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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이건용 난 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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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뒤에서 팔을 뻗어 선을 긋고, 캔버스를 등지고 팔만 옆으로 위로 아래로 움직이며 긋는다. 그 몸이 그은 흔적이 지금 미술계를 강타 중이다. ‘단색화를 대체할 작가’ ‘이제 미술계는 이건용 시대’라는 이야기까지 떠돈다. “난 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그의 ‘그리지 않은 그림’.
이건용 작가는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69년 S.T(Space and Time)를 조직하고, A.G(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작가로 활동하는 등 전위적 흐름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1970년대 초반 ‘신체항’을 중심으로 입체와 설치 작업을, 이후 ‘실내 측정’ ‘동일 면적’ ‘달팽이걸음’ ‘장소의 논리’ 등 독창적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갤러리현대(2016, 2021), 부산시립미술관(2019), 4A아시아현대미술센터(2018), 국립현대미술관(2014) 등 국내외 미술 기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캔버스를 등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양팔을 뻗을 수 있는 만큼 그려낸 ‘Bodyscape 76-2-2021’, acrylic on canvas, 227×182c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Lee Kun-Yong
그는 초나흗날 노을과 여명 사이를 배회하는 달그림자 같은 사람이다. 어디에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은 ‘중간 사람’만 아는 이야기를 스스로 깨쳤다. 히죽이 웃으며 농처럼 건네는 말 속에 사람의 도리, 예술의 길, 역사의 가치, 종교의 이치가 함축돼 있다. 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게 이 글이 살아남을 방도이리라.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한 ‘신체항’, 나무·흙·콘크리트를 섞은 흙, 100×100×250cm , 1973.
1976년에 화면을 옆으로 두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반원씩 그린 ‘신체 드로잉 76-3’, 종이에 연필, 109.5×157cm, 1976.
1980년 제7회 ST전에 선보인 ‘달팽이걸음’.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 예술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Lee Kun-Yong
通하였는가
“아버님이 목사님이고, 책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분이라 집에 책 1만 권이 있었어. 어머니가 부아가 나면 ‘이놈의 책 때문에 내가 보석을 사봤나, 옷을 사봤나, 애들 고기를 사줬나’ 하며 2층에서 창밖으로 책을 내던져. 그러면 아버지는 ‘건용아, 올려라’ 그 한마디야. 목사 집안의 절간 같은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서 여름방학마다 한 달씩 가출을 했잖어. 그래도 집에 책이 많으니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보시던 <장자> <노자>를 읽었고, 중학교·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실존주의 철학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철학, 현상학이라든가 언어분석철학까지 접했지. 외대에서 언어학회가 열리면, 그날은 학교 결석하고 아버지 옷 입고 빵떡모자 쓰고 몰래 참석하는 거야. 그때부터 소통에 대한 문제, 언어와 논리 이런 거에 관심이 무지 많았다고.
내가 실험을 많이 했어. 중학교 대수 시간인데, 날이 더워서 창문을 죄 열어놓고 수업하는 판이야. 내가 슬쩍 나가서 창문을 쾅 닫았어. 전부 놀라고, 선생님이 내 뺨을 올려붙였잖어. ‘소통에 대해 실험을 좀 했습니다. 모두 쳐다봤다는 건 확실하게 전달된 거 아닙니까. 이런 게 소통인데 이론만 펴고 있으니….’ 그러다 또 혼쭐났지 뭐. 예술이야말로 불통이잖어. 중학교 들어가서 대학생 형들에게 뭘 물어봐도 알쏭달쏭하게 철학 용어를 섞어서 개똥철학만 얘기해. 모두 다 제 거가 최고라고만 해. 그때부터 예술의 소통에 지독하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미술을 미술 안에서만 보지 말고 미술 바깥에서 풀어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발표한 ‘신체항’은 “미술 밖에서 미술을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현현이었다. 나무를 뿌리와 지층째 80평짜리 전시장에 옮긴 그 작품 말이다. “메를로 퐁티가 그랬잖어. 이 세계는 관념의 덩어리가 아니라 몸의 세계라고. 그런데 그동안 관념론적 사유에만 빠져서 현실 세계를 무시해버린 거, 예술가만 아는 용어 가지고 예술을 이야기한 거,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신체항’을 보여준 거야. 전시장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 예술품 대신 ‘이 세계의 신체’ 일부인 자연을 가져다둔 거지.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개념을 확장한 거랄까. 시작은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협회전>에 낸 작품인데, 대학 때 은사인 이마동 선생이 ‘정말 좋은 작품 했더라’ 하시더라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실파 거두가 그 작품에 공감했다는 게 중요해. 그게 바로 예술로 소통했다는 거거든.”
