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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 아티스트 범민 헬로,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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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그 현장에 ‘헬로맨’이라는 수상한 존재가 출몰했다. 1백22억 광년 떨어진 별에서 날아와 지구인에게 수인사를 건네는 헬로맨이라니! 이 판타지스러운 그림 뒤엔 한국을 대표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범민이 있었고, <행복>은 헬로맨을 2월호 표지 안으로 기쁘게 영접했다.
남양주의 농사 창고를 작업실로 개조해 작업하고 있다. 손에 든 스프레이 페인트는 절대색감을 지닌 그가 조색한 것으로, 입소문을 타고 팔려나가다 결국 ‘BF MIN’이라는 상표까지 달게 되었다.
범민 작가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불가리·티파니·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와 그라피티 아트, 디지털 그래픽 아트워크를 진행했고, 지드래곤·서태지·싸이·에미넘 등과 협업했습니다. 삼성전자·SK텔레콤·롯데호텔·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CJ E&M 등 주요 기업과 손잡고 그라피티 아트를 선보였으며, 영화 <사냥의 시간> <초능력자> <S다이어리> 등의 미술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201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초대전을 열었습니다.
뒹구는 돌에도 눈이 달린 특별시에서 나고 자랐다. 외모가 최고다, 아파트부터 사야 한다,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 이게 상식이라고 되뇌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특별히 더럽거나 깨끗할 것 없었다. 정직한 뻔뻔함과 달콤한 무기력증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며, 배타적 소유와 소비는 생활필수품이다. 이런 세상에서 문밖 소음을 등진 채 난을 치는 것만이 예술일까.
‘민증’ 속 이름 정경민. 고3 때 불현듯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 남짓 화실에 다녔고 재수 끝에 국민대학교 도예과에 들어갔다. 한겨울, 손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흙이 낯설었고, 가마에 들어간 순간부터 명命에 맡겨야 하는 것이 버거웠다. 그 좋은 학교에 들어가놓고 홍대 앞 골목을 기웃거렸다. 여기서 잠깐. 인간은 탈피나 변태가 가능한 동물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궤도를 벗어남으로써 그와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그는 스무 살 남짓에 ‘활동명’ 범민이라는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학교는 졸업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에 대해 물으면 죄다 ‘범민’을 외친다. 시작부터 그렇게 잘나갔나?
처음엔 취미였다.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홈페이지에 그림을 올렸는데 의뢰가 들어왔다. 그땐 그라피티가 수면 밑 예술이었고, 작업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도 드물어서 눈에 띄었나 보다. 방배동 주점, 홍대 앞 클럽 같은 데서 연락이 오다가 점점 기업 일로 넘어갔다. 서태지를 시작으로 슈퍼주니어, F(X), 샤이니 등의 뮤직비디오 미술 작업으로 확장됐다. 운 좋게도 삼 성·SKT·현대카드 같은 대기업, 까르띠에·불가리·티파니같은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했다. 에미넘 내한 공연 때 라이브 페인팅을 했고, 2010년엔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시회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패션 브랜드 불가리와 협업한 그라피티 아트.
질문을 바꾸자. 고전적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라피티 아트의 길로 들어섰나?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들고 즉흥적으로, 그리고 싶은 대로, 빠른 속도로 그려내는 거다! 성과가 바로 보이는 것도, 몰래 그리는 스릴도, 행인들이 즉각적으로 내놓는 피드백도 좋았다. 나중에 이게 직업이 되면서 그림의 스케일이 커졌는데, 땡볕에서 몇 시간씩 방독면을 쓰거나 언 손으로 사다리를 탈 정도로 작업 강도가 셌다. 서브컬처인 그라피티로 수익을 내는 게 어려워 중간중간 직장생활도 했다. 근데 왜 그만두지 못했냐고? 한 5층 높이 벽에 매달려 작업하면 ‘아, 난 살아 있구나’ 느껴지는데 어떻게 그만두나. 물론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근데 말이다, 살아 있어야 힘든 거다. 죽으면 어차피 편안해질 테니 그전까지 무언가 힘들게 하고 싶다. 그게 내겐 쾌감 같은 거였다.
범민? BFMIN? ButterFly Min?
범민은 활동명, BF MIN과 ButterFly Min은 태그네임이다. 뜻? 새는 쭉 뻗어 날지만 나비는 불규칙하게 팔랑인다. 나는 나비의 그 비행 궤적처럼 자유롭게 다르게 살고, 그런 예술을 하고 싶다.
