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
미술 잡지도 아니면서 표지에 미술 작품을, 그것도 2002년 9월호부터 2023년 8월호까지 21년 동안 담아온 이유는 분명합니다.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커집니다’라는 <행복>의 생각, 그 시작점이 ‘꽃’, 종지부가 ‘그림’이기 때문이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테리어·건축·가구·푸드·패션·뷰티·문화·자동차·테크 등은 우리가 잡지 안에서 성심껏 보여드리겠으니, 독자들께선 표지에서 그 온점·고리점·물음표·느낌표 같은 예술 작품을 맘껏 감상하시라, 기분 나시면 <행복>을 작품 액자 걸듯 집 안에 놓아보시라”는 바람이었습니다.
표지부동?
1987년 9월에 창간했으니, 그동안 <행복> 표지가 왜 안 바뀌었겠습니까? 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이 싹트던 시기의 창간호부터 1989년 말까지는 ‘집’이,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는 트렌드가 강세이던 1990년대 초에는 ‘정물 사진’이, 사람이 키워드로 떠오른 1990년대 후반부터는 ‘가족’ ‘유명인’이 등장했으니까요. 이후 21년 동안 미술작품이 차지하던 <행복> 표지는 2023년 9월, AI 아티스트 헤더림이 구현한 가상의 공간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말 그대로 AI와 사람이 합세한 표지죠.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에 작가가 묘사하고 싶은 풍경의 텍스트 입력값(이번 <행복> 표지에 넣은 키워드는 #주거공간 #가드닝 #조명 #아트 #하이엔드 #미래적인 등. 9월호 창간 특집 ‘2023 주거공간’과 연결된 키워드)을 넣으면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한다는군요. 이후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작가가 입력값을 미세하게 바꿔주면서 몇십, 몇백 번의 생성 과정을 거친답니다. 헤더림 작가는 이게 바로 인공지능과 상호소통하는 시간이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인공지능과 작가가 함께 바라본 ‘예술작품’이라 말합니다. 카이스트 공대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공부한 후 ‘이미지 생성 모델을 활용한 스페큘레이티브 Speculative 아트’를 선보이는 헤더림 작가의 작업은 앞으로 <행복> 표지를 통해 좀더 만날 수 있습니다.
<행복> 표지는 門이 아니라 窓입니다
잡지 안에서 놀던 인테리어·건축·가구·푸드·패션·뷰티·문화·자동차·테크 등을 표지로 끄집어내 미술작품과 만나게 해주려는 속셈입니다. 이제 그 구분이 필요 없는 세상이니까요. 그동안 <행복> 표지는 문이 아니라 창 같은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자부합니다. 문이 드러내놓는 출입, 공식적 소통이라면, 창은 좀 은근하면서도 사적이며 느긋한 드나듦이죠. 그래서 창은 늘 꿈, 미래 등과 동의어였고요. 앞으로 <행복> 표지에 등장할 ‘AI가 구현한 주거공간 아트’, 그것도 필시 문이 아니라 창을 타고 흘러드는 우아한 바람 한 줄기 같으리라 장담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표지 이미지 헤더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