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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운성 기꺼이 거짓말쟁이가 되기를 자처한 예술가
“77세 화가의 디지털 드로잉 도전”이라느니, “영국은 데이비드 호크니, 한국은 한운성”이라느니…. 5월 18일부터 31일까지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을 두고 이런 말이 오갔다. 수십 년 동안 아날로그 회화 작업에 천착해온 순수 미술 작가가 아이패드 드로잉 작품만으로 개인전을 연 사례는 호크니를 제외하면 드물기 때문일 터.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칠 뿐이다. “제발 ‘노화가의 아이패드 드로잉’ 운운하지 말고,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과연 아날로그적 회화 표현이 가능한가’를 좀 물어봐줘요.”

아이패드 드로잉 회화 30점을 전시한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 전시를 끝내고, 요즘엔 다시 캔버스 유화 작업에 몰두 중이다. 종이에 연필로 그릴 때, 붓을 캔버스 천에 대고 쓸어내릴 때 그들과 대화하는 맛을 비로소 느낀다고. 그는 “엄마 품에 돌아온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정면에 보이는 그림은 유화로 작업 중인 ‘양귀비’로 이번 개인전에서 아이패드 드로잉으로도 선보였다.

한운성 작가
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필라델피아 타일러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입니다. 1988년 문교부 해외 파견 교수로 롱비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사진 판화를, 2003년에는 Asem-Duo 펠로십으로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프랑스 신구상 회화를 연구했습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장, 아시아프 심사위원장, 이동훈미술상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2021~2022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 여덟 곳에 작품 6백여 점을 기증했습니다. 저서로 <판화세계> <환쟁이 송> <그림과 현실>(장소현 공저) 등이 있습니다.

일찍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한 예술에 대한 가장 오래된 ‘썰’을 한번 끄집어내볼까. “예술은 실재 (reality)가 아닌 가상(appearance)을 창조하지만 실재를 상기(anamnesis)시킨다”는 이야기 말이다. 서너 번쯤 찬찬히 읽어야 그 뜻이 와닿는 이 이야기의 핵심은 실재-가상, 부재-현전 같은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동굴 속 그림자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예술가, 기꺼이 거짓말쟁이 혹은 마술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은 한운성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그는 콜라 캔, 묶인 매듭, 벌레 먹은 과일, 시든 꽃, 여행지 풍경 같은 일상 사물을 ‘앞면’만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런데 그 안에 대량생산 체제, 정치 혼란, 남북 관계, 자연에 대적하는 문명처럼 우리가 처한 ‘현실 상황’이 고밀도의 은유로 담겨 있다. 앞서 말한 “예술은 실재가 아닌 가상을 창조하지만 실재를 상기시킨다”는 이야기가 이만큼 마침맞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 거짓말쟁이 혹은 마술사가 이번엔 아이패드 드로잉이라는 허상의 매체를 들고 나섰다. 클라우드 서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77세 화가가 건넨 디지털 회화, 그 가상의 세계가 두드리는 진실의 문!


디지털 풍경 사진을 아날로그 회화로 재편집한 ‘디지로그 풍경’ 연작 중 ‘휴지통-쁘띠 프랑스’. 건물의 외형만 남긴 채 주변을 지워 영화 세트장의 가벽이나 길거리 광고판 같은 형태로 그려냈다. iPad Drawing, 50×70cm, 2022.
1970년대엔 콜라 캔, 1980년대 초에는 문과 받침목,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매듭,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과일, 2000년대 이후론 꽃과 여행지 풍경을 주요 소재로 삼아 회화 작업을 이어오셨죠. 그러면서도 다른 매체의 표현 기법을 계속 실험해오셨잖아요.
1980년대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배운 사진제판 기술을 캔버스 위에서 실험해봤죠. 제록스 컬러복사기로 복제한 이미지를 작품에 사용한 건데, 이렇게 복제된 인물은 익명화된단 말이에요. 개인이 아닌 집단을 상징하는 거지. 대표적 예가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 희생당한 학생을 복제 이미지로 그린 ‘외출’이란 작품이에요. 인물이나 사건을 특정하기보다 한국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은유하기 위해 복제 기술을 써본 거죠. 1990년대 초엔 페인트 브러시라는 MS-도스 기초 프로그램으로 신문 삽화를 그렸어요. 이문열 씨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삽화를 페인트 브러시로 그렸는데, 말하자면 최초의 디지털 드로잉이지. 그때가 어도비 포토샵이 나오기도 전이고 286 컴퓨터, 386 컴퓨터 쓸 때니까 중간중간 톤이 안 나와서 도트로 표현하기도 했죠.

