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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유혜영 토끼야, 검은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해, <행복>의 첫 표지 그림은 화가 유혜영이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린 토끼다.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 토끼처럼, 불로불사의 상징물인 달 속의 옥토끼처럼 생명으로 다글대는 그 그림이 토끼해를 찬연하게 밝히고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 작업실에서 촬영한 사진. 매년 생일이 있는 달, 자신을 촬영한다. 사진_누리아 빌라 Nuria Vila
유혜영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바르셀로나 엘리사바 디자인 학교에서 멀티미디어와 인터랙티브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엘리사바에서 7년간 강의했다. 카달루냐 신문 의 전속 일러스트레이터로 9년 동안 일했다. 서울·바르셀로나·마드리드·상하이·밀라노·베를린 등지에서 수많은 전시를 열었고, 전시 커미셔너로서 Sonarsound Seoul, design MADE,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현대컬처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협력했다.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디자인하우스), <엄마 나이 네 살>(디자인하우스), <스페인 디자인 여행>(안그라픽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홍익출판사) 등을 출간했고, 바르셀로나에서 독립 출판사 HYE&NU를 열고 을 출판했다.
짧은 앞다리와 긴 뒷다리로 누구보다 재빨리 비탈길을 오르는 토끼야말로 고난의 시기에 생명력이 강해지는 약자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저 아래쪽, 작은 초식동물로 태어나 일생을 쫓기는 자로 살지만 큰 귀, 밝은 눈, 민첩한 다리로 누구보다 날쌔게 들판을 누빈다. 우리 조상들은 토끼를 영험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꼽았다. 조선 시대 민화 ‘쌍토도’에 두 마리 토끼를 정답게 그리는 걸 즐기기도 했다.

우리 민족만 토끼를 유달리 본 것은 아니며, 서양의 고전 명화 속에도 토끼가 자주 등장했다. 피에로디 코시모, 베첼리오 티치아노 등 르네상스 시대 화가의 그림 속 에서 토끼는 ‘성적 과잉’ ‘부활’의 메타포로 그려졌다. 토끼를 상징물로서가 아니라 피사체 자체로 집중한 알브레히트 뒤러 등도 있었다. 큰 귀, 근육이 내비치는 체형, 섬세한 모질이 화가들의 창작 욕구를 부추긴 것. 요셉 보이스가 작품에서 자신과 동일시한 동물도 토끼다. 그리고 <행복> 1월호 표지 작품인 유혜영 작가의 ‘봄을 기다려’.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그의 그림 속에 토끼가 빠질 리 없다. 게다가 그 그림 속 토끼는 인생의 들판을 내달리는 청춘의 토끼다. 총명하고 구김살 없는 이 ‘현실파 동물’이 디지털 드로잉으로 현현했다. 그동안 그래픽, 일러스트, 회화를 넘나들며 태양전지에 플러그를 꽂은 것처럼 맹렬히 그려온 그가 태블릿 드로잉으로 일필휘지한 토끼!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비죽 올라가게 하는 저 토끼!


인쇄한 그림을 들고 있는 유혜영 작가. 그림은 ‘올라해HolaHye’라는 작가명으로 디지털 초상화 시리즈를 선보이며 그린 첫 자화상이다. 디지털 드로잉, 1543×2183px, JPG.
화가 유혜영에게 토끼는 어떤 의미의 동물인가요?
어릴 적부터 별과 우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별이 잘 보이는 지방 도시에서 자라 밤마다 하늘을 살폈죠. 지금도 그래요. 오늘(12월 16일) 뜬 달이 무슨 달인지 아세요? 하현달이에요. 왜 달 이야기를 하는지 아시겠죠? ‘달에 살던 토끼는 어디로 갔나? 무얼 하며 지내나?’라고 생각하던 어린이가 자라 그림에 토끼를 그려 넣었다고 생각하면 돼요. 제게 토끼는 신화이고 우주인이며 외계인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제 남편(스페인 남자 엑토르) 애칭이 토끼입니다. 그래서 결혼 후 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 속에는 늘 토끼, 바로 주인공의 대화 상대가 등장하죠.

