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 광릉요강꽃이 속살대며 피어난다. 표표히 잎 위에 앉아 있는 여린 꽃대, 거기서 훅 끼쳐오는 풋가시내 내음에 정신이 아찔하다. <행복> 4월호 표지를 장식한 광릉요강꽃. 야생화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꽃으로 첫손가락에 꼽는, 사진가들이 평생에 한번 만나보고 싶어 몸살이 난다는 꽃이다.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광릉요강꽃이라 하는, 짓궂은 남정네들은 꽃 모양이 여인의 은밀한 그곳 같다고들 하는, 희귀하고 어여쁜 꽃. 야생동식물보호법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 1급 식물로 식물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그 귀한 꽃이 칸디 하우스 Conde House의 서랍장 위에서 고고히 피었다. 반그늘이 지는 비옥한 땅에서나 자란다는 이 1급 식물이 왜 서랍장 위에 올라앉은 걸까. 그것도 이국의 냄새 물씬한 세간 위에.
이 서랍장(칸디 하우스 제품으로 웰즈에서 판매하고 있다)은 일본 브랜드이면서도 스칸디나비안 디자인과 독일 문화, 여기에 동양적 감성을 버무린 칸디 하우스의 정신을 그대로 담은 제품이다. 광릉요강꽃 그림은 어떤가. <행복> 2010년 9월호 표지 작가인 세밀화가 송훈 선생이 가는 붓과 숫돌에 간 펜촉으로 그린 작품이다. 수명이 1천 년 이상 간다는 코튼지 위에 색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아크릴물감으로 한 점 한 점 그려나간 그림인데, 지름 1mm의 원 안에 또 다른 원 다섯 개를 그려 넣을 정도로 정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선 하나를 제대로 긋기 위해 사격 선수처럼 일시에 숨을 멈춰야 하는, 진짜 ‘세밀한’ 그림. 그 때문인지 송훈 선생의 심혈관 두 개가 막혀 가슴을 여는 큰 수술까지 받게 한 노작이다. 잎사귀에 궁그는 물방울, 꽃 대궁의 흐릿한 반점까지 세심하게 잡아내는 과학과 예술 사이에 선 그림이라 하겠다(원래 식물 세밀화는 중세시대 약품에 들어가는 식물의 구분을 위해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종과 식별할 수 있게 그 종의 특징을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과학과 예술 사이의 그림이다). 똑같이 식물을 그린 기록화지만 송훈 선생의 세밀화는 서양의 보태니컬 아트 botanical art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의 그림이다. 그 까닭은 자연을 본떠 그리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림에 작가만의 심상과 정신을 담아내는 고고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광릉요강꽃 그림과 칸디 하우스의 서랍장은 그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정신을 담아, 체열을 담아 손으로 다듬고 매만진 것이 그렇다. 거기에 캘리그래퍼 강병인 선생의 손글씨 ‘자연이 가득한 집’이 화룡점정으로 찍혀 있다.
이렇게 손맛과 마음의 멋이 담긴 세 ‘작품’이 만나 <행복> 4월호의 표지가 되었다. 이 표지 이미지는 3월 24일부터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홍보용(포스터, 인쇄 매체 광고, 배너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홍보용 이미지로 사용하는 작품은 송훈 선생의 세밀화 ‘연과 물총새’에 인디테일의 레트로풍 가죽 암체어를 조합한 그림(왼쪽 페이지), 역시 세밀화 ‘자목련’에 호사컴퍼니의 접시 모양 시계를 조합한 그림이다. 이 이미지들은 ‘자연이 가득한 집’이라는 2011년 테마를 제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만하다. ‘꽃’이라는 자연의 창조물과 ‘집’이라는 인공의 창조물이 한 몸처럼 어우러진 이미지다. 인간의 일상은 자연에 뿌리박은 채 인공의 삶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리하자면 인공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생의 터전, 그것이 바로 ‘집’인 것이다.
1994년,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되는 인테리어 관련 제품을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느냐?”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문의를 보면서 “지면에서만 보던 생활 인테리어 디자인을 실제로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 <행복>이 독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 제품을 연결하는 거간꾼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서울리빙디자인페어다. 1994년 3월 4일부터 8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첫 번째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국내 최초의 인테리어 대전’ ‘공간 꾸밈 아이디어와 지혜의 잔치’라는 정겨운 수식과 함께였다. 무엇보다 ‘어떻게 편안한 공간을 꾸밀 것인가’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철학까지 담고 있었다. 여기에서 출발해 매년 봄 열리는 이 전시는 이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리빙 비즈니스 전문 전시회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행복> 독자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감각 있는 소비자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코엑스의 성공 전시 중 랭킹 5위 안에 드는 전시로 자리잡은 것이 그 증거다. 특히 올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자연이 가득한 집’이라는 메인 테마에 맞춰, 집이라는 울타리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연답게, 인간답게’ 사는 법을 보여주는 ‘아이디어와 지혜의 잔치’가 될 것이다. 편안하게 꾸민 공간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자연이 가득한 잔치’에 꼭 들러보시길. 2011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코엑스 A, B 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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