그런데 말이에요, 새로운 매체에 관심을 갖는 게 나한테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내가 계속 매체를 실험하는 이유는 그림으로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즉 현재 우리 상황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지. ‘회화의 본질’을 파고든다기보다 ‘현실 상황’을 파고든 거죠. 매체라는 게 시대마다 자꾸 달라지잖아요. 그렇다면 그 매체를 내가 끌어안아야지. 그림을 크게 보면요, 내용과 형식으로 돼 있다고. 나는 내용도, 형식도 우리가 사는 현실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사회적 상황을 상징하는 소재로 택한 것이 코카콜라 캔, 매듭, 과일, 꽃처럼 소소한 일상의 물체잖아요.
미술 평론가 오광수 선생이 그런 이야길 했던가? “한운성은 구체적 물체를 통해 현대사회의 리얼리티를 표현하려고 한다.” 뭐, 거대 담론으로 말할 필요가 있나요. 우리가 항상 부대끼는 일상 물건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가장 잘 이야기해주는데 말이지.


‘글로리아사’. iPad Drawing, 70×50cm, 2022.
이번에 선생님이 택한 새로운 매체는 아이패드였고, 전시 명부터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이었어요. 신문 기사들은 앞다퉈 “77세 화가의 디지털 도전”이란 헤드라인을 붙였고요.
사실 내가 뭘 바랐는지 알아요? 적어도 미술 전문 기자라고 하면 “칠십 먹은 노인네가 왜 갑자기 아이패드 그림이냐?”라고 묻는 대신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아날로그적 회화 표현이 가능할까?”를 물어봐주길 바랐다고. 그런데 전부 나이 얘기야. 이 사회가 나이에 맞춰 매체까지 정하려는 선입견에 갇혀 있단 말이지. 그거 예술가에겐 최대의 적이거든. ‘최소한 70대 화가는 점이나 선을 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나는 제일 싫어. 데이비드 호크니도 80세가 넘었는데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계속 활동하잖아요. 그 양반은 아이패드 출시한 지 석 달도 안 돼 첫 아이패드 드로잉을 완성했다잖아. 세상의 변화에 대한 그런 반응이 나에겐 그냥 자연스러운 거예요.

마셜 매클루언이 “The medium is the message(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매릴린 몬로의 초상을 찍어낼 때, 그 실크스크린이라는 매체가 모든 걸 함축해서 보여줬다는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이패드 드로잉은 내게도 언제고 한 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매체였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어쩌고 하는데 지금으로서 나는 그런 건 관심 없고,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하면서 그림도 많이 못 그렸잖아. 어지럽지만 않고 죽을 때까지 그림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만 확보되면 좋겠어. 나이하곤 아무 관계가 없다고.


경기도 용인의 작업실에서. 그는 한국의 현대 판화를 독자적 예술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작가다. 바로 작업실 2층이 그 판화 작업의 산증인.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한 계기가 건강상 이유 말고도 ‘다시 캔버스 앞에 서기 머쓱하다’란 감정 때문이었다고요.
내가 2021~2022년에 작품 대부분을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했어요. 친구들은 너무 빨리 기증한 거 아니냐고들 하던데, 주변을 좀 정리하고 뭔가 새로 생각해보는 여유를 갖고 싶었거든. 그런데 작품을 기증하고 나니,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낸 것 같더라고. 다 출가시켰는데 다시 캔버스 앞에 서는 게 늦둥이 맞는 것도 아니고, 뭔가 머쓱하더라고. 이제 좀 자유롭고 싶은데 언제 또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내나싶고. 그즈음에 어지럼증 때문에 작업실에 자주 못 나가면서 캔버스를 대체할 매체로 찾은 게 아이패드 드로잉이에요.

내 작업을 주제로 홍익대학교에서 석사 논문을 쓰던 맹소영이라는 대학원생이 내 ‘디지로그 풍경’ 연작을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작업하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권하더라고(‘디지로그 풍경’은 그가 찍은 디지털 풍경 사진을 아날로그 회화로 재편집한 연작으로, 풍경 속 건물의 외형만 남긴 채 주변을 지워 영화 세트장의 가벽이나 길거리 광고판같은 형태로 그려냈다. 단편적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허구성, 그것만으로 대상의 본질까지 파악하려는 현대인의 시각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그날부터 유튜브를 보며 독학했어요. 직접 해보니 아이패드 드로잉이라는 게 시공간 제약도 없고, 화구나 재료 준비하는 번거로움도 없더라고. 이미지 편집이나 수정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무한 복제까지 되지, 게다가 복제한 걸 내가 가지고 놀 수 있어요. 변주가 가능하다는 거야. 레이어를 여러 개 만든 다음 그걸 마지막에 합해버릴 수도 있고. 지금 우리 시대의 형식과 딱 들어맞는 매체더라고.


