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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김승연 성장하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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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디자인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다양한 기업과 협업도 진행한다. 그 모든 작업의 중심에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 내면 깊은 곳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작가와 함께 성장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우리에게, 지금의 우리에게 때때로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어온다.
김승연 작가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현재 1인 창작 스튜디오 텍스트컨텍스트를 운영 중입니다. 2009년 <여우모자>를 시작으로 <얀얀> <마음의 비율> <날개양품점> 등 독자층이 넓은 그림책을 꾸준히 쓰고 그립니다.
“아침이 참으로 밝고 눈부시다 하더라도 나는 미동하지 않을 테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아침은 나에게 아무 의미 없으므로.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숨죽이는 밤에게만 털어놓을 게다. 언제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깊은 밤은 그 누구보다 나에게 다정하니까.” -<마음의 비율> 中
“아이들은 꼭 친구들과 놀아야 하나요? 좋아하는 장난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나요? 그렇지 않은 아이는 이상한 아이인가요?” 그림책 <여우모자> 속 한 문장이다. 언뜻 아이를 위한 책 같지만 분명 어른의 마음을 건드리는 동화, 섬세한 그림과 시적인 문체로 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 사실 김승연 작가의 그림책은 언제나 그래왔다. 때론 본 적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소녀로(<얀얀>), 때론 엄마 배 속을 막 빠져나온 아기로(<마음의 비율>), 그의 책은 늘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성장기를 담아왔다. 그림책 작가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로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김승연.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수집하고 또 풀어헤쳐 다시금 하나의 바늘에 꿰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무수한 디자인으로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많이 방황했다고 들었어요.
시각디자인과에서 디자인만 배우는 건 아니거든요. 디자인을 해도 되지만 영화나 CF를 찍어도 되고, 일러스트나 순수 회화를 해도 되죠. 홍보나 광고, 사진 쪽도 배우고요.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어요.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너무 모호하잖아요. 어느 쪽도 전문적으로는 못 배우는 것 같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때 이것저것 해본 경험이 지금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도전하는 용기, 틀에 박히지 않은 열린 사고와 태도도 배웠고요.
첫 직업은 편집 디자이너였죠?
디자인 전문 출판사에서 기업 관련 매거진 편집 디자인을 맡았어요. 직장 생활을 그리 길게 하지 않았지만, 퇴사 후 그림책 작업을 시작한 뒤에도 꽤 오래 프리랜서로 일했고요. 지금처럼 그림만 그린 지는 몇 년 안 돼요.
그림책은 원래 하고 싶던 분야인가요?
그렇긴 하지만 직접 해볼 엄두는 못 냈는데,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 우연히 그림책 편집 일을 맡게 됐어요. 나도 할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죠. 사실 그때만 해도 내가 뭘 해야 할지를 계속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림책을 만들어보니, 제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던 일이 다 연결돼 있더라고요. 공상하는 것,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런 과정이 모여서 첫 그림책 <여우모자>가 나온 거예요.
작업실 한쪽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김승연 작가의 그림책과 원화들.
첫 작품 이후 조금씩 변화한 부분이 있다면요?
<여우모자>와 <얀얀>은 성장과 관련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그 작업을 진행하며 저의 세계도 점점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만의 기준이 생기면서 남의 시선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저 자신에게 굉장히 집중하게 됐죠. 세 번째 작품인 <마음의 비율> 때부터 조금씩 그랬던 것 같아요.
12월에 나오는 신작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고래 옷장>이라는 책이에요. 무언가에 얽매여 있던 아이가 그걸 박차고 나와 자기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죠. 운다는 건 미성숙한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고요. 1~2년 전부터 구상해 최근 작업을 마쳤는데, 이 작품을 그리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잘하고 싶고 실패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안 될 수도 있고, 안 되면 또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처럼요.
가장 애정을 쏟은 작업은 역시 그림책인가요?
