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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가 마이큐 용기와 사랑을 덮고 덮어서
음악가 마이큐가 붓을 들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 공연장을 꾸미기 위해 천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넣은 것을 계기로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거실 한쪽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매일 꾸준히 붓질의 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살 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그는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생각을 펼쳐낼 준비가 되어 있던 게 아닐까?

‘House and a Family’, acrylic on canvas, 145.5×112.1cm, 2020
거실 한쪽에 마련한 작업실. 마이큐 작가는 이케아 나무 테이블을 이젤 삼아 커다란 캔버스를 올리고, 그 앞에 서서 작업을 한다.
마이큐 작가는 10대에 홍콩으로 이민을 떠난 뒤, 영국 킬 유니버시티 법학과에 진학하지만 음악으로 전향한다. 2007년부터 작사, 작곡, 프로듀싱,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등을 하며 싱어송라이터이자 전방위 예술인으로 활동 중이다. 2019년부터 그림 작업을 시작했고, 2021년 이길이구 갤러리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입니까?>는 회화 작가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는 5월 24일 화요일부터 6월 25일 토요일까지 북촌 갤러리 지우헌에서 하지훈 가구 디자이너와 2인전을 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Every living creatures have their own unique rhythm).”

음악가이자 회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표현 수단으로 그림과 음악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가요?
음악 작업을 할 때는 평소 느끼고 상상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옮겨내는 편이라면,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편이에요. 주제를 정하지 않고 캔버스 위를 채우고 덮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뜻이 저를 찾아와요. 무의식 속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깨닫는 거죠. 제 음악과 그림은 같은 땅, 비슷한 온도 속에서 자라 서로 통하지만, 분명 다른 지점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작가로 살아가는 데 리듬감을 유지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요?
그림을 그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음악과 아트 디렉팅 등 다른 창작 활동은 어느덧 15년째 해오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멈추는 순간 흐름을 잃게 되고, 원래의 궤도에 오르려면 버퍼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운동선수여도 부상으로 휴식기를 거치면 예전 실력을 바로 발휘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날마다 해야 하는 것,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지키며 운동하는 정신으로 매일 작업하려고 해요. 작가에게는 폭발적 감정을 끌어내는 것보다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더 힘들고 강한 무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나다운 균형과 질서를 지키며 삶을 기록하고 있어요.

단거리를 전력 질주하기보다는 마라톤 개념이네요.
저도 예전에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올인하고 열정을 불태우며 전력 질주했어요. 음악에 많은 걸 쏟아부으며 끊임없이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페인팅을 하면서는 더 다양한 걸 표현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육체는 나이가 들잖아요. 계속해서 일정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걸 중요시하게 됐죠. 요즘은 매일 쉬지 않고 드로잉을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을 시작해서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러닝이나 음악 작업을 하고, 다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가지요. 그러다가 해가 지면 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멈추는 편이에요. 멈출 줄 알아야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집을 작업실로 사용하다 보니 집 안 곳곳이 전시장이자 그림 보관소가 된다.

세상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은 없다고 믿는 마이큐 작가의 물감들.
“어울리지 않는 색은 없고 아름답지 않은 건 없다. ‘Beautyfail’.”

일부러 마음에 들지 않는 컬러를 골라 조합한다는 말을 듣고, ‘이 사람 참 용기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우리는 이미 어떤 색이 예쁘고, 어떤 색과 어떤 색이 만났을 때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 관념에서 벗어나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거든요.
한국에서 음악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로 성격이 조금은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그런 변화가 결국은 저라는 인격의 균형을 맞춰주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도 제가 좋아하는 색 사이에 꼭 원하지 않은 색 한 가지를 넣어서 이들끼리 소개해주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죠.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게 있으니 어떤 색이 아름답다, 어떤 색들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은 없더라고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점점 더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져서 몰랐을 뿐, 사실 우리는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스치기 쉬운 일상의 변화, 감정의 찰나를 감지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그런 지점이 그림에 담겨서인지, 분명 추상화인데도 마음에 또렷한 느낌이 와닿는 듯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가령 모두가 나무가 좋다고 하는데 나는 돌멩이가 아름다워 보여 그렇게 말했는데, 사람들이 돌멩이가 뭐가 예쁘냐며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나는 용감하게 내 심장이 뛰는 방향을 따르는 거죠.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세상이 얘기하는 정답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 속에서, 어떤 두려움을 마주하기도 하나요?
작품 활동은 지금까지 없던 걸 만들어내는 일이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작해내야 하니 시작하기 전에 늘 두렵죠.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원하는 게 나올까?’ ‘아름다운 게 나올까?’ 하는 고민에 휩싸이지만, 그 두려움은 오히려 저에게 동기부여가 돼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해요.

‘Oh my captain! Mr. Fire’, acrylic on canvas, 72.7×60.6cm, 2022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Dub Da!”

컬러를 쌓고 쌓아 작업하는 작가님의 표현 방식 ‘Dub Da덮다’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음악을 할 때처럼 리듬과 소리를 레이어링하는 일, 작가로 생활하며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는 과정과도 비슷한 지점이 있겠죠?
일단 빈 캔버스 위를 그림 그리고, 색을 나열하거나, 물감을 던지기도 하면서 본능적으로 채워요. 누군가는 그 상태가 더 예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친구는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예요. 저는 그 위에다가 제 결과물로 보면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색을 가장 위의 레이어로 조금씩 덮고 일부를 남기며 추상적인 형상들을 만들어가죠. 그게 ‘Dub Da’예요. 본능적이고 즉흥적으로 그리는 듯하지만 제 나름의 균형과 질서를 염두에 두며 완성해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그림을 두고 관찰하면서 무엇을 더 덮을 것인지, 혹은 덮은 색을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행복이 가득한 집> 6월호 표지 작품인 ‘Let’s Play Together’에서는 초여름의 약동하는 기운이 전해져요. 작품에 대한 소개를 조금 더 해주세요.
아이들의 모습은 제게 언제나 많은 영감을 줘요. 아이들의 움직임, 리듬감 그리고 갑자기 표현하는 것 모두 너무 놀랍거든요. 어릴 때는 모두 아티스트인데, 경험이 쌓이고 자아가 생기고, 멋지고 별로인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죠. 이렇게 나이 들수록 내면의 예술가가 사라지는 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페인팅으로라도 그때 그 순수함을 되찾고 싶었어요. 이 작품 속에는 뛰노는 아이들, 가정의 사랑,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지내는 감정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행복이 가득한 집>이 작품 제목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며 표현하는 일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세상에 남긴 흔적들이 훗날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에너지를 담고자 해요. 진부하지만, 저는 그런 게 좋거든요. 모두가 자극적인 것을 찾는 세상인데, 그 가운데서 저는 반대로 가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가 못 할 것이 없다는 믿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정신을 지키며 작업을 이어가려고요.

마이큐의 그림에서는 율동감이 느껴진다. 크고 작은 음이 딩가딩가, 강하고 약한 박자가 두두둥. ‘역시 그는 음악가이기도 하구나’ 하고 자연스레 노래를 찾아 틀었는데, 이번에는 멜로디와 가사 사이에 비정형적 형태가 떠다니며 그의 그림이 연상된다. 그림이든, 노래든 작가가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 완성한 결과물이니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신경이 아주 세밀하게 자극받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이큐의 작업 세계 속에 들어가 귀 기울여 ‘보고’ 눈여겨 ‘듣는’ 공감각적 시간을 보내보자. <행복> 6월호 표지를 보며 들으면 좋을 기자의 추천곡: 마이큐의 ‘Alive’.

글 박근영 기자 |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