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은 내 존재의 증명이 아니다. 새로 보든, 산으로 보든, 집으로 보든, 보는 이의 자유다. 나는 멍석만 깔 뿐이다.”
'청명-20063', acrylic on canvas, 130.3×162cm, 2020. 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leekangso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비의 끝을 따라가보라고 했던가. 그저 마음이 스스로 뒤척이며 그림을 그리게 하는 간접 화법畵法을 비에게서 배우라 했던가. “수묵 하는 양반들도 대나무를 칠 때 끝없이 연습하잖아요. 나도 아주 많이 연습한 다음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런 계산이나 감정이입 없이 획을 그을 때, 일부러 보완하며 그리는 게 아니고 그냥 스스럼없이 ‘그려질’ 때…. 상당히 멋있는 순간을 만날 수 있어요.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진 상태, 실존 같은 걸 벗어던진 그런 상태. 그런데 늘 쉽진 않아요. 쉬우면 도사가 될 텐데.” 위대한 시인이 시를 쓸 때 ‘쓰지 않는’ 기교를 즐기는 것처럼 그도 “매 순간마다 조금씩 낯선 저에 의해 ‘그려지는’ 회화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조금씩 낯선 저에 의해 문자처럼 ‘써지는’ 회화들”을 바란다.
‘청명-17122’, acrylic on canvas, 117×91cm, 2017. 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leekangso
1980년대에 사둔 논밭 사이 땅에 1994년부터 작업실, 재료 창고 등을 지었다. 이후 접견실, 한옥 등을 더했다. 사진은 대형 회화 작업실 2층의 갤러리. 1978년 ‘누드 퍼포먼스’ 기록물, 1981년 설치 작품 ‘팔진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양자역학과 동양철학이 말하기를
비 그림 같은 그의 붓놀림을 따라가다 보면 새, 집, 나룻배, 산 따위가 불쑥 등장한다. 아니 새가 아니라 오리인 것도 같고… 그려지다 만 듯 몇 개의 선만 휙 지나간 화면은 문자도 같고, 몇 번의 붓질로 슥슥 겹쳐 그려진 화면은 물새가 지나간 풍경 같기도 하다. 호흡이 짧다가 길다가 다시 짧은 획, 캔버스와 격렬히 분투 중인 획, 수직과 수평이 넘실대는 음악적 획…. 이런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사람들은 ‘한국 추상미술의 본류’ ‘그림의 전설’ ‘오리 화가’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한국에서 그림값 높기로 손꼽히는 화가다.
그가 3년 만에 갤러리 현대에서 연 개인전 제목은 <몽유夢遊>(8월 1일까지)다. ‘꿈속에서 노닐다’ 정도로 풀이되는 이 말에 그의 철학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 세계관은 양자역학量子力學과 동양철학이라는 두 축이 맞잡고 있다고도 했다. 양자역학이라니. 그렇다고 사전을 뒤적일 필요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이 두 가지에 몰두한 그가 작가 노트에 다 풀어주었다.
“자명하고 불변해 보이는 이 세계가 실은 꿈과 같다. 정신차릴 수 없이 복잡하고 가공스럽다. 만물은 생명을 다해도 그 원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흩어지더라도 우주의 구조와 함께 알 수 없는 인과의 생멸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동시성이란 없으며 시간은 상대적이란 사실을 증명한 아인슈타인, 공간 또한 ‘얽힌 고리’ 같다는 것을 밝힌 양자론. 이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통해 21세기 사람들은 의심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공간, 우리 인생의 시간은 정말 명명백백한 것일까? 우리는 까다로운 우주의 구조에 속은 채 일평생을 사는 건 아닐까? 하고.
“내 그림 속 형상을 오리로 보든, 배나 사슴으로 보든 상관없어요. 동네 사람 하나가 여자 누드 같다고도 하던데 그것도 상관없어요. 그건 보는 사람이 인지하는 순간 사라지는 환상, 가상의 세계일 뿐이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매 순간 변화하고 끝없이 부유하며 진동하죠. 내가 먹을 떨어뜨린 종이도 사실 무생물이 아니라, 입자가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우리와 작용하고 있어요.” 동양철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기氣 비슷한 것일 테다. 화가 이강소는 그 기를 이미지로 남기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 나와 너 등 모든 시공간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꿈속에서 노닐 듯 기운생동의 붓질을 휘두른다. “필획에 그리는 사람의 정신이, 수양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믿는 그는 “내가 맑은 기운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 상대방에게도 무언가 맑게 작용한다”고도 믿는다. 그러한 것이 그의 그림에 가득하다.
접견실 동에 자리잡은 서재. 1층 서가에는 문학 서적이, 2층 서가에는 전시 도록과 화집, 미술 전문 서적이 빼곡하다. 그는 서재를 ‘휴게소’라 부른다.
나를 유혹하는 색을 찾아
<행복> 9월호 표지 작품인 ‘청명-19007’. 그의 그림에 자주 없던 ‘색채’라는 요소가 등장했다. “색이라는 게 주관적으로, 습관에 따라 선택될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색이 없는 그림에서 오히려 회화의 기운이 잘 드러나서 그동안 색을 자제했어요. 20년 전 사둔 아크릴물감을 근년에 열어서 칠해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멋있는 감동을 주는 색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핑계를 삼은 거지. 내가 습관적으로 좋아하던 색을 남에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 색이 나를 유혹할 때 나는 그 색을 쓴다’라고.” 작품 제목 ‘청명’처럼 청정하고 광명한 색이 그의 새로운 화폭을 메웠다. 물 같은 푸른 숲길이 열린 화폭, 상서로운 주홍빛으로 가득한 화폭. 미술사학자 송희경 이화여대 교수는 “초여름의 상쾌한 바람처럼 은은하고 역동적이면서도 평온한 분위기의 회화”라고 평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화가 이강소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습관적 붓질’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는 자기 파괴에 소홀하면 안 된다. 계속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라고 믿는다.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고, 사진·회화·입체·설치·퍼포먼스의 전위미술을 넘나들며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60년 가까이 해왔다.
대형 회화 작업실에서 그는 요즘 아무 계산, 의도, 감정이입 없이 그저 ‘그려질’ 때까지 아주 많이 획을 연습한다. 자신을 유혹하는 색을 찾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나라는 사람 역시 고정된 사람이 아니에요. 모든 사물·시간·공간처럼 나도 끝없이 변하는데, 왜 고집을 피워서 나는 이런 스타일로 해야 한다고 수십 년 동안 같은 행위를 하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능하면 했던 짓거리를 피해서, 내가 변하니까 막무가내라도 작업도 변하려고 노력하죠. 서툴지만 그렇게 작업하고 있어요.” 그렇게 60년 가까이 그려온 그의 그림은 누군가의 영혼을 그윽하게, 존재를 영예롭게 만드는가. 다시 그의 저 명문장으로 돌아가본다. “매 순간마다 조금씩 낯선 저에 의해 그려지는… 써지는 회화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 만물처럼, 우주처럼 그의 그림은 누군가의 영혼을 청명한 기로 흔들 것이다. 후두둑 북의 울림 같은 우주의 춤 그림에 보는 이의 마음도 진동할 것이다.
이강소 화백은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 를 전공했습니다. 1970년대 ‘신체제’ ‘A. G. 그룹’ ‘서울현대미술제’ 등의 미술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국립경상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객원 교수 겸 객원 예술가로 활동했습니다. 갤러리 현대(2009, 2018, 2021),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2016), 아트선재미술관(2003)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