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에 따스운 숭늉 냄새를 풍기며 햇살이 쏟아진다. 잘 빨아 말린 광목 같은 햇살 아래 해바라기 중이던 백구와 새끼들이 순하게 누워 존다. 새끼 낳느라 물기, 기름기 다 빠진 어미의 눈꺼풀, 처마처럼 드리운 그 눈꺼풀 안에는 온 우주가 담긴 듯하다. 사람도 동물도 순하게 사는 세상을 만난 듯해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이 사진은 올해 스물다섯 살의 대학생 김용기 씨 작품이다. 작년 가을 외할아버지 댁의 백구가 새끼를 아홉 마리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가 찍은 사진이란다.
“이번 사진 공모전의 주제이기도 한 ’행복한 순간’은 어느 곳이든 상관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아닐까요?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요. 백구 가족이 함께 조는 시간도 행복한 순간이죠.” 그가 ‘모정’이란 제목을 붙인 이 사진은 식구들과 살 비비며 사는 평범한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자꾸 들여다보며 벙싯거리게 된다. 행복의 감촉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충북대 기계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용기 씨의 사진 취미는 심심파적을 넘어선 상태다. 사진으로 전공을 바꿀까 조심스러운 고민도 할 정도다. “고 3 때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됐는데, 그때부터 3백65일 카메라를 학교에 들고 가 친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했어요. 사람들이 웃는 모습, 행복해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좋았어요. 대학 전공도 사진으로 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포기하고 공학도가 되었죠. 대신 사진을 더 맹렬히 파고들고 싶어 사진 동아리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하는 법까지 배웠죠. 그 후로 국내, 해외로 여행 다니며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찍느라 휴학도 여러 번 했어요. 사람들 얼굴을 촬영할 때 전 그들에게 늘 ‘행복하세요?’라고 물어요. 한국 사람들은 죄다 뭘 그런걸 다 묻나 하는 표정인데, 외국 특히 필리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 부분 단박에 ‘그렇다’고 답하더라고요. 결국 행복은 제 손아귀에 얼마나 움켜쥐고 있는지가 아닌지가 아니라 자기 삶에 만족하는 거라는 걸 사람들의 얼굴을 찍으며 알게 됐죠.
제 꿈이오? 이렇게 오래 무언가를 좋아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사진을 사랑하니까 사진작가로 살고 싶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은퇴 후 마지막 꿈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어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찍으면서 말이죠. 그게 제 행복이겠지요?”
인물 사진의 거장 유섭 카쉬Yousuf Karsh처럼 인물의 감정과 사회적 특성이 모두 담긴 사진을 찍고 싶다는 가열찬 포부도 지닌 이 젊은이. 이제 더 나이 먹으며 포기와 선택의 전술을 익혀야 할 때도 오겠지만 그 꿈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든 그에겐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가려는 용기가 함께할 것이다. 늘 이렇게 싱싱한 봄 같은 청춘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