토끼는 십이지의 동물 나라에서 동쪽을 차지한, 청춘의 상징이래요. 왠지 유혜영 작가의 그림과 ‘청춘’은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도 산울림의 ‘청춘’이에요. 영원히 피터팬이 되고 싶은 제 마음이 무의식을 통해 표현되었나 봐요.


NFT 아트 작품 중 하나인 ‘서울 사는 검은 호랑이’, 4096×2304px, JPG.
‘봄을 기다려’ 속 토끼는 어떤 녀석인가요?
허리를 곧추세운 토끼예요. 봄날 제일 먼저 굴에서 나와 허리를 쭉 펴고 봄 내음을 맡는 모습을 연상하며 그렸어요. 아이팟 MAC에 그린 디지털 작품이지만 판화로 찍은 듯한 느낌을 표현했답니다. 너무 어둡지 않은 검은색을 표현하고 싶었고, 판화 테크닉을 사용해 구불구불한 손맛을 내고 싶었죠. 검은 토끼 몸 안에 꽃과 식물, 그리고 잎을 문 비둘기도 그려 넣었어요. 자연물 같은 모티프는 최근 작업하는 ‘희망과 기도’에 맞는 소재이기도 해요. 보는 이에게 ‘생명력이 움트고 자란다’는 희망의 이미지를 전하고자 했죠.

이전 작품도 흥미로워요. 유튜브 채널 ‘스로언(스페인 로컬 언니)’의 영상 중 ‘작업실에서 봄맞이 그림 정리’ 편에 30년 동안의 작품이 등장하던데요. 탱화 같기도, 민화 같기도, 인도나 아프리카 그림 같기도 하더라고요. 무국적, 무시대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제가 1998년에 스페인 엘리사바 디자인 학교에 유학 가서 여태껏 살고 있으니 20년이 넘었네요(그는 과제를 항상 두 개씩 제출하는 열정을 보인 끝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고, 졸업 후 유럽의 대표적 신문 디자인 회사 SOL90에 입사해 전속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다. 스페인에 유학생 비자로 들어가 취업 비자로 변경한 한국인 1호이기도하다). 그사이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쌓인 기억의 시각적 흔적이라 보면 돼요. 그림은 제게 소통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의 조각을 얼려두는 장치 같은 거예요. 앞으로도 일상과 여행 이야기가 그림의 큰 주제로 계속 보일 거예요. 제가 살고 싶은 삶의 순간, 과거 혹은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시간의 조각을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래전 그림을 젯소로 지우고 그린 자화상 시리즈 중 ‘모자 쓴 나, 자화상’, 아크릴과 먹, 33.4×24.2cm, 2022.
‘도시’ 시리즈, ‘나는 이상한 노랑’ 시리즈, ‘해피-만화 같은 민화’ 시리즈, ‘핑퐁’ 시리즈….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고요, 스스로 “그래픽, 일러스트, 회화까지 안 건드린 장르가 없다”라고 할 정도잖아요. 그 힘은 어디서 오나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안 그린 순간이 없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이유나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무의식중에 계속 그려왔어요. 일기장 안에 푸른 강아지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대화할 정도로 제 그림 속 상상의 친구들은 매우 구체적 형태와 성격, 특별한 이름을 지니고 있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처럼 제게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이자 방식입니다. 소통을 하려니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던 것 아닐까요? 속삭이기도, 아우성치기도하죠. “저 여기 있어요!”라며.


