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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가 이세현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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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시점에서 바라보고, 서양화 기법으로 묘사한 한반도의 수려한 자연과 그 속에 숨겨진 비극적 사건들. 회화 작가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정치적 발언과 회화적 아름다움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이세현 작가 뒤의 작품은 'Between Blue'로, 붉은 산수뿐 아니라 다양한 색을 실험하는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1967년생인 회화 작가 이세현은 경남 거제 출신으로 홍익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런던 첼시 디자인예술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제 11회 하종현 미술상을 수상했고,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과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노르웨이 쿤스트할레318, 뉴욕 니컬러스 로빈슨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7월 중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입니다.
‘붉은 산수’를 그리는 회화 작가 이세현. 온통 붉은색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익숙한 자연 풍경이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번개 치는 먹구름과 자욱한 포연砲煙이 숨어있다. 풍경 사이사이 커다란 해골과 알몸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래서 붉은 산수 연작의 원제목인 ‘Between Red’가 더욱 흥미롭다. 한 화면에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이 섞이고, 지금은 사라진 예스러운 풍경과 현재의 도시가 혼재한다. 전통 산수화처럼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지만,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라기엔 서정적이다. 붉은색으로 그렸다는 명확한 사실을 제외하면 이세현 작가의 그림은 모두 어딘가의 사이에 존재해 뚜렷이 규정짓기 어려워 보인다. ‘붉은색’으로 그린 ‘사이’의 회화.
10년 넘게 붉은 산수를 그리느라 붉게 물든 붓. 이세현 작가는 흰색을 섞지 않고 면봉으로 붉은색의 밝기를 조절한다.
“영국에서 공부하며 둘로 나뉜 한반도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어느 한쪽 편이 되기보다는 그 사이에서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제 그림도 어떤 극단보다는 양쪽 사이에 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마흔 가까운 나이에 떠난 런던 유학 시절 동료 학생들 앞에서 작업을 설명하며 들뢰즈와 라캉을 이야기하는 자기 모습이 어색했던 그는 어린 시절 뛰놀던 거제와 통영의 자연, 군 시절 전방에서 야간 투시경으로 본 비무장지대와 북한의 풍경을 떠올렸다. 칠흑 같은 밤, 적외선을 감지해 단색으로 빛나던 아름답고도 왠지 두렵던 그 풍경. 이세현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리기로 결심했다. “붉은 산수를 그리며 마음이 참 편했어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처음 붉은 산수를 그리던 시절,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붉은 색은 외국인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어떤 사람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적화통일을 꿈꾸는 거냐’며 화를 내더군요. 레드 콤플렉스에 가려 그림 속에 담은 이야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처음 완성한 붉은 산수를 구입한 이는 세계적 컬렉터인 버거 컬렉션 대표 모니크 버거Monique Burger였다. 텅 빈 학교 작업실에 나와 홀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 채 완성되지도 않은 그림을 사겠다고 약속한 세계적 컬렉터는 단순하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는 그림이 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스위스의 저명한 현대미술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가 그의 작품을 사기 위해 런던까지 날아왔고, 미국 페이스 갤러리, 프랑스 페로탱 갤러리,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세계 유명 갤러리와 대기업이 그의 연작을 다투어 사갔다. 붉은 산수를 향한 ‘색깔론’은 차츰 힘을 잃었다.
“붉은 산수를 그리며 마음이 참 편했어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어린 시절 뛰놀던 거제와 통영의 자연, 군 시절 전방에서 야간 투시경으로 본 비무장지대와 북한의 풍경.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그림도 극단보다는 양쪽 사이에 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정치적ㆍ사회적 발언이 강한 작업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메시지에 매몰되어 회화 본연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욕심이 많습니다.” 이세현 작가는 그림에 등장하는 풍경의 세밀한 묘사만큼 조형적 아름다움을 위해 전체적 배치를 심사숙고한다.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리기 전, 연필로 한 스케치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드로잉 작업이다. 대규모 전시를 위해 이세현 작가는 작업에 앞서 그린 스케치를 소중히 간직한다. 풍경 사이사이 자욱한 포연과 먹구름 역시 분단국가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
‘Between Red’ 연작 중 하나인 7월호 표지 작품의 한가로운 풍경 속에도 연기와 먹구름이 숨어 있다. “자연이 지닌 고요함을 표현하고 싶어 의도적으로 여백을 많이 둔 작품입니다. 한국에 와서 작업하는 동안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고, 여러 비극적 사건도 일어났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고, 그림도 복잡해졌어요. 그 속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고 싶었습니다.”
‘Between Red-019JAN01’, oil on linen, 248.5×666.6cm, 2019
10여 년을 이어온 ‘Between Red’ 연작은 붉은색으로 우리 자연을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그린다는 큰 원칙 아래 차츰 변화해왔다. 사회 변화에 따라 등장하는 풍경과 사물이 달라지는 한편, 보다 정교한 배치로 구조적ㆍ조형적 완성도를 높였다. “초창기 작품을 보면 어색한데, 그 어색함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붉은 산수라는 틀 안에서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붉은색이 아닌 다른 색을 조금씩 넣어보려 하고 있고, 추상적 구조물을 그려볼 생각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아름다운 산하엔 그 속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들이 빚어낸 크고 작은 사건이 숨어 있다. 이세현 작가는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만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로 세계 미술사에 개념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앤디 워홀의 레디메이드 아트를 빼고는 20세기 중ㆍ후반 미술을 설명하지 못하는 그런 정적 개념 하나 말이지요.” 회화적 아름다움과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세현 작가의 ‘욕심’은 점점 더 큰 곳을 향한다.
오픈 스튜디오
이세현 작가의 파주 작업실 겸 갤러리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세 계적 컬렉터가 앞다투어 소장하는 ‘붉은 산수’가 탄생하는 현장에서 작품에 숨은 수많은 이야기를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일시 7월 25일(목) 오후 2시
장소 파주 RAW 갤러리(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41-3)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8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