터 1월 20일까지
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50 학고재 본관
출품작 회화 22점
문의 02-720-1524~6


자료 제공 학고재

글 최혜경 기자 | 인물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