디지털 드로잉 작업 ‘HelloYellow_ Frida’, 5500×5500px, JPG. foundation.app/@HolaHye
요즘엔 NFT 아트까지 시도했잖아요. KNFT 전시도 열었고요. NFT 아트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이에요. 궁금하면 바로 공부하고 실행해보고 선택하는 힘과 욕구가 강하죠. 그건 제가 삶에 대응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그런 이유로 2022년에 NFT를 시작했는데 푹 빠져들었어요. NFT에 대한 오해가 많지만 저는 작가 입장으로만 말할게요. 지금까지 모든 종류의 그림을 보호하는 장치가 별로 없었어요. 전시되거나, 매체를 통해 인쇄화되지 않은 작품을 인증하고 보호하는 장치가 없었죠. 그런데 NFT로 만든 작품 혹은 작업은 일정 플랫폼을 통해 올리기만 하면 블록체인이란 일련번호가 생겨나요. 그 번호는 ‘내가 창작자’란 표식이 되어주죠.

현재 제게 NFT 세상은 디지털 작품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공간이에요. 다음 단계로 그 세상에서 경제적 활동이 발생할 텐데, 그 과정에서 능동적 주체는 작가 자신이 됩니다. 이 점이 매력적이죠. 그리고 서로 지지해주는 커뮤니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제가 속한 KNFT는 물론이고, 여타의 다양한 커뮤니티가 굉장히 힘 있고 재미있어요. 아직 시장이 불안정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UFO를 기다리며 하늘을 보는 행위처럼 NFT는 상상 이상의 세상으로 저를 데려가줄 거라고 생각해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NFT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으니까요.



지중해 시골 마을 카탈루냐에 꾸린 작업실. 골동품·식물·그림이 어우러진 곳으로,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장소로 주로 사용한다.
최근 작업도 흥미로워요. 10년, 20년 전에 그린 그림(주로 초상화)을 젯소로 지우고 덧그리는 작업이더라고요. 결혼 후 그린 남편 엑토르의 초상을 지우고 추상적 터치를 더한 작품도 있던데. 왜 이런 작업을 하는 거죠?
그림을 꾸준히 그려온 덕분에 집에 ‘예쁜 쓰레기들’이 엄청나요. 하하. 아이가 태어난 후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계속 재료를 사서 그림을 그리고 쌓아두는 행위가 말이죠.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게 생겨난 거죠. 고흐처럼 그림을 태워버릴 수는 없고(남편이 반대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제 오래된 그림을 지우고 새로 그리는 작업이에요. 점점 더 많은 오래된 작품이 사라질 예정이고 다시 태어날 거예요.

유튜브 영상에서 “손, 어깨, 목을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면서 선과 색이 강조된 추상으로 작업이 변하고 있다”고 말씀하던데요, 현재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무언가요?
김점선 선생님이 오십견으로 붓을 들 수 없자 펜 마우스로 그림을 그렸다는 기사를 읽고 나도 그런 날이 오면 다른 도구를 이용해 계속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생각했죠. 그건 너무나 멋진 거예요. 도구 혹은 장이 바뀌어도 작가의 정 체성과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오래된 그림을 지워가면서 다시금 창작자로서 정체성과 방향을 확인하는 거죠. “나는 나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허리를 세우고, 계속 그릴 힘과 이유를 찾게 됐어요. 요즘은 흉내 내기에 빠져 있어요. 한동안 일러스트만 그리다 큰 화폭에 그림을 그리니까 자꾸 예전의 제 그림을 흉내 내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NFT 아트 중 애착을 갖는 작업도 <캔디> 만화 속 주인공인 것처럼요. 제가 첫 번째로 베낀 만화 캐릭터가 캔디였어요. 제 흉내 내기는 명화에도 해당해요. 노인으로 변장해 휠체어를 타고 박물관에 들어간 이가 명화 ‘모나리자’에 케이크를 던진 뉴스를 보자마자 바로 그렸어요. ‘모나리자’를 흉내 낸 그림을 통해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제 방식으로 박제한 겁니다. ‘모방하다(mimic)’는 앞으로 제가 그릴 그림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할 겁니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제공 유혜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