2021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캔버스 회화를 처음 선보였다. 작품은 모두 ‘헬로맨’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고, 젊은 관람객들이 지갑을 척척 열고 사 갔다.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리든, 아이패드로 디지털 그래픽아트를 하든,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리든 나는 낙서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낙서를 하고 있다. 활동하는 장소만 다를 뿐이다. ‘헬로맨’은 10여 년 동안 그려온 낙서다. 어린 시절, 우리는 멀리 보이는 친구에게 손을 들어 수인사를 했다. 그걸 그린 연작이 ‘헬로맨’이다. 엄마가 떠오르는 헬로맨, 나를 닮은 헬로맨, 친구 같은 헬로맨을 보고 많은 관람객이 전염된 것처럼 손을 흔들어주었다. 헬로맨을 세상에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헬로맨을 그린다”라는 표현 대신 “헬로맨을 스카우트한다”라고 했는데.
미켈란젤로가 네모난 대리석을 갖다 놓고 피에타도 만들고, 다비드상도 만들지 않았나. 그러고 나서 미켈란젤로가 이런 말을 했다. “나머지 부분을 다 쳐내고 원래 안에 들어 있던 것을 찾는 작업일 뿐” 이라고. 나도 마찬가지다. 1백22억 광년 떨어진 별에 살고있던 헬로맨을 내가 지구에 데려와서 세상에 발표하는 거다. 작년 12월엔 헬로맨이 코엑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현장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헬로!” 하며 인사한 거다. 그 모습을 라이브 드로잉으로도 지구인에게 알렸다.
2021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현장에서 범민 작가는 관람객 앞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진행했다. 코엑스에 출몰한 헬로맨이 지구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것.
<행복> 2월호 표지 작품 ‘헬로맨 코코 블랙핑크’는 커다란 심장을 지닌, 얼굴 없는 천사인가?
‘헬로맨’ 연작은 크게 ‘헬로맨 코코’와 ‘헬로맨 샤이언’으로 나뉜다. 오리지널 헬로맨이 ‘헬로맨 코코’이고, 부끄러움이 많아 눈을 가린 것이 ‘헬로맨 샤이언’이다. 표지 작품 ‘헬로맨 코코 블랙핑크’는 코코와 샤이언의 중간쯤 되는 존재다. 헬로맨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에서 온 존재여서 육체가 소멸되고 우주복 같은 것에 영혼을 담고 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살다가 한 번씩 등장해 “헬로” 하고 인사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이 수인사는 관계의 시작이고, 관계는 행복의 시작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멀어도 가깝게 안녕!’이었다. 순수하게 반기는 마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던 마음. 그게 행복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 아니겠나. 점점 더 밀집해 살지만 마음은 멀어지는 시대에 ‘멀어도 가깝게 안녕!’이라는 헬로맨의 수인사. 전염시키고 싶지 않나?
작가연 하고 싶은 나이가 됐으니 이제 캔버스 회화 작업에 전념할 생각인가?
아니다. 그라피티는 현장감과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언젠가 사라지는 예술이란 것도 매력적이다. 디지털 작업은 가장 작은 곳에 그리는 가장 큰 예술이다(나는 보통 아이패드로 작업한다). 그라피티나 캔버스 작업은 직접 가서 봐야 하는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디지털 작업은 그조차 없다. 헬로맨의 스토리 라인은 대부분 디지털 작업으로 한다. 빠르게 그리고 수정할 수 있어서 캔버스 작업 사이에 비어 있는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캔버스 작업은 붓의 거친 질감이 주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고심해서 헬로맨을 한 명씩 스카우트해오듯 캔버스 작업도 하나씩 실체를 만드는 일이라 흥미롭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 작품은 무엇으로든 현실화될 수 있다. 그게 NFT든, 애니메이션이든, 종이책이든, 피겨든, 내 전공을 살린 조각상이든, 패션이든 헬로맨은 출몰해 “헬로!” 하며 손을 흔들 것이다.
아직도 예술이 사설만 늘어놓는 존재라 생각하는가? 당신 옆에 출몰한 헬로맨을 보고서도? 아니면 이 사람의 예술이 대책 없는 철부지의 공상이라 말하고 싶은가? 아닐 것이다. 입안에서 터지는 공기 방울처럼 인생을 가볍게 만들어줄 무엇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리라 믿고 싶게 만드는 범민의 아트. 그게 바로 예술 아니고 무엇이겠냐만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