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정물 사진) ‘Untitled’, digital archive print, 96.52 x121.92cm, 2014
소녀가 인형을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 애지중지하던 인형인 터라, 인형은 소녀가 자신을 찾아낼 것으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인형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소녀는 아가씨로 자랐다. 십수 년 후, 그 아가씨가 우연히 침대를 들어 올렸다. 마침내 소녀를 만난 인형은 오랜 기다림의 끝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결국 인형을 기다리는 곳은 따뜻한 소녀의 품이 아니라 차갑고 딱딱한 쓰레기통이었다. 나이가 든 소녀는 더 이상 인형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김용훈 작가가 인화지 위에 표현해내는 ‘시대 정물’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앞만 보며 성장하는 사이 사라져버린, 우리가 걸어온 길의 기억이 바로 그가 말하는 ‘시대의 정물’이다.
예전에는 활발하게 활약했으나 지금은 문득 찾아봐도 없는 것, 그래서 이제야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그 시간과 물성을 반추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버리기는 아쉽고 가지기에는 쓸모없는 것이 많았어요. 남편 옷의 단추가 떨어질까 봐 모양이 비슷한 단추를 모아놓은 작은 상자, 무릎이 깨진 아들에게 호호 불며 발라주던 안티프라민 통 같은 것이었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자 이 시대를 산 사람의 흔적인 그 물건을 한두 개씩 놓고 찍기 시작했습니다. 밝은 추억은 밝은색 배경에, 무거운 추억은 좀 더 무거운 색 배경에 놓였지요.” 그는 ‘시대 정물’ 이전에도 정물을 찍는 사진가였다. 인물 사진이나 광고 사진이 하고 싶어 사진과를 택하긴 했지만, 카메라를 손에 든 지 얼마 안 되어 작가적 초점이 ‘정물’에 모아졌다.
인물이나 광고 사진 작업은 빨리빨리 해야 하는 시간의 압박을 받는 데 반해 정물 사진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직접 볶은 원두에 물을 부어 천천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불필요한 정보를 쏟아내는 스마트폰 대신 또박또박 버튼을 눌러 꼭 필요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폴더폰을 지금도 사용하는 그의 아날로그적 성정도 정물 사진 작업에 꼭 맞았다. 가장 처음 마음을 둔 정물은 꽃. 원래 아름다운 사물이다 보니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당연한 정물’이 꽃이다. “그래서 ‘더’ 잘 찍어야 했어요. 관객과 내가 원래 아름답게 여기는 사물이기에 그 아름답다는 생각 이상으로 어떻게 넘어갈까 하는 것이 작업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고속터미널 꽃 시장에 직접 꽃을 사러 다녔다. 봄꽃, 겨울 꽃을 몇 년간 살펴보다 보니 언젠가부터 꽃에서 성품과 성향이 보였다고 한다.
‘Untitled’, digital archive print, 96.52 x121.92cm, 2014
희극적 사람, 슬픔을 간직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가가 느끼는 꽃마다의 개성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만개했을 때보다 수줍게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던 튤립, 그 절정의 순간을 담으려 어떤 피사체보다 많은 조명 장비를 사용해 촬영한다. 역광 속에서 꽃잎 한 장 한 장의 투명도와 질감까지 고스란히 살려내야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11년부터 시작한 ‘시대 정물’ 시리즈는 최소 조명으로 작업한다. 대신 신중하게 계산한 사물의 배치와 옷을 입듯 갈아입는 색감이 새로운 작업 도구로 등장했다. 김용훈 작가는 이를 ‘시적 언어’라고 표현한다. “시인은 평범한 소재로도 감동적인 시를 씁니다. 과자나 돌멩이 같은 것도 아름다운 시의 소재가 되지요. 사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진작가는 사회의 참담한 부조리를 고발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이끌어내지만 저는 반대 성향인 것이지요. 버려지거나 잊히는 것의 아름다운 점을 드러내는 것이 제 작업입니다. 평범한 소재를 다루는 사진이라는 시적 언어가 정물 사진이지요.”
그는 디지털카메라 대신 구닥다리 필름 카메라로 작업한다.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지 않는 탓에 오히려 요즘 필름은 값비싼 몸이 되었다. 비싼 필름을 여러 장 사용할 수 없으니 오래 생각하고 짧게 찍는다. “5분 관찰하고 30분 그리는 대신, 30분 관찰하고 5분 그려라”라고 하시던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의 조언을 받들 듯. 그래서 김용훈 작가는 무엇보다 사물을 배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1번 사물을 놓고 그 주제를 보충해주는 2번 사물과 그 의미를 지지하는 3번 사물을 배치하는 식이며, 형태적 조화 역시 완벽해야 한다.
반면 배경의 분할된 색은 특별한 규칙 없이 감각에 따른다. 상의를 입고 그에 어울리는 바지를 선택하는 매일 아침의 옷 입기처럼, 어떤 날은 상하의 조합이 괜찮고 어떤 날은 영 어색할지라도 천천히 가장 좋은 짝을 고르면 된다. 메마른 문서적 기록 대신, 기록적 의미를 내포한 감성적 사진이 주는 사물 공감. 그의 정물 사진을 보며 관객은 침대 아래서 구원된 낡은 인형이 차가운 쓰레기통 대신 다시금 따뜻한 소녀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본다. 그리고 김용훈이라는 사진가의 시적 언어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