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버터플라이Madame Butterfly’, 디지털 프린트, 120×80cm, 2017
사진가 정창기는 중앙대학교와 도쿄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기업 홍보팀 소속 상업 사진가로 활동하다 독립한 후엔 노태우 대통령 전속 사진가로 활동했고, 1993년 이후엔 꽃과 일상의 사물을 찍는 순수 사진가로 활동하며 서울예대와 상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 갤러리와 서남미술관, 갤러리 룩스, 인사아트센터, 프랑스 갤러리 파르티퀼리에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1년부터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겨 유럽 고전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 전도서 1장 2절에 나오는 이 구절은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의 주제다.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네덜란드를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위해 30년 전쟁(1618~1648)을 일으켰지만, 네덜란드는 구교 세력을 이겨내고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중세 말기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경험하고 청교도 신앙에 감화된 예술가들이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해골과 시계·낡은 책 등 죽음을 상징하는 물건을 온갖 호사스러운 오브제와 함께 배치해 그린 그림이 바로 바니타스 정물화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정창기는 네덜란드 여행중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초상 작품들과 함께 바니타스 정물화의 신비한 빛에 매료되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그림의 표면적 메시지는 탐미적이고 화려한 대상을 극적으로 비추는 빛에 의해 ‘이 순간을 즐겨라(carpe diem)’는 금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는 벨벳 천으로 배경을 만들고, 내일이면 시들어버릴 꽃과 과일, 채소 등을 좌대에 배치한 후 자연광을 조명 삼아 셔터를 눌렀다. 렘브란트의 회화와 바니타스 정물화 등 17세기 플랑드르 회화를 21세기 디지털 사진으로 재현한 ‘암스테르담 마니아Amsterda“m”ania’ 연작의 탄생. “바니타스 정물화를 보면 워낙 정교하게 묘사해서 사진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제 사진을 보고 처음엔 그림으로 착각하는 분도 많습니다. 창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렘브란트 라이트Rembrandt Light’라고 말하는 바로 그 빛 말이지요.” 자연광의 힘일까? 어둑한 공간에 놓인 그의 사진 속 정물은 또한 생물로서 강렬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프랑스 파리 작업실에서 촬영에 필요한 오브제를 배치하는 정창기 작가. 사선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커튼으로 조절해 독특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르제롱 공방의 실크 브로치를 다양한 엑세서리와 함께 배치해 웨딩 글로브를 완성한다.
사진으로 고착한 유럽의 고전 문화
태평양화학, 제일기획 등 기업 소속의 상업 사진가로 경력을 시작한 정창기 작가는 1987년 스튜디오를 차려 독립한 후엔 노태우 대통령의 공식 사진가로 임명되었을 정도로 인물 사진가로서 일가를 이룬다. 이후엔 들꽃과 비둘기, 일상의 친근한 대상을 차분한 정조로 표현하는 순수 사진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사진이 참 다르죠?”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 과거의 사진이 철학적·서정적이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지극히 화려하고 탐미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회화를 연상시킨다는 것. “예전엔 사진 찍을 때 마음에 들게 나오면 ‘그림처럼 잘 나왔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나는 아예 그림처럼 찍어보자, 생각한 거죠. 배경이나 오브제, 표현 방식은 많이 달라졌지만 양귀비나 들꽃 등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 이전 작업과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꽃 작업을 17세기 플랑드르 회화 양식으로 풀어낸 것이지요.” 12월호 표지 작품인 ‘바로크 쇼Baro-que Show’는 ‘암스테르담 마니아’ 연작을 발전시킨 ‘쿠튀르 가든Couture Garden’ 연작 중 하나다. 벨벳 배경에 프랑스 르제롱Legeron 공방에서 제작한 꽃 장식과 생화에 곤충과 과일 등의 오브제를 배치해 화려함을 더했다. 전체 구성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널리 유행한 웨딩 글로브(Globe de Mariée)를 참고한 것. 유리병 안에 신부의 부케와 화관을 걸어두는 장식품으로 만든 웨딩 글로브는 세월이 지나며 목걸이와 브로치, 세례 기념품, 작은 새나 천사 조각 등 가족의 크고 작은 기념품을 더하며 집 안 거실의 벽난로나 서랍장 위에서 일종의 가족 앨범으로 변화해갔다. 유리병 안에 압축된 가족의 일대기. 파리의 골동품상에서 웨딩 글로브를 수집하며 정창기 작가는 그 안에 담긴 역사와 고전주의 오브제의 우아함을 탐닉했고, 자신의 조형 언어로 옮기기에 이른다. “웨딩 글로브를 보면 조그만 거울이 박혀 있는데, 하나부터 다섯 개까지 숫자가 다양하더라고요. 궁금해서 알아보니, 신부가 낳기를 희망하는 자녀 수를 의미하는 거였죠. 어찌 보면 순간을 얼어 붙여 화면에 고착하는 사진 예술과 비슷한 측면 때문에 웨딩 글로브에 그렇게 매료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황혼의 빛
‘암스테르담 마니아’와 ‘쿠튀르 가든’ 연작에서 볼 수 있듯 정창기 작가는 유럽의 고전 문화를 현대 사진으로 재현하고, 고착한다. 그는 화가가 그림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하듯 세심하게 오브제를 배치해 가상의 웨딩 글로브를 만들고, 북쪽 창에서 사선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커튼으로 조절해 작품의 독특한 무드를 완성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치의 균형. 가족의 역사에 따라 변화하는 웨딩 글로브처럼 표현하고 싶은 오브제에 따라 배치는 계속 달라진다. “동물적 본능으로 하는 거죠. 실패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촬영을 다 하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준비를 마치면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 촬영은 오히려 간단하지요.” 작품은 화려해졌지만 촬영에 필요한 장비는 오히려 간소해졌다. 낯선 타국 이라는 작업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50대 중반인 2011년 프랑스로 삶과 작업의 터전을 옮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고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작가를 위한 대단위 레지던스 단지 시테 데자르Cité des Arts에서 2년간 작업한 후 지금껏 파리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술가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선 함께 작업하는 데 국적과 연령을 따지지 않아요. 지금 제가 60대인데, 한국에선 협업을 의뢰하는 곳이 드뭅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니까 계속 그곳에서 작업하는 것이지요.” 가족의 일로 잠시 귀국한 지금도 정창기 작가는 매주 <르몽드> 주말판에서 의뢰한 작업을 마감하느라 바쁘다. 경력의 황혼기에 다다른 사진가가 낯선 유럽에서 받은 문화적 자극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계속 새롭게 작업하는 모습이 무척 근사하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려 했어요. 내일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카르페 디엠! 그가 작업을 통해 전하는 바로 그 메시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