 “유튜브 보며 독학한 지 여섯 달쯤 지난 후 내가 그 세계를 정복하고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나온 작품이 ‘꽃’ 연작이에요.”
이번 전시를 본 많은 제자와 후배가 손 들고 반성하며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선생님이 디지털 드로잉으로 디테일뿐만 아니라 밸런스까지 완성했기 때문이라고요.

나는 예전에도 매체를 한번 바꾸면 그걸 꼭 정복했다고. 적당히 하면 적당한 그림밖에 안 나오거든. 이번에도 최대한 자세히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석 달 정도 목숨 걸고 아이패드 드로잉을 익혀가며 그린 첫 작품이 ‘광화문’이라는 ‘디지로그 풍경’ 연작이에요. 후배들을 불러놓고 이 정도로 그리면 되겠냐 물으니 “선배님, 사진처럼 그려서 뭘 하겠어요?” 그러더라고. 그들이 내 속마음을 몰랐던 거지. 나는 그렇게까지 그려본 후에 내 작업을 하고 싶었거든. 아이패드 드로잉을 시작한 지 6개월 후에 나온 작품이 ‘꽃(Flos)’ 연작이에요. 내가 그 세계를 정복하고 자유로워진 후 작업한 작품이지.

선생님이 듣고 싶었다는 질문입니다.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아날로그적 회화 표현이 가능하던가요?
뭐, 기술상으로는 비슷해지긴 해요. ‘디지로그 풍경’ 연작 중 ‘마르세유 풍경’이 있는데, 그건 캔버스에 그리면 한 1백20호 정도 되거든. 캔버스 작업할 땐 수백 번 캔버스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디테일과 전체 비율을 챙기는데, 아이패드 드로잉은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멀티 터치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도 정복이란 얘기가 나올 수 있지. 멀티 터치로 당겨서 디테일하게 그린 걸 조합할 때 필요한 게 비례 감각 같은 노하우거든. 그건 캔버스 앞에 오래 서 있던 사람이 가장 잘해내는 거잖아요.

내가 제자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파격’이에요. 미술사는 격을 파해온 역사거든. 그런데 기본을 정복하지 못하면 파격도 힘들어요. 서예를 예로 들자면 예서와 행서에서 중봉中鋒(붓 끝을 획의 가운데 두는 서법)을 마스터하지도 않고 초서의 편봉偏鋒으로 넘어가려는 것과 같지. 반대로 기본을 정복한 작가에겐 아이패드 드로잉으로도 아날로그적 회화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고.


영화 세트장처럼 인상적인 작업실. 벽에 건 작품은 우리나라에 더 이상 그릴 곤충이 남아 있지 않아 한 작품만 그리고 말았다는 그림이다.
화가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 작업은 계속될까요?
앞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날로그 세대인 건 확실하거든. 플라스틱 판에 전자 펜으로 긁어댈 때 감촉이 내겐 영 아니야. 종이에 연필로 그릴 때, 붓을 캔버스 천에 대고 쓸어내릴 때 터치감이라는 게 있거든. 그런데 아이패드하곤 그 대화라는 게 없어. 요즘엔 다시 캔버스에 유화 작업을 하는데, 엄마 품에 돌아온 것 같아. 생각해봐요, 우리가 악수할 때 그 사람이 나한테 가진 감정이 호감인가 아닌가 딱 느끼잖아. 그렇다면 AI하고 악수할 땐 어떨까? 근데 말이야,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내 손주 세대가 40~50대 중년이 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그건 그들만 알 수 있는 일이겠지.

곧 붉은 맨드라미 피어나는 7월이에요. 7월호 <행복> 표지 작품이기도 한 ‘맨드라미’ 이야기를 해주세요
65세까지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70세가 되니까 뭔가 꺾이는 것 같은 거지. 작업실 근처에 호박꽃·나리꽃·능소화 같은 꽃들이 피고 지는데, 말 그대로 화무십일홍이거든. 피고 지는 짧은 생의 순간과 죽음의 섭리가 거기 다 들어 있는 거야. 그때부터 꽃을 관찰하기 시작한 거지. 내 ‘꽃’ 연작은 모두 낙화이고, ‘과일’ 연작처럼 모두 정면을 응시해요. 암술, 수술까지 다 드러나요. 생명 자체를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차원 평면 위에서 내가 편집한 개념적 세계거든.

그런데 이 ‘맨드라미’ 그림부터 좀 달라요. 벌판에 맨드라미가 늘어지게 피었는데, 제멋대로 피는 게 원래 제 모습이더라고. 그리고 맨드라미는 정면이 없어요. 그동안 꽃을 관찰의 대상으로 그렸다면 이젠 그것도 걷어치우고 자유롭게 그리고 싶더라고. 그래서 디테일한 것도 다 뭉개고, 디지털 브러시로 가장 회화적인 맛을 내면서 그렸어요. 이게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이 됐고요.


작품 문의 이화익갤러리(02-730-7818)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