그렇죠.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면 강아지를 그릴 때도 외형보다는 아이의 사연을 먼저 알아보죠. 그림의 완성도보다 이야기에 주력하는 게 다른 작가와 조금 다른 점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꼭 그림책으로만 다 해야 해! 이런 건 아니에요. 어떤 경계를 지을수록 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더 많아진다면 뮤지컬도 만들어보고 싶고,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언젠가부터 동물 그림을 많이 그린 것 같아요.
2017년에 나온 <날개양품점>이 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라면, <두 번째 날개양품점>에서는 과거를 지나 지금 나의 관심사,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그게 동물이죠. 실제로 성인이 된 이후 콜라라는 반려견을 15년간 키웠어요. 지금의 반려견 핑구는 7~8년쯤 됐고요. 그 밖에도 지인의 강아지가 책 속에 많이 등장해요. 사실 저는 강아지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그동안은 좋아해서 더 그리기 싫었거든요. 역시나 강아지 그림을 그리니까 그 이후 강아지 그림만 의뢰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최근 김승연 작가가 작업을 마친 동물권행동 카라의 달력 일러스트레이션 일부(왼쪽부터 캐모와 마일, 두나, 루뽀, 소망, 자람, 카디). 실제 카라에서 구조했거나 보호하고 있는 개의 모습을 담았다.
가수 이적이 글을 쓰고 김승연 작가가 그림을 그린 <어느 날,>(웅진주니어, 2017)의 삽화.
이달 <행복> 표지작인 ‘우산을 든 개신사’도 <두 번째 날개양품점> 속 그림이죠?
그 친구가 콜라예요. 미니어처핀셔였는데, 마지막 몇 개월을 무척 아파하다 갔어요. 살아 있을 때 모습도 많이 남겨놓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좀 후회되더라고요. 추억은 제 머릿속에만 있고 공유할 사람도 없고요. 게다가 나이 든 강아지나 고양이는 긴 시간을 함께했기에 내 치부까지 다 알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이 나를 좋아해주잖아요. 콜라도 저의 20대를 함께한 존재였어요.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무척 많죠. 그런 마음을 담은 작업이에요.
최근 ‘동물권행동 카라’와 협업도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작년에 의뢰받았을 땐 바빠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 그림을 의뢰 받는 건 싫지만, 강아지를 돕는 일이라면 하고 싶었죠. 그래서 올해는 달력 작업을 맡았어요. 그림 속 강아지는 전부 카라에서 보호 중인 아이들이에요. 제가 몇 번씩 센터를 찾아가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도살장에서 구조한 아이도 있고 광화문에서 공사장 인부들에게 돌팔매 맞던 아이도 있어요. 카라와의 작업은 기존의 의뢰받아 하는 일과 많이 달랐어요. 저도 달력이 많이 팔려서 그 후원금으로 아이들을 더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스스로를 정의하는 하나의 타이틀을 고른다면?
음, 이야기꾼? 저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똑같은 걸 보고 겪어도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작업하는 ‘궁금한 사람’ 이면 좋겠고요.
지금 김승연 작가는 새로운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다. 10여 년 전 첫 그림책을 만들 때부터 함께 구상해둔 이야기, <여우모자>와 <얀얀>에 이은 성장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여우모자>가 그와 엄마의 관계, <얀얀>이 아빠에 대한 유년기의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라면, 새로운 그림책은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정말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 이야기꾼으로서 김승연 작가의 면모는 자신의 내면 깊이 파고들어 작은 원석을 찾아내고 그것을 갈고닦아 반짝반짝 빛나는 하나의 섬으로 만드는 데 있을 터. 실제로 그의 그림책은 작가 자신과 함께 성장해왔다. 유년기를 지나, 무수한 섬을 건너, 한 발 한 발신중한 걸음으로 지금의 그에 닿았다. 그의 다음 섬이, 또 다음 섬이 계속해서 궁금해지는 건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섬이 있기 때문이다. 같지만 다르고, 낯설지만 익숙한 세계, 이것이 그의 이야기가 지닌 힘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