1976년부터 계속한 신체 드로잉 연작 ‘Bodyscape 76-3’ 중. 2021년 갤러리현대에서 연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일명 ‘하트 그림’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Bodyscape 76-32021’, acrylic on canvas, 72.7×90.9cm, 2021.
캔버스 뒤에서 팔을 뻗어 닿는 데까지 물감을 칠한 ‘Bodyscape 76-12021’, acrylic on canvas, 91×116.8c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Lee Kun-Yong
과연 그는 그렸을까?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달팽이걸음’이란 문제작이 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선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로 그는 질문을 또 건넸다. “분필로 발 앞에 직선을 계속 긋고 발바닥을 움직이면 발자국이 쫙 생겨. 걷는 행위와 지우는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는 거지. 이걸로 ‘무엇을 그린다’라는 ‘사유’보다 ‘그린다’라는 ‘행위’에 집 중해본 거야. 회화도 마찬가지 아냐? 분필이든 물감이든 매체를 써서 몸으로 선을 긋는 행위, 그게 ‘그린다’라는 거지.” 대수로울 것 없다는 설명, 그러나 절차탁마의 시간 끝에 얻은 깨달음이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 실험 미술의 거장’ ‘1세대 행위 예술가’라고 일컫는다.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S. T(Space and Time)의 창립자이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행위 예술을 선보인 저간의 행적 때문이리라. 그러나 최근에야 그의 회화 연작 ‘바디스케이프Bodyscape’와 동명의 개인전을 목격한 우리는 그 말에 절반쯤만 동의한다. 먹이나 물감 대신 작가의 신체가 직접적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1976년부터 지금까지 ‘바디스케이프’ 연작으로 이어진다.
“아까 메를로 퐁티 얘기를 했지만, 관념 이야기는 집어던지고 실제적으로 신체와 매체와 평면이 어떻게 만나는가 연구한 결과물이지. 눈으로 보면서 선을 그으면 작가가 자기 사유를 집어넣게 되거든. 그 대신 행위의 시발,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눈으로 보지 않고 몸이 그리게 한 거야(이 연작의 제목에는 ‘76’이라는 숫자가 붙는다. 그 뒤에 붙는 부가 숫자는 ‘그리기의 방법’에 따른 분류다). 화면 뒤에서 팔을 뻗치는 데까지 물감을 칠한 게 76-1, 화면을 등지고 양팔이 갈 수 있는 만큼 그어낸 게 76-2, 화면을 옆에 놓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차례로 반원을 그린 게 76-3(<행복> 12월호 표지 작품이 이 연작 중 하나다)… 이런 식이지. 부목으로 고정한 손목하고 팔꿈치를 하나둘 풀면서 그린 건 76-4, 화면을 마주 보고 서서 두 팔을 격렬하게 파닥거린 게 76-9야. 내 키만 한 평면과 내 팔 길이라는 신체의 제약이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형태가 만들어진 거지.
고등학교 때 읽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에 이런 문장이 있어.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물건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일어나는 것, 사실의 총체다, 그 ‘일어난다’는 것은 작위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과 필연으로 만날 때 자연스레 이뤄진다, 이 말이야.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거든. 그 실체가,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하는 과정,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게 ‘바디스케이프’이고, 내 예술이지.”
그림이 곧 그 사람인 화여기인畵如其人의 세계를 최상의 경지로 친다. 좀 다른 뜻으로 그의 그림이야말로 화여기인의 세계다. 그의 몸이라는 실체가 곧 그림이 되는 경지. 한국국제아트페어 2021에서 그의 회화가 2억 원대에 팔렸다거나, 10월 31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연 개인전에서 작품이 완판되었다거나, 이어진 옥션에서 출품작이 모두 낙찰되었다거나, 지난해 미국 아트 플랫폼 아트시Artsy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작가 35인’ 중 유일한 한국 작가로 선정됐다거나… 여든 살의 그가 이제야 흥행 작가가 됐다는 풍문이 적운처럼 떠돈다. 1963년쯤 그가 쓴 작가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렸다. 과연 너는 그렸을까? 너는 알고 있니.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학병이 들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여름마다 다리 밑에서 노숙하며 순 생짜로 세계의 논리를 깨친 중학교 시절부터 그가 탐구한 건 이것이었을터다. ‘본질은 무엇인가’. 그게 예술이든, 역사든, 종교든 말이다. 그 이름 앞에 ‘시대에 반항한 개념 미술가’ ‘불세출의 전위예술 대가’ ‘흥행 화가’ 그 무엇이 붙든 아무 상관 없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