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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우영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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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우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1995년부터 패션 잡지 포토 디렉터, 광고 사진가로 활동하다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서울과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김우영 작가는 화려한 길을 걸었다. 서른 살에 시작한 7년여의 뉴욕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그는 패션 잡지 포토 디렉터, 광고 사진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니 ‘내 것’이 없었다. 사진가로서 자신감 상실은 치명적이었다. ‘상업 사진가 김우영’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까지, 그로부터 5년이 더 걸렸다. “차 몰고 3~4년간 미국 곳곳을 여행했어요.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며 울고, 무력한 자신을 자책하며 울었지요. 그러다 캘리포니아에 이르렀을 때,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어요. 예전엔 뉴욕과 대비되는 그곳의 느슨함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찾은 캘리포니아는 그야말로 천국이더군요.” 서울에서 보낸 치열했던 시간이 그를 변하게 한 걸까? ‘느슨함’이라 여겼던 캘리포니아의 공기가 평화로움으로 다가왔고, 사막의 고독과 외로움마저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가 ‘아, 여기에 머물러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건 바로 ‘데스 밸리Death Valley’에서였다. 사막의 빛과 색깔은 한동안 카메라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던 그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자기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4년 박여숙 화랑에서 연 <Boulevard, Boulevard>는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한 개인전이었다. 한때 크게 번영한 고대 도시의 그림자를 재현하듯 그는 자본주의의 환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도시의 잔영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텅 빈 고요한 도시를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현재 상황, 개인적 삶의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며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어요.” <Boulevard, Boulevard>가 도시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선보였다면, 4월 28일부터 여는 이번 개인전 에서는 버려진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말하자면 도시의 앞모습과 뒷모습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몬트리올은 도시의 뒷모습을 찾기 위해 그가 선택한 곳이다.
“흔히 ‘버려진 도시’라고 표현하지만, 폐허처럼 보이는 그 안에도 질서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젊은 예술가들이 디트로이트로 모여듭니다. 마치 20~30년 전 브루클린을 연상시키지요.” 그다음으로는 치유와 회생의 의미를 담은 세 번째 도시 연작 그리고 마침내 사람(생명)이 등장하는 네 번째 도시 연작까지 기획하고 있다. “텅 빈 고요함 속에서 도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상상이 사라지고 현실이 파고듭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에, 눈 내리는 겨울에 인적이 드문 대로변을 촬영합니다. 흰 눈이 내린 풍경은 그 자체로 캔버스지요.” 그가 단순한 선과 면으로 표현하는 도시의 얼굴 이면엔 지난 시간 그가 쌓은 경험과 관계를 통해 느낀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의 총체가 숨어 있다. “표현의 도구가 사진이고, 주제가 도시일 뿐 그것은 표면에 불과합니다. 그 표면 아래에는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이게 어디예요? 이런 색은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물을 수 있지만, 사실 저는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 길, 벽이 어떤 순간 거기에 놓여 있었고, 그것을 빌려 나의 추상을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마크 로스코와 같은 미니멀 아티스트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해왔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Sunset Boulevard’, archival pigment print, ed. of 7, 125×175cm, 2014
표지작 ‘Vermont Avenueʼ(125×158.3cm, ed. of 7, archival pigment print, 2014) 역시 우연한 순간 탄생했다. “어느 날 새벽 데스 밸리에 가려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그 건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순간 너무나 놀랐어요. 강렬한 그린 컬러는 물론이고 자세히 보니 베이지, 브라운, 블루 등 제가 좋아하는 색이 다 있더라고요. 참 이상하죠. 매일 지나는 길이었는데 몇 년간 보이지 않던 건물이 한순간 눈에 들어왔으니까요.” 운명처럼 어떤 순간과 마주치기도 하지만, 피사체를 찾아 나서는 시간도 긴 편이다. 1년에 8개월 정도는 거의 여행 중이라는 그는 매년 1월 1일 여행을 시작해 40~50일간 미국을 일주한다. 여행하면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장소는 그 감동을 기억했다가 다음 여행 때 반드시 다시 들른다. 1년 동안 그 장소에 찾아온 변화를 감지하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도시의 얼굴을 기록한다.
이제 그는 새로운 길 위에 서 있다. 4월 28일부터 5월 20일까지 박여숙 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 를 시작으로, 어느 때보다 바쁜 1년을 계획하고 있다. 7월에는 제주에서 개인전을, 9월에는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백 주년 기념으로 ‘한국의 보편적 미’를 촬영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10월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설치 작업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연과 도시 풍경을 찍어왔지만 언제 어디에 있든 그리운 곳은 데스 밸리와 비 내리는 제주뿐입니다. 눈을 감으면 그 두 곳의 어느 시간대, 어떤 장소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살아 있는 동안은 그곳의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 자리, 남은 시간의 흔적을 되새기는 그는 오늘도 길 위에서 그만의 흔적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다.
#김우영 작가 #Vermont Avenue글 유주희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